왜 지금 한나 아렌트를 읽어야 하는가?
나카마사 마사키 지음, 김경원 옮김 / 갈라파고스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내가 읽기 시작한 한나 아렌트에 관한 책 중 네 번째 책이다. 이 책의 목적은 저자가 나름대로 이해한 한나 아렌트의 사상을 정리하여 '신서', 즉 입문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은 아렌트의 저서 대부분을 다루고 있으며, 아렌트의 사상이 나오게 된 역사적 배경, 아렌트의 눈으로 본 현대 일본사회(2009년)의 모습을 같이 이야기하고 있어 아렌트 사상의 대략적인 전도(全圖)를 얻을 수 있었다. 각 장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아렌트의 저서는 다음과 같다.


1장 - 『전체주의의 기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2장 - 『인간의 조건』

3장 - 『혁명론』

4장 - 『정신의 삶』, 『칸트 정치철학 강의』


『인간의 조건』의 경우 3장과 4장에도 자주 활용되는데, 아무래도 아렌트 사상의 핵심 중 하나인 '행위'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상당히 많은 저서를 다루고 있음에도 최대한 쉽게 풀이해서 설명하려는 노력이 돋보였고, 이와 관련된 역사적 배경을 같이 언급해 준 점이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1장과 2장은 전에 읽었던 『정치와 진리』,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겹치는 부분이 많았으나, 3장과 4장은 제대로 된 설명을 처음 접하는 것이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다 읽고 나면 위에 제시한 아렌트의 저작을 읽은 것 같은 착각도 들 정도..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물론 4장의 경우, 『정신의 삶』이 유작으로 남았기 때문에 '사유', '의지', '판단' 중 '판단'과 관련된 내용은 이전의 저서를 통한 저자의 추론이라는 사실을 유념해 두어야 하겠지만... (그래서 더 어려웠는지도 모르겠다)


아쉽다기보다 궁금했던 부분은, 악의 평범성(banality)과 관련된 부분에서 'banal'이 때로는 '따분한'으로, 때로는 '평범한'으로 번역된 것이다. 저자가 글을 쓸 때 영어를 이렇게 번역한 것인지, 역자가 이를 옮기면서 이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반적으로 '따분함'보다 '평범함'이 통용된다는 점에서 용어가 통일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있다(그리고 '평범함'이 '따분함'보다 그 의미를 더 잘 전달해주는 것으로 생각된다.『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길사)의 '역자 서문'에 자세히 나와있다). 또 '복수성(plurality)'이 3장에서는 '다원성'(149쪽)이라고 제시된다. 물론 이 앞에는 '가치관의'라는 수식어가 있긴 하지만, 같은 용어가 여러 가지로 나타나는 경우 이 개념이 아까 말한 그 개념이 맞는 건지 혼란스럽다...


아렌트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파면 팔수록 똑부러지게 결론짓는 것이 없구나.. 하는 것이다. '폴리스적인 인간'을 구현하기 위해 '공적 영역'에서 인간의 '복수성'을 근간으로 한 정치 행위를 옹호했지만, 반(半) 공적, 반(半) 사적인 영역인 '사회적 영역'(대표적인 것이 경제다. 이놈의 경제)이 확대되면서 사적 영역이 배제된 폴리스적 공간은 더 이상 불가능한데, 이에 대한 대안은 찾을 수 없다. 하기야, 애초에 복수성을 바탕으로 한 토의를 통해 공공선을 추구하는 정치행위를 강조한 그녀에게 대안을 바란다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겠다. 정치철학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순간 그것이 진리라고 강조하는 꼴이 되고, 그것은 정치가 참/거짓을 가르는 진리의 영역에 떨어지는, 그녀의 주장을 무너뜨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폴리스적인 공간의 재현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그런 공간을 구축하고 진정한 '정치''행위'를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씁쓸한 뒷맛을 남긴 채, 저자 서문에 나온 말을 곱씹는다...


'알기 쉬움'을 간판으로 내세우는 '정치사상'(또는 '정치사상 연구')은 그럴듯해 보이고 위세가 대단하다. 그래서 '정치'를 스포츠나 게임처럼, 적과 자기편이 싸워서 이기고 지는 문제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반응이 쏠쏠하다. 내용이 '알기 쉬운' 사상일수록 거기에 근거해 '알기 쉬운' 슬로건을 내걸고 '자기편'을 많이 결집하여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16쪽)


전문적인 정치사상 연구자도 아니고 일상적으로 '정치'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닌 불특정 다수가 어쩐지 '자기편'이 되어줄 것 같은 '이론'에는 대개 '어딘가'에서 자주 들어본 듯한 대사가 아로새겨져 있다. 여기에서 '어딘가'란 말할 것도 없이 신문, 텔레비전, 잡지, 최근에는 인터넷 같은 매스컴을 말한다. 미디어에서 자주 접해 어느샌가 익숙해진 단어와 문구를 그럴듯하게 새겨 넣은 글이 무척 '지적(知的)'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17-18쪽)


+) 아렌트에게 관심을 가지고 관련 책들을 검색해보던 때, 아렌트의 사상과 관련해서 내가 자주 접했던 용어 중에는 '세계사랑'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는 '세계사랑'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 말은 또다른 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그녀의 저서 읽기, 아니 구매가 또 미뤄진다는 것을 뜻한다. 일단 내가 이 책을 사기 전에 후보에 올라있던 책은 『아렌트』(홍원표, 한길사, 2011)와 『아렌트 읽기』(엘리자베스 영-브루엘, 산책자, 2011)다. 또다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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