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을 구매할 때 끝까지 고민했던 것은 민음사본을 살까, 펭귄클래식본을 살까였다. 고민했던 이유 중 하나는 두 책의 구성이 달랐기 때문인데, 민음사본은 「자기만의 방」과 「3기니」가, 펭귄클래식본은 「자기만의 방」과 「여성의 전문직」이 수록되어 있었다. 결국 민음사본을 주문하고 펭귄클래식본은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했는데, 거의 두 달이 지나서야 연락이 왔다. 책을 빌리러 가면서 나는 내가 이제 학생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해야 했다(학교도서관의 경우 희망도서 신청 후 수령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일주일이었다).
「자기만의 방」 부분은 따로 읽지 않았는데, 민음사본을 읽는 데 큰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굳이 비교를 해봐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뒤에 실린 주해만 확인해 보았는데, 민음사본의 주보다는 이쪽이 더 자세했다. 하지만 「여성의 전문직」이 생각보다 짧아서 민음사본을 사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난 아무래도 「자기만의 방」보다 「3기니」에 더 손이 가기 때문이다...
「여성의 전문직」에서 울프는 여성 작가로서 자신이 부딪혀야 했던 심리적 장애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녀는 그것을 "가정의 천사"라고 부른다. 그것은 문화 안에서 소위 여성성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에게 강제되었던 성격적 특질들의 총칭이다. 동정심이 많고, 헌신적이며, 가정생활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고, 자기희생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 그 천사/유령은 그녀가 비평을 쓰려고 할 때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까 저명한 남자가 쓴 소설을 비평하려고 손에 펜을 쥐자마자, 천사는 내 뒤로 살그머니 다가와서는 속삭였습니다. "아가씨, 당신은 젊은 여성이에요. 당신은 남자가 쓴 책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호의를 베푸세요. 부드럽게 대하세요. 듣기 좋은 말을 해주세요. 기만하세요. 당신의 성이 가진 모든 기술과 책략을 동원하세요. 당신이 자기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하세요. 무엇보다 순수함을 지키세요." (161-162쪽)
그녀는 천사에게서 벗어나고자 그의 목을 죄고, 잉크병을 던짐으로써 그를 죽이려 한다. "자기 자신만의 정신이 없다면, 또한 인간관계와 도덕, 성에 관한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지 않고서는 한 편의 소설도 비평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울프를 비롯한 여성 작가들이 소설을 쓸 때마다 부딪쳐야 했던 것은 남성들이 규정하는 '여성'이라는 관념이었다. 이 관념의 벽 앞에서 작가의 상상력은 낚싯줄처럼 빠져나가고, 그들은 예술가로서 곤경에 빠진다.
그녀는 실제로 가장 어렵고 심각한 곤경에 처했습니다. 비유 없이 이야기하자면, 그녀는 육체에 관한 어떤 것을, 여성으로서 입 밖에 내기에는 적절치 않은 정욕에 관한 어떤 것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성이 그녀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지요. 남자들이 충격을 받을 거라고요. 자신의 정욕을 사실대로 이야기하는 여성에 대해 남성이 할 법한 말을 의식하자마자 그녀는 무의식이라는 예술가로서의 심적 태도에서 깨어났습니다. (...) 남성이 이러한 측면에 대해 의식적으로 자신에게는 많은 자유를 허락한다 해도, 그러한 자유를 누리는 여성에 대해서는 극도로 엄격하게 비난하는 자신의 태도를 자각하거나 통제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습니다. (165-66쪽)
사실 지금도 이런 시선은 유효하다. 남성의 욕망은 남성성의 발현이 되지만 여성의 욕망은 여성성의 상실로 규정되는 것, 그것은 여전히 순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모습이 아닌가? 욕망에 솔직해지는 시대가 왔다고 하지만, 과연 순수라는 이름의 프레임에서 욕망이 정말 '동등하게' 자유로운지는 의심스럽다.
울프는 여성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면서 겪었던 모험 중 "가정의 천사"를 죽이는 일은 성공했지만, "하나의 육체로서 경험했던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은 해결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남성 중심 사회의 시선이 내면화되어 또다른 제약으로 남은 것이다. 자신의 사례를 통해 그녀가 묻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여성의 전문직 중 가장 자유롭다고 인식되었던 작가가 받는 제약이 이렇다면, 다른 전문직은 얼마나 더 심할 것인가? 그럼에도 전문직에 진출한 여성들이 자기 앞에 놓인 "수많은 환영과 장애물"을 규정하고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논지다.
글이 발표된 시기를 보면 순서는 「자기만의 방」→「여성의 전문직」→「3기니」인데, 이 글은 양성성을 추구했던 「자기만의 방」과 차이를 강조했던 「3기니」의 과도기에 있는 듯하다. 어쩌면 그녀는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는 것을 극복하지 못했기에 「3기니」를 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성의 전문직」에는 구체적인 대안이 없고, 「자기만의 방」과 「3기니」의 대안은 현실성이 없어보인다. 그러나 나 자신도 어떤 대안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식만 가지고 있을 뿐. 울프의 시선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여전히 사회는 은연중에 규정된 성 역할을 강요하고, 혐오의 언어는 나날이 과격해진다.
+) 밑줄은 책 말미에 수록된 미셸 배럿의 해설로, 1993년에 쓰여졌다.
우리는 울프의 개념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현대 페미니즘이 맞닥뜨린 주요 딜레마를 발견할 수 있다. 때때로 `평등/차이 논쟁`으로 요약되는 이러한 딜레마는 페미니즘이 부당한 현실에 맞서 평등주의를, 더 나아가 `양성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지, 아니면 더 나은 가치의 사회와 국가조직을 추구하기 위해 남녀의 현존하는 차이를 발판으로 삼아야 하는지에 관련되어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예술에서 양성적인 이상을 지지하는 편에서 차이의 힘을 인정할 것을 강조하는 편으로(여성은 사회적인 `아웃사이더`라고 단언하는 것에서 이러한 입장이 특히 두드러진다) 옮겨 간다. (170쪽)
울프의 주장은 유물론적이지만, 환원적인 경향이 덜하다. 울프는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에 의존한다고 본다. (..) 울프의 표현을 따르자면, 작가가 처한 물질적인 상황이 작가의 `시각`을 결정한다. 1940년 브라이턴 노동자교육협회에서 주최한 연설에서(이 연설문은 여성의 이해관계와 노동자계급을 연관시켜 보는 흔치 않은 중요한 글이다), 울프는 작가의 시각이나 관점은 그가 받은 교육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사회계급과도 연관되어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175쪽)
페미니즘에서는 이른바 `평등`을 강조하는 고전적인 주장이 바로 울프의 이러한 해석과 관련되어 있다. 울프가 차용한 양성적 정신론은 다른 이들이 성적 차이를 발견하는 곳에서 성적 상보성을 발견한다. (..) 『자기만의 방』에서 울프는 자신이 사는 시대가 특히 이러한 이상적인 양성성 모델을 적대시하고 있다고 불평한다. 선거권 운동은 남성의 기성 사고에 이의를 제기했고, 여성과 남성 모두 "성 의식"을 강화하는 상황을 야기했다. 울프는 작가에게 그러한 `성에 대한 의식`은 재앙에 가깝다고 결론을 내린다. (180-181쪽)
버지니아 울프가 사유했던 개념 가운데 많은 것들(정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완결성, 시야, 진리 등등)이 내포하는 의미는 오늘날에는 미적 판단과 주체의 동일성을 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시되는 것들이다. 울프는 소설에서 단일한 모순 없는 동일성이라는 가정에 이의를 제기했다. (..) 하지만 그러면서도 울프는 파편화로 기울어지는 경향과 배치되는 어떤 알 수 없는 자신의 기질을 버리지 않았다. 그로 인해 현대에 우리가 상대적인 관점에서 특수한 역사와 문화 환경의 소산으로 보는 `자유`, `진리`, `상상력`과 같은 개념을 별다른 문제 없이 유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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