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이 작가의 책을 세 권 샀지만 아직 한 권도 읽질 못했다. 조급하게 대충 페이지를 넘길 성질의 책이 아니라는 생각에(허겁지겁 읽고 허접하다 팽개치는 책들이 많아 미안해서). 출판된 순서대로 '빅슬립'을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고, 맨 마지막 권 '기나긴 이별'을 펼쳤다. 그의 소설 중에서 최고의 찬사를 얻은, 추리문학의 한 획을 그었다는, 어디까지나 남들의 얘기.

그렇게 하여 사립탐정의 하루가 지나갔다. 정확히 전형적인 날은 아니었지만 아주 특별한 날도 아니었다. 한 남자가 이 일을 그만두지 않고 버티는 이유를 아무도 알  수 없다. 부자가 될 수도 없고, 대부분 재미도 별로 없다. 때로는 얻어터지거나 총을 맞거나 감옥에 던져지기도 한다. 아주 가끔은 죽을 수도 있다. 두 달마다 한 번씩, 이 일을 그만두고 아직 머리가 흔들리지 않고 걸어다닐 수 있을 때 번듯한 다른 직업을 찾아보기로 결심한다. 그러면 문에서 버저가 울리고 대기실로 향하는 안쪽 문을 열면 새로운 얼굴이 등장하여 새로운 문제와 새로운 슬픔, 약간의 돈을 안고 들어온다. (264~265)

첫 페이지를 시작하기도 전인데, 눈과 마음이 솔깃하다. 필립 말로에 대한 어떤 편견이나 선입견도 없다. 떠오르는 이미지도 없다. 단지 전형적인 탐정의 뒷모습 정도? 키는 크지만 얼굴은 알 수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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