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 4번 출구를 나오면 흙서점(02-884-8454)이 바로다. 그릇, 미싱, 체중계, 테이프, 화분, 테이프 등 책방 앞에 널린 고물이 ‘중고서적’이란 간판보다 오히려 눈길을 끈다. ‘아무거나 1000원’이란 서가위의 책들은 약간 빛이 바랬으나 조금 뒤적이면 읽을 만한 것들이 나올 법하다.
큰 길 가 25평의 이곳은 가게의 앞면이 전부 유리라 내부가 무척 밝다. 고서는 거의 없고 ‘헌책’이 대부분이어서 세월이 고인 퀴퀴한 냄새라곤 없다. 분야별로 잘 정리돼 찾기도 쉽다.


두 주에 한번은 들른다는 김용찬(42) 교수(한중대 국문과)는 “눈도장을 찍어둔 책이 다음에 오면 대부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책 다섯 권 값을 치른 뒤 뒤돌아보다 그예 책 한 권을 더 집어들었다. 아이 책을 고르던 한 주부는 “책값이 적정하다”면서 “그런 만큼 자주 와야 마음에 드는 책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인 김성수(51)씨는 책 손님을 응대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 틈에 액자 값이 얼마냐, 촛대가 진짜 놋쇠냐, 야전삽이 펴지지 않는다 등등 고물 손님의 시중도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귀찮아하는 기색이 없다. 미싱값을 묻는 사람한테는 한번 손을 봐야 한다고 상태를 설명해 주었다. 조금 뻐끔하면 어느 새 그는 책꽂이의 책을 정리했다. 김씨는 “한 이틀 비가 오면서 뜸했던 손님이 몰린 것 같다”며 웃었다. 오후 4시, 안주인과 잠시 교대하는가 싶더니 그는 계산대 안쪽 좁은 공간에서 선 채로 늦은 점심을 들었다. “책을 사러 가야 한다”며 잠깐 틈을 내 물어볼 게 있으면 물어보라는 그한테 도대체 질문이란 게 한가해 보였다.
고단한 일이 마무리되는 밤 11시를 넘겨 0시40분부터 잠잘 시간을 뺏어 전화로 몇 가지를 귀동냥했다.


고향 선배의 권유로 86년 봉천 6동 뒷골목에서 시작해 한때 세 군데를 운영하다가 구제금융 이후 통폐합해서 이곳으로 이사온 지 10여년. 목이 좋아선지 주인의 인상이 좋아선지 잘 되는 편이다. 고정적으로 책을 대주는 사람도 서넛 있고 단골손님도 꽤 많다. 특히 서울대학 근처라 학생 손님이 많은 편. 단골 가운데 터키 유학생은 작년 여름방학 때 자신의 고1 딸을 데려가 17일 동안 터키 구경을 시켜줄 정도로 친해졌다. 애타게 구하던 책을 구하고 기뻐하는 손님의 표정이 가장 좋고, 보던 책을 제자리에 꽂아두는 손길이 고맙다. 책값을 무턱대고 깎는 사람은 책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는 일침이다. 딸 인영(이화여대 2)씨는 “부모님이 워낙 책을 좋아하시고 책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즐기신다”면서 없어져가는 헌책방을 지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귀띔이다.
고물 수익금은 한달 10여만원. 재활용, 쓰레기 감소, 고물장수 돈벌이 등 일석삼조라는데, 수익금을 남을 위한 좋은 일에 쓴다니 일석사조일 테다.
 
 
한겨레신문 05.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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