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문득, 어제 받은 『사슴』이 파본이라 4월에 다시 배송하겠다는 문자를 받았다(어디가 잘못되었는지도 쓰여 있었으나, 성급하게도 이미 문자를 지워버렸다.). 1월인가 그쯤에 주문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렇다면 주문한지 넉 달만에 책을 받는 것이 되겠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든 나쁜 생각은, 누군가는 이 파본을 중고샵에 내놓을 수도 있겠다...라는 것이었다. 여기가 됐든 다른 중고서점이 됐든지간에. 물론 생각이 배배 꼬이지 않고서야 내 상상처럼 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그래도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다. 그리고 피해를 볼 누군가는 이 시집에서 어느 부분이 잘못된 건지도 알지 못할 테니...


아직 제대로 읽어보지는 않았는데(아마 이 일은 꽤 오래 걸릴듯하다. 이 책을 읽을 시기의 나는 분명 열린책들판과 이 책을 비교하며 보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초판본의 느낌을 잘 살리면서 하드커버로 손상이 적게 해놓은 것이 괜찮았다. 가격표의 디테일도 좋았고.. 단면이 아닌 두 겹으로 된 페이지(이걸 뭐라고 말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역시 나에게는 신선하다. 세로쓰기는 오래 전 친척 집에서 『삼국지』를 본 이후 처음인 것 같다(참고로 내 얕은 시 읽기 경험에서 세로쓰기를 했을 때 그 매력이 돋보이는 시는 박용철의 '비'다). 나무 펜은 처음 보는 거라 펜촉을 어디에 꽂아야 되는 건지 헷갈려서 애를 먹었는데, 참 고아(古雅/高雅)하다.


어찌됐든 진짜 『사슴』을 만날 기회는 다시 밀렸다. 나는 한 번 산 책은 거의 팔지 않는 주의여서 이 파본을 내놓을 일이 없겠지만, 그런 일이 정말 생길 지는 두고봐야 할 일이다. 성급하게 문자를 지워 잘못된 부분이 미궁으로 빠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중고서점 주인분들과 중고샵 애용자분들, 모두 큰 일 없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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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18 1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본 사실을 알리지 않고 책을 파는 비양심적인 사람도 문제지만, 이를 알면서도 알리지 않는 독자의 태도도 아쉬워요. 아무님처럼 공개글을 작성해주면 좋은데 대부분 독자들은 책의 잘못된 점을 알리는 것을 꺼려해요. 내가 나서서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가볍게 넘어가는 편이 많아요. 독자서평이 개인을 위해서 쓰는 글이라고 해도 책의 단점을 말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무 2016-03-18 12:49   좋아요 0 | URL
저도 문득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이 글을 쓰진 않았을 겁니다^^;; 전량 파본이라 4월에 전부 다시 배송한다고 하던데, 알라딘 중고서점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으로서 혹여나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 염려하여... 그 문자를 보지 않았거나 백석 시 전문가가 아니면 이 책이 파본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게 상당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도 이제 기억이 안나거든요..ㅠㅠ 저도 일차적으로는 저 자신의 정리를 위해 서재에 글을 씁니다만, 주관적인 평가의 영역이 아니라 오류의 영역이라면 밝히는 게 맞겠죠. 문득 구병모의 `이창`이 생각나 `희대의 오지라퍼`가 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런 오지랖은 좀 떨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