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을 다시 읽으면서 느낀 점은 예전에 읽었던 게 분명한데 이렇게 새로울 수가...로 정리할 수 있겠다. 머릿속이 백지처럼 하얘져서 읽는 장면마다 새로웠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장면은 뫼르소가 사제에게 고함을 치는 장면뿐이었고, 예전에 읽던 책도 이 부분만 접어놓았다. 이전까지 줄곧 눈에 보이는 것만을 묘사하고 말수가 적었던 뫼르소가 죽음을 앞에 두고 폭발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이고, 그래서 내가 여태껏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이 부분의 번역은 개정 전과 후의 차이가 상당히 크다.
나는 그의 사제복의 깃을 움켜잡았다. 기쁨과 분노가 뒤섞여 솟구쳐 오르는 가운데 나는 그에게 마음속을 송두리째 쏟아부었다. 그는 어지간히도 자신만만한 태도군, 안 그래? 그러나 그의 신념이란 건 죄다 여자의 머리카락 한 올만도 못해. 그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없는 셈이지. 나를 보면 맨주먹뿐인 것 같겠지. 그러나 내겐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이 있어. 신부 이상의 확신이 있어. 나의 삶에 대한, 닥쳐올 그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래, 내겐 이것밖에 없어.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굳세게 붙들고 있어. 그 진리가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만큼이나. (2015, 174쪽)
나는 그의 신부복 깃을 움켜잡았다. 기쁨과 분노가 뒤섞인 채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끼며 그에게 마음속을 송두리째 쏟아버렸다. 너는 어지간히도 자신만만한 태도다. 그렇지 않고 뭐냐? 그러나 너의 신념이란 건 모두 여자의 머리카락 한 올만한 가치도 없어. 너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너에게는 없지 않느냐? 나는 보기에는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너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렇다, 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붙들고 있다. (2009, 156-157쪽) (강조는 인용자)
여기서 내가 주목한 부분은 '너'가 '그'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 둘 사이의 차이란 무엇일까? 김화영 교수의 해설 서두에는 "자유간접화법의 어감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변화도 그 일환인 것일까? 네이버 지식백과의 문학용어비평사전에서는 자유간접화법을 "인물의 생각이나 말이 서술자의 말과 겹쳐져 이중적 목소리로 서술되는 화법"이라고 정의하는데, 거기서 들고 있는 예시는 다음과 같다.
직접화법 : He said, "I love her now."
간접화법 : He said that he loved her then.
자유간접화법 : He loved her now.
쓰고나니 '너'와 '그'의 차이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애초에 자유간접화법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기 때문에 해설에서 그 단어만 보고 '이 변화가 자유간접화법의 반영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어제부터 계속 고민했었다. 생각해보면 '너'로 표현된 전집판의 경우는 직접화법에 가깝지만, 개정판의 경우는 뫼르소가 하는 말이 뫼르소의 의식이라는 "유리창"을 거쳐 전달되는 쪽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구성이 갑작스레 직접화법이 등장하는 것보다 일관성 있는 형식이라는 생각은 든다. 자유간접화법에 대한 고민은 해결되지 않았지만...
다시 읽으면서 공들였던 부분은 전에 미처 읽지 못했던 해설 읽기였는데, 딱히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사르트르는 『시지프 신화』의 철학이 옮겨진 것이 『이방인』이라 간주하고 해설을 썼는데, 상당 부분 연결이 되긴 하지만 기계적으로 일치하는 것은 아니므로 뫼르소가 『시지프 신화』에 나오는 '부조리의 인간'의 한 전형이라고 보긴 어려울 듯하다. 두 번째로 읽는 것이지만 여전히 이해가 미진한 부분이 많이 남았는데, 어쩌면 그런 애매성이야말로 『이방인』이 지금까지 논의되고 고전이 된 이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뭐라고 딱 규정하기 어려운 것을 남겨둔 채 그냥 마무리해야 될 것 같다. 재독의 감상을 정리하자면, '그때도어렵고지금도어렵다'.
+) "오래간만에 처음으로"는 개정판에도 그대로 남았다. 이 단어의 어감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데, 가운데 쉼표를 넣어봐도 매한가지다. 개정판을 내면서 상당히 많은 부분을 손보았는데도 이 부분을 유지하기로 한 이유가 무엇인지, 역자의 설명이 듣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