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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정치 -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평점 :
군주의 권력이 군림하던 시대가 지나고 규율 권력의 시대가 왔다. 규율 권력을 기반으로 한 생정치는 개인의 몸을 정형하고, 인간을 규범 체계 속에 묶어두며 모든 것을 통제했다. 그리고 새롭게 도래한 신자유주의의 권력은 빅데이터를 통해 인간의 심리를 파악하고 심지어 예측하는 심리정치의 시대를 알린다. 그것은 더이상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강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사라고, 더 하라고 부추길 따름이다. 긍정성의 과잉 상태야말로 신자유주의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권력의 차별성이다.
투명성이 강조되고, 개인은 이제 자발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데 익숙해져 있다(SNS에 한번만 들어가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심리 지도를 구축한 빅데이터는 인간의 욕망을 끊임없이 부추기고, 인간을 끊임없이 자아의 최적화를 욕망하는 경영자로, 자기 착취자로 만들었다. 빅데이터는 더이상 우리를 감시하지 않는다. 투명성이 강조되면서 만인에 의한 만인의 감시 체제가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빅데이터는 우리의 모든 것, '좋아요'를 통해 표현되는 심리 상태까지 모두 기록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측할 따름이다. 근대의 빅브라더는 빅데이터로 전환된 것이다.
문제는, 이 책의 서술이 내가 살고 있는 사회와 일치하는지 여부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그리고 내면의 기록이 범람하는 디지털 사회에 살고 있으면서 끊임없는 자기 혁신(이라고 쓰고 착취라 읽는다)과 최적화(힐링으로 대표되는 세태)를 추구하는 분위기를 보고 있으면 보이지 않는 빅데이터의 손길이 아른거린다. 하지만 눈을 조금만 돌려보면, 여전히 한국 사회는 빅브라더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사회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잦아진 "2분 증오"의 편린들, 전혀 투명해지지 않고 감춰지는 정보들은 우리가 여전히 규율 권력의 시대를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말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한없이 투명해지는 것은 소비자일 뿐, 우리에게 소비재를 제공하는 대상은 전혀 투명하지 않다. 신자유주의가 노동자를 자기 경영자로 탈바꿈시켜 자신의 자유를 착취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친절해진 빅브라더/빅데이터는 여전히 베일에 감춰져 있다. 우리의 욕구를 우리 자신이 인식하기도 전에 그것을 예측해 눈앞에 내놓을 따름이다.
한병철의 책을 처음 읽었는데, 다른 작품인 『피로사회』와 『투명사회』도 이 책의 연장선상에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심리정치』가 셋 중에 가장 나중에 나온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결국 피로는 자기 착취가 진행 중임을 나타내는 표지일 것이고, 투명사회는 디지털 심리정치를 가능하게 한, 빅데이터의 탄생을 초래한 원인일 것이다. 저자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날카롭게 벼려져 현대 사회의 이면을 찌르고 있고, 어렴풋이 짐작은 했지만 명료하게 표현할 수 없었던 신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생각이 언어화되어 있었다. 다만 한국 사회가 규율 권력의 시대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에 잘 적용되지 않았을 따름이다. 빅브라더와 빅데이터가 뒤섞인 이곳은 아직 권력이 '스마트'해지진 않았다.
저자가 내리는 결론은 "바보"가 되는 것, "바보짓을 통해 침묵과 고요, 고독이 있는 자유로운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커뮤니케이션과 네트워크에서 벗어나 있는, 어떤 상상을 초월하는 외부 공간"에 거주하는 것, 그로 인해 주체로부터 해방되고 탈예속화·탈심리화의 상태에 이르는 것이 바보가 되는 길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완전히 다른 삶의 형식을 낳는 자유의 실천"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천은 결국 개인으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어떤 흐름을 형성해서 신자유주의 질서에 반하는 새로운 변혁을 창조할 수 있을까? 이미 자본이 부여한 자유의 착각에 깊이 얽혀버린 현대인에게, "바보"가 되는 길은 새로운 인간형의 등장뿐인가? 내가 이토록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바보"가 되는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인지, 이미 견고해진 구조에 맞설 수 있는 개인의 의지를 신뢰할 수 없게 되어서인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