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손님이 차 번호와 운행시각을 묻다가 책손님이 된다. 길 건너 행인도 그냥 건너오면 손님이다. 집현전(031-968-4945)이 자리한 원당은 전형적인 경기도 작은 읍내다. 부근에 아파트를 끼고 일산과 화정 길목이다.

아니, 이런 책이 벌써? 신간안내에서 본 기억이 생생한 책들이 많다. 깨끗한 사람을 거친 ‘헌책’이라는 게 주인 유경용(45)씨의 설명이다. “서울에서라면 금방 나갈 책들이죠.”
98년 구제금융 당시 실직한 유씨가 아내 최경희(39)씨를 믿고 일을 벌였다. 최씨는 갓난아기 때부터 부모님이 운영하는 헌책방의 살림방에서 자라 책이라면 감으로 아는 터.
“부모님이 기자촌에서 40여년 하셨어요. 어른들이 안 계실 때는 제가 대신 했죠. 결혼 전에는 불광동에서 ‘등용문’이란 책방을 한두 해 직접 운영한 적도 있고요.”


오빠와 언니들 모두 헌책방을 거쳤다. 작은오빠는 대치동 은마아파트 앞에서 10여년을 꾸린 바 있고 큰오빠는 30여년째 헌책 도매를 하고 있다. 남편 유씨 집도 만만치 않아 그의 동생이 미아리에서 ‘책의 향기’를 운영하다가 지금은 형을 돕고 있다. 말 그대로 헌책방 집안이다. 모이면 화제가 책이다. 요즘 어떤 책이 잘 나가나, 헌책방의 살 길은 무엇이냐 등등. 결론은 큰오빠 몫이다.


얘기보따리를 푸는 도중 ‘화정 아줌마’가 사과 한 봉지를 사왔다. 좋은 책 싸게 사간 사례란다.
“책을 사면 아파트까지 배달해 드려요.” 주부들이 집을 지키는 경우가 많아 배달은 부인 최씨 몫이다. 매출의 상당부분이 어린이책과 참고서다. 일부러 찾아오기엔 외진 게 사실. 그래서 단골손님이 많다고 했다. 개업하던 날 와서 떡을 먹은 중학생 다섯 명 가운데 둘은 대학생이 되어 지금도 찾아온다.
처음 15평으로 시작해 딸린 창고 2평을 미술책 공간으로 털어 합쳤고, 이제는 길 건너 2층의 32평 창고를 어린이책 전용으로 개방했다. 아르바이트 직원도 있다. 책이 좋아 단골이었던 분이다. 
 
스트레스? 손님이 찾는 책이 없을 때, 1500원짜리 사면서 깎아달랄 때, 주워오면서 비싸게 판다고 말할 때 제일 많이 받는다. “책방이 옛날 같지 않다는 말은 비수예요. 그말 안 들으려고 엄청나게 노력해요.” 책을 구하는 루트는 며느리한테도 안 가르쳐주는 비밀이다. 단, 큰오빠한테는 한달에 세번 정도 찾아간다고 공개했다.


‘인터넷으로 팔아보라’라는 권유를 종종 듣지만 아직 그럴 생각이 없다. 찾아온 손님이 건져가는 기쁨을 함께 누리고 싶다는 게 최씨의 말이다. “찾던 책을 발견한 기분은 손님의 표정으로 단박에 전해져요. 전율 같달까요. 그러고 나면 뿌듯하고 한동안 자신감도 생기고 그래요.”


부부가 같이 장사하지 말라는데, 이제는 이견이 거의 없다. 다만 아내쪽이 책 욕심이 많고 남편은 확실한 것만 가져온다. 고서는 인터넷으로 옮아갔다는 게 이들 부부의 판단이다. 반년에 한번쯤 걸리는 고서에는 미련을 버렸다. 일년 전부터 어린이책 전집을 적극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문 닫는 수밖에 없어요.”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 한겨레신문 05.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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