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진호’(02-815-9363) 주인 김형창(57)씨는 하루 몇 차례 책을 버린다. ‘문화쓰레기’라고 이름했다. 중간상한테 사들인 책 가운데 30%가 여기에 해당한다. 팔리는 책과 팔리지 않는 책, 팔리지 않아도 좋은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은 금방 구별된다. 34년동안 밝힌 눈이다. 좋은 축에 들지 않는데가 팔리지 않는 책이 소위 문화쓰레기다.

노량진역에서 5분 거리, 뻥 뚫린 6차선 장승백이 길. 가게는 전면이 유리인데다 반듯한 사각형. 책들 역시 쌓이고 꽂힘에 군더더기가 없다. 벽 책꽂이 외에 여느 책방처럼 가운데 쌓아둔 게 없다. 책꽂이 앞에 종아리높이로 한켜 쌓였을 뿐. 바닥에 듬성듬성 놓인 책들은 금방 어디서 가져온 듯 혹은 어디로 넘기려고 묶어놓은 듯하다. 시원하다 못해 썰렁하다.


“이 공간 금방 채워요. 일주일 정도 버리지만 않으면….” 책상에는 도서관의 정리도서와 출판사에서 나온 재고소설들이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만주국정지도총람>(강덕 11년판) <만주경제제도론> 등 만주국 관련 낡은 책이 묶여 있고, 발치에는 <에도시대 화가들> <일본이계회권> <일본 가공전승 인명사전> 등 일본미술 관련 서적이 50여권 묶여 있다. “묶여 있어야 제값을 발휘하는 책들이 있어요.” 그는 ‘일괄자료’라고 설명했다.


책등이 보이지 않게 돌려놓은 책 뭉치가 눈에 띄었다. “아껴놓은 겁니다. 들여온 뒤 바로 풀면 허전해요.” 그러한 ‘비장의 것’이 있으면 가게로 나오는 걸음이 가볍다. “생각하면 우스워요. 그게 뭐 별 거라고….” 요즘처럼 힘든 때 스스로를 북돋는 부적과도 같다.


책방이름 진호는 철진, 철호 두 아들 이름의 끝자를 땄다. 아무렇게나 책방을 운영하지 않겠다는 시작할 때의 다짐이다. 지금도 그것은 변함없다.
중학생쯤 됨직한 소년이 참고서 6권을 고르고 1만원에 달라며 떼를 썼다. 주인은 “책에는 값이 있다”며 “버리면 버렸지 그 값에는 안 된다”고 말을 잘랐다. 그는 싸게 판 책은 제대로 읽히지 않는다고 굳게 믿는다. 값싸게 만들어진 책 역시 지적 자원화하기보다 소모된다고 말했다. “묵직한 책이 잘 안 팔려요. 가볍고 표지가 쌈박한 것을 많이 찾습니다.” 그래서 사회과학 분야를 찾는 손님은 한번 더 본다.


책 구해달라는 사람이 더러 있지만 ‘꼭’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예전과는 달리 구하면 좋고 그렇지 않아도 그만이거나, 인터넷 등 ‘손가락만 까딱하면’ 구할 길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영영사전이 쌓인 데를 가리켰다. 코빌드, 롱먼, 옥스퍼드, 랜덤하우스 등 15권 남짓이다. 공부하는 사람들한테 꼭 필요한 것인데 안 팔린다. 국어사전도 그렇고 백과사전도 그렇다. “일본에서 사전 매출이 70% 떨어졌다는 얘기를 3년 전에 들었어요. 우리는 올해부터 확 표가 나네요.”


여러 외국어에다 참고서, 소설, 인문분야 등 두루 꿰어도 임대료 걱정하고 있는 현실이 가끔은 서글프다.
그는 서랍에서 에도시대(1836년)에 발행된 ‘우키요에’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화광노인)의 만필집 <화본괴 2편>을 꺼내 조심스럽게 펼치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책이 좋다면서 돈벌이만 생각하면 진작 걷어치웠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글·사진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 한겨레신문 05.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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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외국서점(02-793-8249)은 지하철 6호선 녹사평 역에서 가깝다. 구름다리 건너 남산쪽 30m쯤. 문고판 책이 똑 고르게 뉘어 쌓인 게 꼭 타일벽 같다. 현대문학, 철학, 심리학, 과학, 그리고 어린이책 등. 역시 같은 크기 문고판은 가로로 뉘었고 그밖의 판형은 세로로 꽂혔다. 그러고 보니 책방도 꼭 문고판이다.

주인 최기웅(63)씨 뒤편에 73년에 발행된 제14종 고물 영업허가증이 액자 속에 걸렸다.
기지촌에서 책을 구해다가 명동, 청계천 헌책방에 겁나게 팔았어. 남은 것은 화신백화점 옆골목에서 노점을 벌렸어. 그게 1968년이여. 3년 뒤에 여기에 자리 잡았지.
영어책 없어서 못 팔았어. 셰익스피어, 까뮈를 만나면 횡재한 기분이었지. 구두, 양복, 단추, 안경, 귀금속 등 카탈로그가 돈이 됐어. 업체에서 그걸 참고해서 물건을 만들었어. 세계 기능경시 대회에서 한국인들 입상한 뒤에는 나 같은 사람이 있었어. 말하자면 나는 애국자야.

미군부대 쓰레기 하나도 안 버렸어. 음식찌꺼기는 꿀꿀이죽으로 만들어 남대문 시장에서 팔았어. 사람들이 줄서서 먹었지. 허기진 한국인들 영양보충시킨 구황식품이랄까. 책은 말이야. 배움에 허기진 사람들한테 ‘구황서적’이었어. 철원 운천 운산 판문점 김포 부산 군산 춘천… 안 가본 데가 없어. 그래서 딸 셋 키웠지. 요즘? 쪽박이라구. 미군부대에서는 전혀 책 안 나와. 80여군데 외국공관원들이 떠날 때 팔거나 주고 가는 게 대부분이야. 호텔에서 잡지나 포켓북이 좀 나오고… 무엇보다 부근에 경쟁 책방이 두 군데나 더 생겼어. 한군데는 외국인이 주인인데 책 빠꼼이야. 새책 싸게 들여와 팔고 무엇보다 환경이 좋아. 손님 다 뺏어갔어. 봐, 손님이 없잖아. 어쩌는 수 없지만 좁은 바닥에 외국인까지 끼여 돈 벌어나가니 한심하지 뭐. 걔들은 처음부터 돈 벌자 주의고, 나는 문화수입에 기여한다는 의무와 긍지가 있었지.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여기 큰 복덕방 뒤엔 미국 메이저가 있어. 한국인은 바지사장이고. 형편없는 영어강사들 많아. 술자리에서 낄낄대면서 학생들 성희롱한 얘기해. 돈은 중국, 동남아에 가서 쓰고 들어와. 그리고 한국문화 소개하는 출판사가 있는데 미국인이 사장이야. 빌딩도 있고. 한국인들 참 호구야.


미군들 독서열 대단해. 도서관 꽉꽉 차. 배낭 맨 외국인 십중팔구 책 들어있어. 한국인들 백에 하나? 여기 손님도 그래. 한국 학생, 교수 거의 없어. 사가도 한두 권? 인터넷으로 새책 산다쳐도 바꿔보고 처분해야 할 것 아닌가. 양서들은 문고판으로 만들어 휴대 쉽고, 가벼운 종이에 인쇄 선명해. 빛 반사도 안되고. 우리 출판사들 반성해야 돼.
얘기해준 대신 후계자 하나 구해줘. 영어 잘하고, 컴퓨터 할 줄 알고, 출판에 관심있는 사람으로. 다 넘겨줄 의향 있어.
언뜻 눈에 띄었던 책들. 딘 쿤츠, 존 그리샴, 제임스 미치너, 파울로 코엘로, 커트 보네것.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 한겨레신문 05.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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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 4번 출구를 나오면 흙서점(02-884-8454)이 바로다. 그릇, 미싱, 체중계, 테이프, 화분, 테이프 등 책방 앞에 널린 고물이 ‘중고서적’이란 간판보다 오히려 눈길을 끈다. ‘아무거나 1000원’이란 서가위의 책들은 약간 빛이 바랬으나 조금 뒤적이면 읽을 만한 것들이 나올 법하다.
큰 길 가 25평의 이곳은 가게의 앞면이 전부 유리라 내부가 무척 밝다. 고서는 거의 없고 ‘헌책’이 대부분이어서 세월이 고인 퀴퀴한 냄새라곤 없다. 분야별로 잘 정리돼 찾기도 쉽다.


두 주에 한번은 들른다는 김용찬(42) 교수(한중대 국문과)는 “눈도장을 찍어둔 책이 다음에 오면 대부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책 다섯 권 값을 치른 뒤 뒤돌아보다 그예 책 한 권을 더 집어들었다. 아이 책을 고르던 한 주부는 “책값이 적정하다”면서 “그런 만큼 자주 와야 마음에 드는 책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인 김성수(51)씨는 책 손님을 응대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 틈에 액자 값이 얼마냐, 촛대가 진짜 놋쇠냐, 야전삽이 펴지지 않는다 등등 고물 손님의 시중도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귀찮아하는 기색이 없다. 미싱값을 묻는 사람한테는 한번 손을 봐야 한다고 상태를 설명해 주었다. 조금 뻐끔하면 어느 새 그는 책꽂이의 책을 정리했다. 김씨는 “한 이틀 비가 오면서 뜸했던 손님이 몰린 것 같다”며 웃었다. 오후 4시, 안주인과 잠시 교대하는가 싶더니 그는 계산대 안쪽 좁은 공간에서 선 채로 늦은 점심을 들었다. “책을 사러 가야 한다”며 잠깐 틈을 내 물어볼 게 있으면 물어보라는 그한테 도대체 질문이란 게 한가해 보였다.
고단한 일이 마무리되는 밤 11시를 넘겨 0시40분부터 잠잘 시간을 뺏어 전화로 몇 가지를 귀동냥했다.


고향 선배의 권유로 86년 봉천 6동 뒷골목에서 시작해 한때 세 군데를 운영하다가 구제금융 이후 통폐합해서 이곳으로 이사온 지 10여년. 목이 좋아선지 주인의 인상이 좋아선지 잘 되는 편이다. 고정적으로 책을 대주는 사람도 서넛 있고 단골손님도 꽤 많다. 특히 서울대학 근처라 학생 손님이 많은 편. 단골 가운데 터키 유학생은 작년 여름방학 때 자신의 고1 딸을 데려가 17일 동안 터키 구경을 시켜줄 정도로 친해졌다. 애타게 구하던 책을 구하고 기뻐하는 손님의 표정이 가장 좋고, 보던 책을 제자리에 꽂아두는 손길이 고맙다. 책값을 무턱대고 깎는 사람은 책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는 일침이다. 딸 인영(이화여대 2)씨는 “부모님이 워낙 책을 좋아하시고 책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즐기신다”면서 없어져가는 헌책방을 지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귀띔이다.
고물 수익금은 한달 10여만원. 재활용, 쓰레기 감소, 고물장수 돈벌이 등 일석삼조라는데, 수익금을 남을 위한 좋은 일에 쓴다니 일석사조일 테다.
 
 
한겨레신문 05.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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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손님이 차 번호와 운행시각을 묻다가 책손님이 된다. 길 건너 행인도 그냥 건너오면 손님이다. 집현전(031-968-4945)이 자리한 원당은 전형적인 경기도 작은 읍내다. 부근에 아파트를 끼고 일산과 화정 길목이다.

아니, 이런 책이 벌써? 신간안내에서 본 기억이 생생한 책들이 많다. 깨끗한 사람을 거친 ‘헌책’이라는 게 주인 유경용(45)씨의 설명이다. “서울에서라면 금방 나갈 책들이죠.”
98년 구제금융 당시 실직한 유씨가 아내 최경희(39)씨를 믿고 일을 벌였다. 최씨는 갓난아기 때부터 부모님이 운영하는 헌책방의 살림방에서 자라 책이라면 감으로 아는 터.
“부모님이 기자촌에서 40여년 하셨어요. 어른들이 안 계실 때는 제가 대신 했죠. 결혼 전에는 불광동에서 ‘등용문’이란 책방을 한두 해 직접 운영한 적도 있고요.”


오빠와 언니들 모두 헌책방을 거쳤다. 작은오빠는 대치동 은마아파트 앞에서 10여년을 꾸린 바 있고 큰오빠는 30여년째 헌책 도매를 하고 있다. 남편 유씨 집도 만만치 않아 그의 동생이 미아리에서 ‘책의 향기’를 운영하다가 지금은 형을 돕고 있다. 말 그대로 헌책방 집안이다. 모이면 화제가 책이다. 요즘 어떤 책이 잘 나가나, 헌책방의 살 길은 무엇이냐 등등. 결론은 큰오빠 몫이다.


얘기보따리를 푸는 도중 ‘화정 아줌마’가 사과 한 봉지를 사왔다. 좋은 책 싸게 사간 사례란다.
“책을 사면 아파트까지 배달해 드려요.” 주부들이 집을 지키는 경우가 많아 배달은 부인 최씨 몫이다. 매출의 상당부분이 어린이책과 참고서다. 일부러 찾아오기엔 외진 게 사실. 그래서 단골손님이 많다고 했다. 개업하던 날 와서 떡을 먹은 중학생 다섯 명 가운데 둘은 대학생이 되어 지금도 찾아온다.
처음 15평으로 시작해 딸린 창고 2평을 미술책 공간으로 털어 합쳤고, 이제는 길 건너 2층의 32평 창고를 어린이책 전용으로 개방했다. 아르바이트 직원도 있다. 책이 좋아 단골이었던 분이다. 
 
스트레스? 손님이 찾는 책이 없을 때, 1500원짜리 사면서 깎아달랄 때, 주워오면서 비싸게 판다고 말할 때 제일 많이 받는다. “책방이 옛날 같지 않다는 말은 비수예요. 그말 안 들으려고 엄청나게 노력해요.” 책을 구하는 루트는 며느리한테도 안 가르쳐주는 비밀이다. 단, 큰오빠한테는 한달에 세번 정도 찾아간다고 공개했다.


‘인터넷으로 팔아보라’라는 권유를 종종 듣지만 아직 그럴 생각이 없다. 찾아온 손님이 건져가는 기쁨을 함께 누리고 싶다는 게 최씨의 말이다. “찾던 책을 발견한 기분은 손님의 표정으로 단박에 전해져요. 전율 같달까요. 그러고 나면 뿌듯하고 한동안 자신감도 생기고 그래요.”


부부가 같이 장사하지 말라는데, 이제는 이견이 거의 없다. 다만 아내쪽이 책 욕심이 많고 남편은 확실한 것만 가져온다. 고서는 인터넷으로 옮아갔다는 게 이들 부부의 판단이다. 반년에 한번쯤 걸리는 고서에는 미련을 버렸다. 일년 전부터 어린이책 전집을 적극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문 닫는 수밖에 없어요.”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 한겨레신문 05.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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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역사장편이 좋더군요. 건륭황제, 강희대제 다 읽었어요. <대망>, <토지>는 두 번 읽었고요.”

신광헌책(02-923-9960)의 오후. 주인 이종우(52)씨는 중화텔레비전을 틀어놓았다. 대하 역사드라마 ‘황제의 딸’이 방영되고 있었다. 건륭황제 때의 이야기여서 재미있단다.


책방이 깔끔하기는 면도를 말끔하게 한 주인의 얼굴과 흡사하다. 앉은 자리 뒤쪽에 짝 맞춰진 대하소설들이 고른 이빨처럼 꽂혔다. 길쭉한 사각공간의 책벽과 중간의 길쭉한 책탑. 그리고 끝에서 꺾어드는 책창고. 책들은 대체로 분야별로 분류되어 일별하기 쉽다. 왼쪽벽은 레일식 책장을 써 두 겹이다.


“요즘 사람들 끈기가 없어요. 길거나 두꺼운 책, 글씨 많은 책 안 읽어요. 워낙 볼거리가 많아서겠지만요. 텔레비전 틀면 스물네 시간 나오지요∼, 1000원만 주면 비디오 빌려보지요∼.”
찾는 사람이 많은 <상실의 시대>를 보았더니 별 것 없더라면서 꽂힌 지 오랜 주홍색 삼성사상전집, 범우사판 문학·역사 고전들을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움베르토 에코가 요즘은 한물 갔다. 코엘료도 그렇게 되지 않겠는가. 존재의 빛을 옅우고 너덜거리게 만드는 시간의 굴레에서 모든 것이 자유롭지 않음은 헌책방에서 소롯이 드러난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과 손님들이 자주 찾는 것과는 괴리가 있다. 깨끗한 고전책을 많이 갖춘 것은 그 틈을 메우려는 몸짓일 테다. 고전들은 책장에서 주인처럼 번듯하고 유행을 타는 신간(?)들은 뜨네기처럼 바닥에 쌓였다. 청계천, 홍릉 등 언제 어느 곳에서 떼어 왔는지 모두 기억한다. “내 눈으로 뽑아 제값 주고 사온 것들입니다.” 말하자면 주-객의 긴장관계에서 선택받은 것들이라 첫눈에 깐깐하다.


책방은 성신여대 정문에서 보아 왼쪽 길을 가다가 편의점을 끼고 돌면 툭 튀어나온다. 전철역에서 가려면 여대 앞길을 지나야 하는데, 그 길을 도시라 치면 책방으로 난 길은 시골이다. 전혀 다른 세계를 몇 분 사이에 경험하는 셈. 책방행은 내리막처럼 힘들지 않으나 되짚어 나오기는 무척 고단하다. “여대 앞 책방은 잘 안 된다고 해요.” 인과를 증명할 수 없지만 갖춰둔 학술서적이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굳이 여대 앞이라 그럴 것도 아니다. 여러 해 전 헌책방 주인들 13명으로 출발한 모임이 지금은 없어진거나 진배 없다. 8명은 새책방으로 바꿨고 4명은 아예 그 동네를 떴다. 헌책방은 이씨 혼자 남았다. 지금도 생각은 젊어서 100평쯤은 하고 싶은데 도무지 계산이 안 나온다. 지금 스무 평도 한달 110만원 집세를 내기 힘들다.


전성기 때 쓰던 재단기가 기억처럼 한쪽 구석에 있고 이씨는 손님이 고른 책을 걸레로 닦아 봉투에 넣어주었다. 그 새 중화텔레비전에서는 ‘황제의 딸’이 끝나고 ‘모택동의 대장정’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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