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고추를 심어 화초처럼 아니 잡초처럼 키우는 마당보다는 높은 돌계단 위에 올 봄에도 어김없이 무수한 잡초들이 파릇파릇 올라왔다. 그리고 결정적인 건, 커다란 돌과 돌 사이에 소복하니 올라온 그 이름도 신기한 냉이가 있었다는 것. 처음엔 웬 부추가 여기에 났나 했는데 그게 부추가 아닌 냉이라는 거다. 신기하긴 했지만 그걸 뜯어다 된장찌개에 넣어 먹으라는 이웃집 아주머니 말씀을 건성으로 흘려들었다. 하루는 그 아주머니가 오셔서 무성한 잡초 중에서 식용의 나물들을 캐신다. 하여 덤으로 냉이도 가져가시라 했고 덕분에 그 날 저녁, 맛난 나물 무침을 얻어먹었다는.


잡초의 놀라운 생명력은 비온 뒤 드러난다. 삼월의 마지막 며칠 비가 내린다 싶더니 흙빛이 진하던 곳에 온통 풀빛인 거다. 땅이 굳기 전에 풀도 뽑을 겸 해서 호미를 들었다가 전에 이웃이 뜯던 나물이 보이길 레 옳다구나 하면서 열심히(?) 캐 모았다. 오, 냉이도 다시 올라왔다. 뿌리를 살려두면 앞으로 내내 부추처럼 냉이를 먹게 되는가 싶어 신이 났다. 동생네 가족이 온 저녁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 무침 요리법을 연구(?)하여 상 위에 올렸다. 그랬는데? 한 입 넣어 씹는 순간 왁 소리 나게 써서 뱉어야 했다. 똑같은 모양의 나물이었는데 어째서. 할머니를 비롯한 식구들에게 원망과 비웃음(?)을 듣고 결국 그 정체불명의 나물은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다행히 냉이를 넣고 끓인 된장국은 맛났다. 그 미묘하게 구수한 맛이 냉이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자 무척이나 신기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지만 너무 오래, 멀리 떠나왔나 싶어 씁쓸했다는. 사실, 요점은 모든 요리에 대한, 요리를 향한 나의 애정도와 열정이 제로라는 데 있다.

 

헉, 나중에 생각하니 엄청난 착각을 해 버렸다. 된장국에 넣고 끓인 그것은 냉이가 아닌 달래였다. 잘도 천연덕스럽게 냉이를 달래로 둔갑시키다니. 정신이 나간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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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알렉산드라이트]를 구함. 책을 받아보고 팔딱팔딱 뛰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사실은 전작인 [사이퍼]를 먼저 구하고 싶었는데 좀처럼 나타나질 않아 낙담하고 있던 차다. 사람마다 취향차이가 있어서인지 난 [사이퍼]가 훨씬 더 재밌었다. 무엇보다 [알렉산드라이트]보다 길다. [알렉산드라이트]도 나름 매력적인 작품이지만 [사이퍼]만큼 가슴이 덜 아파서인지, 역시 너무 짧아서인지, 너무너무 아쉬운 거다. 책 상태는 대여점에서 본 것보다 깨끗하다. 더불어 언젠간 사야지 작심만 하던 [소년별곡]도 함께 샀는데, 책을 받고 입이 함지박만큼 커졌다. 마치 새 책 같아서.


내 책만 사는 게 미안해서 현이 녀석에게 뭐 사줄까, 물었다가 56권짜리 [명탐정 코난]을 찜하는 바람에 억 소리가 났다. 자식이 통은 커서. 하지만 녀석에게 뭘 사주는 건 아깝지가 않다. 어떤 책이든 최소한 열 번 이상은 보는 녀석이라. 학과 공부하는 틈틈이 만화책을 잡고 스트레스를 푸는 모습도 괜찮아 보이고. 중2인 녀석이 처음 읽은 만화는 [드래곤볼],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돌이켜보니 난 녀석의 집에 갈 때면 늘 가방 안에 만화책 몇 권씩을 준비해 갔다. 첫 번째 조카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담아, 쉽게 빨리 읽히는, 만화책 특유의 감성을 접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대개의 아이들처럼 부모 몰래 숨어서, 혹은 감춰두고 보는 게 아니라 제 방 책꽂이 한가운데 떡하니 꽂아놓고 보게 하는 일종의 자유방임주의로, 뒤늦게 만화책을 접하고 속수무책으로 빠져드는 것보다는 일찌감치 읽게 해서 면역성을 길러주자는 의도였다.

 

난 아이에게 가장 좋은 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평범함이 아닐까 생각한다(요즘 아이들은 지나친 자신감 과잉에 상당히 오만하다). 남과 다르다는 생각을 하는, 일찍 외로운 아이는 상처도 많다. 보통 아이들이 생각하고 꿈꾸는 세계에서 다르지 않게 사는 거. 비슷한 옷을 입고, 먹고, 생각하고, 노는 거. 공부에 대한 지나친 부모의 기대와 욕심을 드러내지 않는 거. 자신들이 못한 걸 자식에게 강요하지 않는 거. 가끔 전화 통화를 하는 동생과의 대화들이다.


그랬던 녀석이 이젠 낯설 정도로 훌쩍 자랐다(목소리도 좍 깐다). 이미 내 키를 추월할 때 예감했지만 독립된 인격을 가진 사내아이로서 학교와 친구, 운동 등으로 저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아쉽다. 아이는 소년이 되었고, 머잖아 청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남자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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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 -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밀리언셀러 클럽 2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내려놓은 새벽 두시. 잠을 이룰 수가 없게 하는 <13계단>의 결말에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가해자라는 사형수, 혹은 수형인, 전과자가 있고 피해자라는 이름으로 처참한 죽임을 당한 이들이 있다. 사람을 죽였으니 악이고 죽임을 당했으니 선한가, 정말 그러한가(그렇지 않음을 알지만 무심코 수긍하지 않는가). 이 놀라운 소설은 통속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을 시원하게 깨부순다. <13계단>의 사방은 온통 불신의 벽으로 막혀있다. 법의 맹점과 허점. 재판을 담당한 인간 됨됨이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판결. 죄수의 성정에 따른 가식이나 위선의 모호함이 수형생활과 가석방에 미치는 영향. 징벌과 교화의 딜레마 등등. 극단적 절망 앞에서 선택한 우발적이거나 계획적인 살인에 대한 징벌로서 사형만이 최선인가. 당연히 피해자 가족의 입장에서는 그보다 나은 복수의 대행은 없다.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추적해 직접 사형을 집행하려는 아버지를 가해자 미나미 준이치는 그런 이유로 납득한다.   


전직 교도관 난고와 상해치사죄로 수감되었다가 가석방을 한 미나미는 집행을 앞둔 한 사형수의 재심청구를 위해 의기투합한다. 난고는 두 건의 사형을 집행했던 고통스런 기억을 천형처럼 짊어지고 있고 미나미는 피해자의 가족에게 지불할 거액의 보상비 앞에서 피폐해진 부모님을 위해서다. 단서는 하나, 그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는 것. 사형수는 기억상실 상태로서 그는 자신의 죄에 대한 어떤 인지도 하지 못한다. 사건 당시의 명백한 증거물과 상황이 그를 살인자로 지목할 뿐. 무엇보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보호사와 보호감찰 대상이었다는 사실이다. 선량하고 후덕한 피해자와 비행청소년의 전력을 지닌 전과자 청년. 잔혹하게 난자당한 노부부의 살해현장 앞에서 누구도 청년의 유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스스로에 대한 어떤 변명이나 항변 한마디 못하고 사형 선고를 받았던 것이다.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익명의 재력가라는 실체가 드러나는 후반부는 경악스럽지만 드러나지 않은 진짜 범인을 찾아 증거물을 확보하려는 난고와 미나미의 고군분투는 응원을 보낼 만하다. 그리고 교도관과 살인을 저질렀던 전과자라는 그들의 독특한 이력은 가해자와 사건의 진실을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게끔 만든다. 그렇게, 복잡하게 얽혔지만 단순한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은 소름이 돋을 정도다. 


죽일 놈. 전직 교장이자 보호사였던 우츠기 쿄헤이가 살해당한 배경이 밝혀지며 씹은(?) 말이다. 역시 살해당한 사무라 쿄스케도 마찬가지, 죽어도 싼 놈. 그들은 피해자라는 가면을 쓴 숨은 가해자니까. 다시 프롤로그. 사형수 감방 ‘제로구역’에서 오전 9시에 도착하는 마중의 의미를 천천히 다시 읽는다. 그리고 에필로그. 사형수 사카키바라 료의 재심에 의한 무죄 판결의 공지를 읽는다. 감동이 밀려든다.


법률은 옳습니까? 진정 평등합니까? 지위가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머리가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돈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나쁜 인간은 범한 죄에 걸맞게 올바르게 심판받고 있는 것입니까? 제가 사무라 쿄스케를 죽인 행위는 죄일까요? 그런 것도 깨닫지 못하는 저는 구제불능의 극악인일까요? (에필로그, p.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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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정군님의 <산티아고 가는 길>을 천천히 읽고 있습니다. 노련한 어떤 여행가의 기록보다 진솔하고 따뜻한 글들입니다. 한번 씩은 읽었던 내용임에도 종이에 인쇄된 활자로 읽는 즐거움은 역시 인터넷 상의 글 읽기와 엄청 다르더군요. 아무리 멋진 글도 모니터로 일게 되면 적당히 무성의하게 마련이지요. 정군님 특유의 물 흐르듯 부드러운 문체가 오롯이 담겨 잔잔한 호기심과 즐거움을 선물하네요. 언제나 정군님의 글에서 느꼈던, 글을 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는 생각이 역시 들면서, 새로이 둥지를 튼 곳에서의 삶이 의미와 열매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을 시작으로 더 멋진 곳으로의 여행 계속하시고, 그 여행의 기록 꼭 책으로 엮으심이 어떤가요. 


‘책 읽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는 말을 생활신조로 삼는다고 하셨지요. 그것은 정군님이 만난 수많은 책을 읽는 사람들의 선함을 믿는다는 것이겠지요? 살아보니 세상에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썩 많은 편이 아닙니다. 그래서 간혹 그런 사람을 만나면 일단은 호감을 표시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열에 아홉은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을 보는 안목이나 책을 보는 안목이나 비슷하다고 봅니다. 저절로 좋은 사람을 찾아서 교류를 하게 되는 거지요. 책 읽는 모든 사람이 선하다는 말에 코웃음 칠 인간도 적지 않겠지만 내가 선택하여 혹은 우연으로 만난 책 읽는 사람들은 모두 다정하고 친절하고 선했습니다. 그러므로 정군님의 신조 절대 버리거나 배반당하지 마세요. 책에 대한 정군님의 열정 꼭 기억하겠습니다.  


PS. 그리고 먼 나라에서 온 다른 한권의 책도 아주 흡족합니다. 올해는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책을 읽자고 마음먹고 있었거든요. 주구장창 일본소설을 읽어댄 작년에 대한 반작용이지 싶습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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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1-31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몽님. 정군님 저도 보고 싶습니다. 님의 글을 잘 읽고 갑니다. 아마도 정군님은 잘 계시겠죠. 늘 책에 대한 열정 하나만 가지고 살기에는 부족했던 나를 늘 일깨워주셨던 분인데 그립습니다. 우몽님도 좋은 하루 되시기를 바래요.

잉크냄새 2007-01-31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티아고면 카리브 지역을 여행하신 모양이네요.

겨울 2007-01-31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군님의 책이라서가 아니라, 여행은 쥐뿔도 안 하면서 여행기는 좋아라 하는데요.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자의 길' 위에서의 좌충우돌 고난기는 읽는 내내 웃음을 머금게 합니다. 정군님은 고생을 하거나 말거나, 폭신한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올리고요.
 

 

제 몫의 밥이나 사료를 먹은 후, 갸릉갸릉 골골 대는 소리를 내며 눈을 지그시 감고 누워서 제 손을(고양이에게 앞발은 영락없는 손이다) 맛있게 빠는 양군을 보며 드는 생각. 너는 어디서 어떻게 태어나 살다가 이곳으로 오게 되었니. 그렇게 홀연 표류하는 배처럼 살던 곳을 떠나 생전 처음 보는 집의 문 앞에서 울었던 이유는 뭘까. 전에는 정말 몰랐는데, 고양이도 존귀한 생물이다. 살아서 배고파 울고, 성내고, 심심하면 놀자고 방방 뛰고 구르는 귀여운, 때로는 장난이 지나쳐 날카로운 송곳니와 손톱으로 상처를 내기도 하지만 그 행위에 적의란 눈곱만치도 없음을 안다.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홀로 깨어 살금살금 손을 건드리고 옆구리를 툭툭 쳐서 잠을 깨우는 성가신 녀석. 제 밥그릇을 집어 올리면 와, 밥이다 하면서 칭얼칭얼 양양 대면서 종종 거리고, 그런 애교가 통하지 않는다 싶으면 이내 제 자리로 돌아가 드러눕는다. 이럴 땐 녀석의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 알고 싶다. 녀석의 이런 행동을 기억하는 전 주인이 누구인지, 왜 그 사람은 녀석을 버렸는지(혹은 녀석이 그 사람을), 왜 찾지 않는지, 궁금하다. 물론 들은 바에 의하면, 고양이는 원래부터 그랬다고들 한다. 


과거의 나한테 동물은 관심 밖의 생물이었다. 귀찮고 성가신,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게 편한 냄새나고 더러운. 개털, 고양이털이 묻으면 온몸이 가려운 기분이고 그네들의 오줌이나 변을 보면 질색을 했다. 그랬던 내가, 현관 앞이지만 모래 속에서 고양이 변을 골라내고 마루에 흩어진 모래를 쓸고 닦는다. 노란 곰돌이 푸우 방석에 엎드려 있던 녀석이 반쯤 감긴 눈으로 느릿느릿 걸어와 발치에 서는 건 안아달라는 신호라는 것도 알았다. 무릎 위에 올려놓으면 이내 둥글게 몸을 말고 다시 손을 빤다. 그토록 만족스런 얼굴이라니. 

 

 

 > 고양이라서 좋은 이기적인 생각. 애정을 강요하지 않고 주면 받고 안 줘도 그만이라는 태도. 저 혼자 묵묵히 놀며 있는 듯 없는 듯. 밥 때가 되면 아주 맛나게 먹는 거. 기척에 민감하여 한밤중에도 벌떡 일어나 화장실까지 쫓아와 닫힌 문을 긁어주는 섬세함(아님 호기심?). 독립적, 개인주의적, 자유분방함, 고고하고 도도하게 앉아있는 자세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까지. 대충, 이 정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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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7-01-28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고양이 이름을 양군이라 지으셨군요..^^
양군의 행동 묘사해놓으신거 읽으니 넘 보고싶습니다..

겨울 2007-01-29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고양이라는 동물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마냥 신기합니다.
(사실, 고양이는 무섭고 사납고 얄밉다는 편견이 있었어요.)

잉크냄새 2007-01-31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똥오줌이나 털 생각을 하면 절대 못키울듯 싶네요. 마당이 있다면 모를까...

겨울 2007-01-31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그런 생각 하시면 절대 못 키워요. 코를 박고 들여다봐도 냄새를 몰라야 해요. 애견 애묘가들이 '반려'라는 말을 너무도 당연하게 쓰는 것도 전엔 별꼴이다 싶었는데, 이제는 그럴수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