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북플을 시작할 때, 많은 사람을 팔로우해야 여러 가지 책들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검색하면서 사람들을 찾았었다. 그때 내가 보았던 주된 기준은 마니아였는데, 그때만 해도 내가 이 분야, 이 작가의 마니아라고 선택할 수 있는 건줄 알았다.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그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을 때는,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내가 마니아라고 하는데 알라딘에서 '니가 마니아라는 걸 증명해봐'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근데 아직도 마니아가 되는 것의 기준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알라딘에서 뭘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마니아 항목에 별로 관심을 안 두고 있었는데, 오늘부로 나는 (알라딘에서 인정한) 황정은의 40번째 마니아가 되었다... 뭔가 난 원래부터 마니아였는데, 알라딘에서 '아이구 그동안 열심히 썼네. 그럼 인정해줄게.'하는 느낌이어서 아무튼 좀, 그렇다.

 

 

 

 

 

 

 

 

 

 

 

 

 

아직 중학교 국어 교과서가 국정 교과서이던 때에, 교과서에는 오정희의 단편 '소음 공해'가 수록되어 있었다. 자꾸 드르륵드르륵하는 소리에 처음에는 경비실을 통해서 항의만 하다가 슬리퍼를 사들고 올라갔더니, 위층 사람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었다는 얘기. 소재만 놓고 보았을 때, 황정은의 '누가'는 2014년판 '소음 공해'처럼 보인다. 그렇게 생각하는 걸 우려한 것일까. 항상 보일 듯 말 듯하지만 잘 보이지 않게 이야기를 펼쳤던 황정은은 (뭔가 황정은답지 않게) 이 작품에서 '계급'이라는 단어를 등장시켰다.

 

석 달 동안 그녀의 몸엔 특별한 증상도 없이 미열이 이어졌다. 그녀는 그게 소음들 때문이라고 믿었고 공기관에 민원도 넣어 보았는데 그때뿐이었다. 어떻게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그때 자신이 계급적 인간이라는 것을, 자신이 속한 계급이라는 걸 알았다. 이런 거였구나. 이웃의 취향으로부터 차단될 방법이 없다는 거. 계급이란 이런 거였고 나는 이런 계급이었어. 왜냐하면......  (16쪽)

 

이웃들 간의 배려의 문제였던 소음이 '계급'이라는 말로 인해 계급의 조건, 가난으로 전환된다. 인용한 부분의 뒤에 나오는 독백은 작가의 개입이 조금 지나친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웃 공동체 안에서의 배려라는 화제로 벗어나는 것을 막고 계급에 초점을 두기 위한 것이 작가의 의도였다면, 그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황정은은 단순히 '소음=가난의 증거=계급의 조건'에서 작품을 끝맺지 않고 더 나아간다. 자신이 들어온 방에 원래 살던 노인 이야기, 한밤중에 듣게 되는 쿵쾅대는 소리들.. 결국 소음을 참지 못한 화자 '그녀'는 닥치는 대로 물건을 집어 천장을 향해 내던진다. 이런 행위로 인해, 그녀는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었다.

 

그녀는 열쇠 구멍 쪽에 바짝 귀를 대고 누구시냐고 다시 한 번 물었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누군가 대답했다.

아래층이야 씨발 년아.  (28쪽)

 

황정은은 라디오 책다방에서 화자가 남자였어도 '씨발 년아'라고 썼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더 모욕적이고 공격적인 욕설이므로... 같은 주택에 사는(많은 분들이 배경이 아파트라고 생각하시는데 사실 배경은 주택이다라고 황정은은 말했다.) 그들은 계급이라는 조건에서 서로 다를 바가 없음에도 '누가' '지랄'을 하는지 찾아 서로를 공격하고 공격받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인 것이다. 황정은은 이 단편을 통해 가난이라는 조건을 공유하는 공동체 사이에 연대는커녕 소통도 불가능하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더욱이 소설에서 그녀의 직업은 금융권의 상담원으로, 고객에게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는 직업이다. 사실 그녀가 상대하는 고객과 그녀의 조건은 다를 것이 없는데도, 그녀는 그들을 '공격'하고 '공격'할 수밖에 없는 조건 안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는 주택 사람들과 완전히 같다고 볼 수는 없는데, 이유는 천장으로 물건을 던지는 그녀의 외침에 있다.

 

나는 그 노인보다 낫지만 지금의 나하고 그 노인 사이엔 거의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으니까 언제고 나는 그 노인이 있었던 곳에 스무스하게 당도할 것이다. 그 거리를 최대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돈뿐인데 나는 돈이 없지. 이상하게 지금 돈이 없고 어쩌면 영원히 없지. 그러니까 말하자면 방법이 없는 거야. 나는 미래에 아주 매끄럽게 그 노인처럼...... 어?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런 예감이고 그런 예지다. 그 와중에 니들 같은 인간들한테 시달리면서...... 니들 같은 이웃한테 시달리면서...... 그냥 죽 사는 거야. 니들은 다를 줄 알지? 다른 줄 알고 다를 것 같지? 그런데 니들하고 나하고는 다른 게 없지. 완전 같지. 서로가 서로에게 고객이면서, 시달리면서, 100퍼센트의 고객으로는 평생 살아 보지도 못하고 어? 나는 이게 다 무서워서 불쾌한데 니들은 이게 장난이고 나만 미쳤고 내가 우습지?  (27쪽)

 

그녀는 자신이 처해 있는 조건이 자신이 속한 계급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옥죄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과 불쾌함이 있다. 하지만 열심히 소음을 일으키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런 인식조차 없다. 그저 시끄럽다고 항의하면 '죄송합니다아아아아'하면서 무시하고, '꿍, 꿍, 꿍' 소리를 내며 '무라무라무라'하고 떠들 뿐이다. 이사를 하면서 자신이 노인을 몰아내는 것 같은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이 속한 계급에 무서움과 불쾌함을 느낀다는 점에서 그녀는 분명 다른 사람과 다르지만, 그런 인식이 대안을 마련해주지는 못한다. 가난이라는 계급적 조건의 힘 때문이다. 결국 그녀도 '씨발 년'이 되지 않았던가.

 

소리에 대한 얘기를 빠뜨릴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른 황정은의 작품들에서 보여주듯, '누가'에도 너무 낯설어서 당혹스럽지만, 어느 순간 수긍하게 되는 의성어들이 등장한다.(어떻게 그렇게 표현할 생각을 해요?라는 질문에 황정은은 저는 그렇게 들려요... 라고 했다.) 떠드는 소리를 '무라무라무라'하고 표현한 것도 그렇고 다음 장면도 그렇다.

 

핸드폰 매장은 처음부터 최저가 판매, 사거리 어느 집보다 싼 집, 어떻게 하면 안으로 들어와 보실래요? 등등의 문구를 유리에 덕지덕지 바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공기를 넣어 부풀리는 풍선 간판을 세우고 LED 조명등을 설치하고 바깥을 향해 스피커 두 개를 설치해 음악을 틀어 대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즈음 실업 급여를 받으며 집에 머물고 있었고 그 음악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쿵 칙 쿵 칙 쿵 직 쿵 직 붕 지 붕 지, 하는 소리들. 소음들. 음악 말고 소음들.  (15쪽)

 

어떻게 들어야 소리가 붕 지 붕 지 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걸까.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상한 건, 점점 수긍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들릴 수도 있겠다, 하고... 그리고 다음에 실제로 그 소리를 들을 때는 정말 그렇게도 들린다. 매장의 풍선 인형들은 정말 붕 지 붕 지 하고 펄럭일 것 같고, 시계바늘은 정말 책 책 책 하는 소리를 내는 것 같은('야행'), 그 이상함이란...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소음이라는 소재를 계급이라는 문제로 잘 풀어낸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작가의 개입이 좀 티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예전에 '옹기전'을 읽을 때도 느낀 거지만, 황정은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의 독백은 왠지 모르게 어색하다. 뭔가 인물이 말하듯 매끄럽지 않고 딱딱 끊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는데, '누가'에도 그런 부분이 있어서 조금은 아쉬웠다. 그리고 이 작품은 들여쓰기를 안 했다. <계속해보겠습니다>도 들여쓰기가 안 되어 있는데, 황정은은 라디오 책다방에서 글이 아니라 말하는 것처럼 쓰고 싶었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 차이는 잘 모르겠다.

 

한동안 황정은의 작품을 읽을 일은, 새 책이 나오지 않는 이상 없을 것 같다. 아직 '양의 미래'와 '아무도 아닌, 명실'이 남았지만... 좀더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읽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원래는 작품집을 다 읽고 글을 쓰려고 했지만, 황정은의 40번째 마니아가 된 기념으로...

 

덧 ) 자선작은 '낙하하다'가 실렸는데, 이 작품은 <파씨의 입문>에도 실려서 이미 읽었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단편인데, 나는 이 소설을 소설로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수필로서 좋아하는 것 같다. '낙하하다'를 생각하면 황정은이 떠오르고, 황정은의 세계관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든다. 내가 이 작품을 좋아하는 건, '낙하하다'에 나타난 세계관이 나의 그것과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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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0 0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0 0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0 0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0 0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5-07-10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라마다 동물 울음소리를 다르게 표현하듯이 ˝붕 지 붕 지˝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아무 2015-07-10 23:42   좋아요 1 | URL
제가 너무 관습에 젖어있었나요? 뭔가 보면 맞아 이 소리를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싶어서... 개인적으로 가장 아차 했던 건 초침가는 소리를 책책 이라고 했을 때인 것 같네요^^

AgalmA 2015-07-10 23:44   좋아요 1 | URL
아, 그 책책 페이지 보고 좌절! 나도 그렇게 해 보고 싶었는데ㅎㅎ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 <사랑의 역사> 소설 속 시도들도 정말 선수 뺏긴 거 같았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