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활딱 열려 있고, 선풍기가 홰홰 돌아도 덥다. 청구 헌책백화점(02-2252-3554) 주인 황영섭(62)씨는 ‘어깨 난닝구’ 차림이다. 비라도 한줄금 하려는지 찌는 듯한 무더위. 물 갈아줄 때가 지난 어항 속 물고기처럼 주인은 헉헉거렸다. 주인 또래의 노파가 언제부터였는지 징징대며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주인은 웅웅 대꾸하며 나른한 오후시간을 죽였다.


책들도 분위기를 타는가. 징징 웅웅, 바닥의 것들은 넘어지고 자빠져 있고 책꽂이의 것들은 들쑥날쑥 삐뚤빼뚤 도대체 ‘정신이 다’. 늘 그러한데 오늘 따라 유난스런 것은 아마도 더위 탓일 거다. 주인을 닮아서 체면이고 격식이고 없다. 어린이책, 참고서, 소설 그 정도 대충 영역을 정해 놓고 툭툭 던져진 듯한 게 여축없이 회색톤이다. 그러나 머무는 동안 찾아온 손님이 책을 물으면 있다, 없다, 황씨의 답은 확실하다. 값은 그까이꺼 대~충 얼마다. 행여 돈이 모자라도 그까이꺼 대~충 까준다. 세 내기가 귀찮아 건물을 사버린 주인은 손님 눈치도, 책 눈치도 안본다. 그까이꺼 대충 팔리면 그만이고 안 팔리면 버린다.

혹자는 이곳에는 쓸 만한 책이 없다고 한다. 책방이 아니라 고물상 같다는 혹평도 있다. 얼핏 보면 그럴만도 하다. 하지만 겉볼안. 주인은 부지런히 책을 거두어들이고 홈페이지를 열어 책을 올린다. 굳이 표를 내지 않거니와 매장 뒤편 창고에 한가득 갈무리해놓은 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주인을 채근해 둘러본 적이 있는 그곳에는 썩 값나가는 것은 없지만 책주인을 찾기 어렵잖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눈길 멎는대로 손에 잡히는대로 노후대비 저축하는 심정으로 쟁여둔 것이리라. 더 늙어 힘이 없어졌을 때 그 책들이 든든한 ‘빽’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눈치다.


그렇다고 매장이 아주 맹탕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여유를 두고 느긋하게 훑어보면 까탈스런 눈에도 의외의 책이 ‘여기요’한다. <화당집>(1720)을 한정 영인한 <화당 신선생 문집>(1979).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신민일(1576~1650)의 글모음이다. 임병양란을 살아 어수선한 시대의 편린이 싯구에 남았다. 원본 일실을 우려한 문중에서 비매품으로 만들었지 싶다. 서울정도 600년기념 설화집 <옛날옛적 서울에>(최래옥 편, 서울학연구소 1994), <벽> 1, 2(허영만, 팀매니아, 1995), <고어사전>(남광우 편, 교학사, 1997) 등등. 툭툭 던져둔 것들 중에 섞인 것들이다. 값은 ‘무척’ 눅다. 책은 주인을 만나야 한다는 게 황씨의 지론이다. 해서 ‘필요한 만큼’만 받는다.


넋두리하던 노파가 나가고 40대 주부가 초등학교 교과서를 찾았다. 불러주는대로 책을 뽑아주고 값을 셈한 주인은 다른 교과목 책 2권을 얹어주며 대구 가져가라고 했다. 필요할 때가 있을 거라면서.
지하철 청구역에서 내리면 조금 가깝고 약수역에서 내리면 조금 멀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한겨레신문 05.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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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혜자 2010-07-14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청구 헌책방 내외와 사진 찍다 곳곳에 보석책들이 넘 많다.2시간 걸려 싸장닙 얼굴뵈니 가슴이 따스해 온다.
자녀들은 서울대 출신 부러움이다 .새벽같이 일어나 온발로 뛰시는 그 부지런함을 그성실함을 존경한다.
늘 그자리에 늘 그곳에서 정겨운 난닝구 사랑하며 건강건강 하시길 빌어본다.
청구헌책방 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