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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1 ㅣ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평점 :
남의 것을 훔치지 않는다, 속이지 않는다, 질투하지 않는다, 위세부리지 않는다, 악에 가담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을 나름대로 지키며 살아왔어. 단 한 가지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 있다면 그저 이 세상과 맞지 않았던 것뿐이잖니?
처지를 비관하여 자살했다는 사람들에 관한 얘기를 뉴스를 통해 알 때마다 좀 만 더 살아보지, 하는 안타까운 생각을 하곤 한다. 남과 달라서 덜 가져서 혹은 집단에 들지 못한 소외감과 무력감에 목숨을 버리는 그들에게 이 소설 속의 남자 우에하라 이치로가 가진 뻔뻔함과 자신감과 저돌적 행동력의 만분의 일이라도 가졌다면.
국가도, 학교도, 경찰도, 필요 없다. 세금,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절대 낼 수 없다. 방해하지 마라. 간섭하지 마라. 썩어빠진 의무를 강요하지 마라. 개인의 무한한 자유와 가치를 무시하지 마라. 그는, 입만 열면 사회 모든 규범, 마땅히 당연히 시키는 대로 지키고 존중하고 복종해야만 한다고 굳게 믿는 것들을 향해 사정없는 폭탄을 투하한다. 때와 장소 사람, 가리지 않는다. 따지고 싸울 명분만 있으면 어디든 달려든다. 그 지독한 불신과 부적응을 보고 박수는커녕 눈살을 찌푸리던 당신,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인 우에하라 지로의 처지를 마냥 동정하던 당신은 이미 체제에 철저히 길들여진 반듯한 사람인가.
새털처럼 가벼운 소설의 탈을 쓰고 있지만, 톡톡 터지는 웃음에 섞인 시원함은 음습하게 그늘진 삶의 무거움을 단숨에 날려주는 저력이 있다. 어린아이와 눈높이를 맞춰 읽으며 재미를 공유하는 만화 같은 이야기와 다양한 인물들의 개성이 특히나 매력적이다.
모자가정의 불량아 구로키에겐 말할 수 없는 연민을 세탁소집 후계자 준에게는 귀여움을 애늙은이 같지만 반듯하고 공정한 무카이에겐 경외감을 무엇보다 우리의 주인공 지로에게는 동정과 응원이 깃든 미소와 박수를 열렬히 쳐 주고만 싶다. 그럼에도 잘 자라 주었구나, 하면서.
물론 소설 1권의 후반부터는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드디어 고대하던, 진짜 주인공다운 영웅적인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설마 했는데 역시나 그는 보통사람이 아니었어. 살아있는 전설이 아무나 되겠어.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
지로의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라는 인물은 2권에서부터 성격이 확 달라져 마치 다른 제목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고대하던 남쪽나라로의 이주 탓인지, 물을 만난 고기처럼 아버지로서의 권위가 우뚝 솟아나며 의젓하고 믿음직스런 가장 노릇을 하기 시작한다. 도쿄에서의 뒹굴뒹굴 인간은 소멸하고 부지런하고 억척스런 농부와 어부로 거듭난 것이다. 못 말리는 천덕꾸러기 아빠가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어른이자 투사가 되어 어린 아들의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은 감동이다.
사실 울 아버지는 이런 사람이었어, 라는 발견을 하는 자식보다 감격스럽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또 어디 있겠는가. 뿔뿔이 흩어져 산산조각이 나기 직전의 가족이 하나로 똘똘 뭉쳐 정을 과시하는 그림보다 멋진 건 없다. 겉만 보자면 결국 이리오모테 섬에서도 쫓겨난 아버지와 엄마가 아이들만 남기고 떠나는 거지만 그건 우울한 마지막이 아닌 또 새로운 시작이다. 소설을 읽지 않으면 그 장면이 얼마나 통쾌한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