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想 하나. (2021년 12월 18일)
청담에 갈 일이 있어서 내려간 김에 소전서림이라는 곳을 방문했다. 서점이 아니라 도서관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신간 진열대에 있는 신간은 담당자 분에게 말하면 구입할 수 있는 듯하다) 이곳은 유료로만 입장이 가능하고, 전일권과 반일권 중에 선택할 수 있다. 음료 반입은 안 되고, 1층에 있는 2X2라는 카페에서 구매하거나 안에서 물(아마 탄산수)을 구입해야 하고, 텀블러가 있다면 주전자(?)에 담긴 커피와 식수대를 이용할 수 있다. 나는 반일권(3만원)을 구입하고 지하로 내려갔다.
고요하고도 널찍한 공간이었고, 앉아서 책을 보기에 편안해 보이는 의자와 공간들이 많이 있었다. 파티션으로 분리된 공간에는 편안한 소파의자가 있어서 조용히 책을 볼 수도 있고, 한쪽에는 다리를 뻗고 앉을 수 있는 1인 소파들이 쭉 펼쳐진 공간도 있다. 곳곳에 숨겨진 책장들도 많아서 찾는 재미도 있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도서관 식으로 책을 분류하고 있어서 우리가 흔히 서점에서 볼 수 있는 전집류의 진열을 볼 수 없다는 것.
안마의자도 하나 있어서 안마를 받으며 책을 볼 수도 있었지만 이미 다른 분이 차지하고 있었다. 다 둘러본 뒤 DVD 영화를 보라고 마련된 공간에 다리를 뻗고 앉아 《잔류 인구》를 잠시 읽었다. 너무 따뜻해서 꾸벅꾸벅 졸았지만... 잠시만 있을 수 있어서 금방 나와서 집으로 향했다. 다음에는 여유를 두고 오래오래 있으면서 책을 보기에도 좋을 것 같다. 텀블러도 꼭 챙겨서..
단想 하나. (2021년 12월 21일)
자정을 넘기고 잠들기 전에 이 책 저 책을 뒤적거리다가 최승자 시인의 에세이를 펼쳤다. 앞의 두 꼭지를 읽는데 '아, 그렇지. 이것이 내가 알던 최승자이지.'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특히 첫번째 꼭지인 〈다시 젊음이라는 열차를〉(1976)은 모든 부분에 밑줄을 치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들었다. 내가 그녀의 초기 시에서 받았던 느낌의 시 세계가 두 쪽 반짜리 글에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서늘하고 쓸쓸한, 그러나 단단한 결의.
그래서 때로 한 10년쯤 누워 있고만 싶어질 때가 있다. 모든 생각도 보류하고 쉽게 꿈꾸는 죄도 벗어버리고 깊이깊이 한 시대를 잠들었으면.
그러나 언젠가 깨어나 다시 시작해야 할 때의 황량함, 아아 너무 늦게야 깨어났구나 하는 막심한 후회감이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한다. 결국 그 거대한 타의의 보이지 않는 폭력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 인간답게 죽어질 수 있기 위해서는 대항해서 싸우는 필사의 길밖에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밤에도 나는 이를 갈며 일어나 앉는다. 끝없이 던져지고 밀쳐지면서 다시 떠나야 하는 역마살의 청춘 속에서, 모든 것이 억울하고 헛되다는 생각의 끝에서, 내가 깨닫는 이 쓸쓸함의 고질적인 힘으로, 허무의 가장 독한 힘으로 일어나 앉는다.
잠들지 않고 싸울 것을, 이 한 시대의 배후에서 내리는 비의 폭력에 대항할 것을, 결심하고 또 결심한다. 독毒보다 빠르게 독보다 빛나게 싸울 것을. 내가 꿀 수 있는 마지막 하나의 꿈이라도 남을 때까지.
- 〈다시 젊음이라는 열차를〉(14쪽)
단想 둘. (2021년 12월 23일)
김초엽의 《방금 떠나온 세계》의 두 번째 단편 〈마리의 춤〉을 다 읽었다. 〈최후의 라이오니〉는 내가 익히 알던 김초엽, 그러니까 《우빛속》의 김초엽이었는데, 이 단편에서는 변화가 느껴진다. 《사이보그가 되다》의 그림자가 드리워있다고 해야 할까. 《사이보그가 되다》에서 김초엽이 품고 있던 문제의식이 분명하게 보이고, '모그'라는 존재에 대한 설정에서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P선생'이 떠오르기도 했다. 추상적인 형태만 자각하고 구체적인 형태를 인지하지 못하는 P선생의 사례에서 색스는 현대 과학의 맹점을 짚어내지만, 김초엽은 이러한 상태를 장애라고 부르길 거부하고 새로운 (소설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 같다. 올해 읽을 마지막 책으로 완독하고자 하는 목표는 이룰 수 있을까?
잡想 하나. (2021년 12월 24일)
아니, 김초엽의 신간이 또 나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