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정오, 동생과 일찌감치 출발하여 도착한 집은 텅 비어있다. 집에서 마주보는 산 중턱 쯤에 할머니와 아빠로 짐작되는 사람이 보이니 감을 따는 모양이다. 신발을 벗어보지도 못하고 꼬맹이 원이 손을 잡고 밭으로 갔다. 하늘은 먹구름이 잔뜩 껴있다. 안녕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두 분이서 막 시작을 한 들깨 타작에 동참, 시작한 지 오 분도 지나지 않아서 후두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에 손발은 정신없이 바빠지고,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후려치는 타작놀이에 원이는 신이 났다. 대충 알곡을 거둬 빈 쭉정이만 남은 줄기는 한 곳으로 쌓고, 너른 비닐 천에 들깨인지 뭔지 정체가 아리송해진 것을 갈무리해 집으로 출발했다. 할머니는 자동차에 태우고 뒤로는 아빠의 털털대는 경운기 소리를 들으며 돌아오는 길은 나름대로 운치가 느껴졌다. 운무 자욱한 속에서 말리던 고추를 거두는 어른도 보이고 때 아닌 비로 바빠진 사람들의 걸음은 왠지 신이 나 보였다. 추석 탓인가.


오후, 한소끔 내린 비가 멈추었다. 일꾼이 모였으니 고구마를 캐야겠다는 할머니의 말씀에 마침 도울 일거리가 있어 오히려 마음이 즐거웠다. 언제부터인지 시골에 와 빈둥거리며 노는 것은 꿈도 꾸지 않게 되었다. 뭐든 일이 있으면 두 팔 걷어 부치고 달려들고 있다. 나이 들어가는 부모님에 대한 연민일까. 진저리치며 싫어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세월이 무상타.


그러나 역시 노동은 힘에 겹다. 곡괭이를 들고 땅을 파내려가도 구하는 고구마는 보이지 않고 애꿎은 지렁이만 꿈틀댔다. 고구마가 아닌 마를 심었는지 어쩌다 눈에 띄는 고구마 아닌 고구마는 길쭉한 모양에 꼿꼿이 땅에 서 있는 것이다. 모두가 박장대소하면서 그 요상한 물건을 캐어보니 아이의 팔뚝만큼 길다. 일명 호박고구마라는데 캐는 시기를 놓쳐 너무 자랐다. 옆으로 누워야 캐기가 수월할 터인데 밑으로만 박혀있으니 온힘을 다해도 중간을 싹둑 잘라먹기 일쑤다. 남자들이 캐는 것만 따라다니며 주우라더니 한 고랑씩 차고앉아서 죽어라고 호미질을 했다. 모양도 멀쑥하고 암만 봐도 맛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건만 땅을 헤쳐 직접 캤으니 두고두고 맛나게 먹어 주리라. 다짐 아닌 다짐을 했다.


저녁에는 풋콩을 갈아 콩국수를 만들어주겠다는 엄마와 아빠를 경운기에 실어 보내고 동생 부부와 함께 밤을 주우러 산을 탔다. 가시덤불에 걸려 넘어지고 찔리고 잡목이 우거진 산을 헤매다가 밤나무가 즐비한 큰아버지 댁 흑염소농장에 도착했다. 작년에는 내내 따라다니던 흑염소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에 가둔 모양이다. 어린아이 주먹만한 밤톨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어떤 것은 송이 째로 입을 벌리고 있어 신이 날 수밖에. 간혹 시골에 와서 놀라는 게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먹거리에 대한 유혹이다. 도시라면 진즉에 손을 탔겠지만 시골 사람들은 자기 것이 아닌 남은 것은 도통 관심이 없다. 이런저런 서리를 할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간접적 증거이기도 하지만 딱히 울타리도 없이 널린 밤을 보려니 별천지에 와있는 착각에 빠진다. 준비해 간 커다란 자루에 한 시간여 남짓 주운 밤을 담아놓으니 밤을 가져간다는 허락도 없이 해마다 들러 발자국을 남기는 게 죄스럽기도 하고 스릴도 있어 어른 셋이 하하 호호 해 저무는 줄 몰랐다.


엄마는 콩으로 국물을 낸 칼국수를 맛나게 끓이고 계시고, 오랜만에 적막강산이던 집은 사람냄새로 붐비고, 장성하여 마주한 가족의 모습은 정겹기도 하지만 애잔하기도 하다. 너무 오랜 시간을 고향 밖에서 살았다. 나는 벌써 두고 온 집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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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10-02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은 고구마를 캐었군요. 전 오징어를 널었답니다.
저도 벌써 두고 온 집이 그립네요.^^

겨울 2004-10-02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징어를 말렸다가 아닌 널었다인가요? 빨래를 건조기에는 말린다고 하고 줄에는 넌다고 하듯이 오징어도 줄에 널어놓다?

로드무비 2004-10-02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콩으로 국물을 낸 칼국수 아주 맛났겠어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고향 밖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글이군요.^^

잉크냄새 2004-10-03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렸다와 널었다의 구분이라... 노동 주체로서의 입장에서는 널었다가 맞고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말렸다가 맞지 않을까 싶어요. 그나저나 빨래에 비유하시다니 오징어가 슬퍼할것 같군요.^^

겨울 2004-10-03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징어 말리는데 왜 빨래가 생각났는지.... 실은 아주 오래 전에 시장에서 파는 물오징어를 사다가 빨래줄에 널어 본 적이 있어요. 친구랑 내기를 했거든요. 진짜 마른 오징어가 되는지. 결과는? 글쎄요.^^
 
진주 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양선아 옮김 / 강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읽기를 막 끝냈을 즈음, 마침 비디오로 출시된 영화를 우연찮게 보게 되어서 그 감동과 여운이 이루 말할 수가 없이 길고도 길었다. 평면적 소설의 아쉬움이 입체적 영상으로 살아나는 기이한 경험이랄지, 방금 읽은 장면이 책에서 걸어 나온 듯 재현되는 영화를 보는 행운에 내내 가슴이 설레고 기분은 고조됐다.


이것은 물론 소설이다. 영리하지만 아버지의 실직으로 피폐해진 가족을 위해 하녀가 되는 열여섯 살의 그리트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지극히 일상적 이야기다. 그리트가 하녀 일을 하게 된 집 주인님은 보통의 사람들이 보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사물과 인물을 보고 재배치하는 재능을 갖고 태어난 화가다. 그리고 우연찮게 그림과 그림을 그리고 보는 방식에 대한 대화를 통해 교감을 나누게 된다. 대수롭지 않지만 한편으로 비밀스런 사건들이 벌어지고 그 와중에 그리트가 느끼는 것은 특별함에 대한 자부심이다.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손등이 트고 갈라져 피가 날 정도의 고된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어깨를 움츠리지 않고 겁내지 않고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게 만드는 무언가를 주인님인 화가는 그리트에게만 보고 알 권리를 준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그리트가 가졌던 재능일 수도 있지만 그것을 가리켜 보여준 이는 화가다.


소설을 읽는 내내 궁금한 것은 그들이 정말 사랑을 하는 가였다. 영화에서 배우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분명하게 눈짓과 손짓으로 보여준다. 가까이 있지만 가질 수 없는 것을 향한 갈망이 화가에게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화가의 감정을 결코 드러내지 않는다. 지나칠 만큼 냉정하고 메말랐다. 그것이 마치 예술가의 특권인 냥 자신이나 가족에게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물며 하녀라는 신분의 그리트에게 그 이상 무엇을 할 수가 있으랴. 그리트를 그리게 된 것도 자의가 아닌 타의였으니. 아니, 처음부터 화가는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릴 권리가 없었다. 생계의 수단으로서 그려진 그림은 대개가 청탁이다. 부유하고 호색적인 늙은 상인이 그리트를 탐내 취하려하자 ‘그림’으로 거래를 하는 것처럼.   


소설의 절정은 역시 그리트가 진주귀고리를 하게 된 경위다. 아내의 보석함에서 귀고리를 훔쳐 소녀의 귀에 걸어주는 화가의 행위는 광기에 가깝다. 하녀의 신분인 그리트에 대한 집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행위이기도 하다. 생살을 뚫어 피가 흐르는 귓불에 진주귀고리를 걸어주고 그림을 그리는 그 시간, 찰나이면서도 영원인 그 때가 바로 시작임과 동시에 끝이 된 사랑이었음을 아니까.


육체가 아닌 정신의 간음을 목격한 아내의 히스테리와 고통을 영화는 생생히 보여준다. 남편의 시선을 따라서 혹은 그리트의 몸짓을 따라서 모멸감을 느끼고 파르르 떠는 아내의 모습은 병적일 만치 추하다. 연민에 앞서 그녀의 무지와 둔감함을 탓한다. 아이를 낳는 것만으로 남편을 잡아두려는 몸부림이 처절하다 못해 미련하다. 이런 극적인 장치가 없이 이방인인 그리트가 그토록 청초하고 우아하게 보이진 않았을 테지만.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리트는 푸줏간집 아들과 결혼하여 아이 둘을 낳고 잘 살았다. 진주 귀고리가 화가의 유언으로 그리트에게 남겨지지만, 그녀는 조금의 주저도 없이 금화 이십 길더와 맞바꾼다. 귀고리를 품에 안고 감상에 젖는 로망은 없다. 그리트의 올곧음은 그 중의 십오 길더로 화가가 남편에게 진 빚을 청산할 정도이다. 남겨진 오 길더가 그리트의 몫이 된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생애 한번 뿐인 격렬한 욕망의 증거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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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0-06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보고싶은 영화네요.
너무 리뷰를 잘 쓰셔서......
이 리뷰 놓쳤다가 자명한산책님이 퍼놓으신 것 보고 뒤늦게 읽습니다.
추천합니다.^^

순심이 2004-10-06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관에서 저녁 시간에만 상영해주는 걸, 친구가 보자고 해서 내키지 않는 걸음을 했다가 반해버렸습니다. 저는 책은 아직 읽지 못하고, 영화만 보았는데 참 인상깊게 보았습니다. 영화 내내 흐르는 야릇한 분위기에, 다 본 후에도 한동안 정신이 멍하더군요. 리뷰 추천하고 갑니다^^

겨울 2004-10-06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찌하다 보니, 책과 영화가 섞인 묘한 리뷰가 되었어요. 추천 감사합니다.

리본여왕 2004-10-08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깊이 동감합니다.
비록 영화를 보려고 책을 읽기 시작했고
책을다 읽기 전에 영화는 간판을 내려버렸지만
아주 오랜시간 그리트가 마음속에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겨울 2004-10-08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화를 보려고 지인에게서 책을 빌려서 읽었어요. 하룻만에 책을 읽고 나니 바로 비디오로 출시가 되더군요. 행복했죠.

clear2fly 2004-10-09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이 좋아 씨네 큐브로 달려가 영화를 보았죠, 영화 감상에 퍽 도움됐어요, 서평이 없었으면 부분적으로 부족감을 느꼈을거예요...

픽팍 2004-11-12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는 책은 안 봤는데 확실히 서평 잘 쓰시네용

제가 모르고 지나쳤던 부분을 알 수 있었답니다.

확실히 영화는 좋았어요

조조여서 졸린 눈으로 봤지만, 전혀 졸리지 않을 만큼 ㅋㅋ
 

누가 뭐라 건 내게 있어 가을은 고통의 계절이다. 무의식중에도 ‘괴로워’ 소리가 튀어나올 만큼. 알러지성 비염으로 고생한 게 한해 두해의 일은 아니건만 올 가을은 유독 고통스럽다. 더구나 비염에는 쌍둥이처럼 따라다니는 결막염으로 인해 눈두덩은 퉁퉁 부어있고 눈동자는 충혈 되어 아침이면 꼴불견도 그런 꼴불견이 없다. 남들은 가을의 정취니 뭐니 하며 한껏 고조되어 있을 때 콧물 훌쩍이며 낑낑거리는 모양새는 영 아니다.


아프다고 골골거릴 때마다 엄마는 ‘그거, 시집가면 낫는 병이다’라고 못을 박고, 핑하고 뀌던 콧방귀도 해를 거듭하면서는 긍정하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여자라는 성의 내 유전자 속에 내재된 모성애가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기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가설에 스스로 수긍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슬그머니 결혼을 재고하자는 건 아니다. 변덕이 죽 끓는 인간도 아니고 ‘독신’으로 살리라 결심한 그 순간부터 그것은 운명이 된지 오래다. 자기가 선택한 길을 끝까지 고수하여 걸어간다는 목표도 나름대로 괜찮지 않은가. 살면서 뭔가를 탐하여 구하지도, 누군가를 의지로 삼아 본 적도 없이 나름대로는 똑바로 걸어왔노라 자족하지만 늘 후회투성이였다. 어떤 삶인들 후회가 없으랴만, 후회는 나름의 반성과 회한이고 내 삶은 아직도 먼 길을 가야한다.


지금 바램은 오직 하나, 어서 가을이 지나가 겨울이 오는 것. 천지사방을 꽁꽁 얼리는 추위라면 알러지 따위도 간 데 없이 사라질 터. 나는 역시 겨울이 좋은가 보다. 겨울 생이라 겨울이 좋은가보다 했더니 알러지 없는 겨울이라서 좋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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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9-21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고 나니 님에게 풍성한 가을 보내시라는 말이 저만의 사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앞으로 다가오는 가을은 항상 풍성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겨울 2004-09-24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어있는 날이 더 많은 집에 들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모든 이의 가을이 풍성하기를 바래요. 곤경에 처한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이 가을이 풍요롭기를....
 

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는 오만하리만치 주관적인 인간이다. 일순간 번뜩이는 호기심에 앞뒤 없이 골라 드는 경우를 빼면 ‘베스트셀러’라고 부르는 어지간한 책을 피해 돌아가는 편이다. 연금술 내지 현자의 돌이 무슨 유행처럼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지만 도무지 흥미를 끌만한 무엇도 없고, 읽어야할 책은 많고 돈은 부족해서 미루고 미루던 차에 아는 친구의 손에 들려있던 책.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신비주의와 우화는 아무래도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잘 쓴 시

같이 노래하듯 읽힌 도입부를 빼면 글자는 눈에 들어와도 의미는 흩어져 책읽기의 즐거움과는 거리가 먼 노동이다. 어디선가 읽었거나 들었거나 싶은 이야기구조 때문인가. ‘자아의 신화’를 찾는다는 주제에 흥미와 호기심을 느끼기에는 너무 많이 살아버린 건지도.


물음표 천지였던 삶들이 어느덧 마침표와 말줄임표로 대체되었다. 무작정 배낭을 메고 떠나고 떠나오며 한 그루의 나무, 풀잎 하나에서 표지를 찾던 열정 대신에 안주하고 정착할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나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시작도 하지 않고 포기부터 하는 이들에게는 다시 한번 구두끈을 졸라매는 계기가 될 지도. 기억도 까마득한 시절에, 나도 이런 종류의 책을 가슴에 품었었다. 그러나 생각하니 간절할 만큼 무언가를 원한 적이 한 번도 없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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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가느라 내 몸은 그렇게 힘이 들었나 보다. 마음을 기쁘게 해 주는 어떤 사람과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 선선하게 살갛을 부비는 바람이 그지없이 좋았다. 휴, 한숨 소리가 절로 나는 고단한 시기가 이제 가나보다 생각하니 절로 기운이 난다. 이상한 것이 그 덥던 한 여름도 무탈하게 잘 보냈다고 자축을 하자마자 몸이 이상신호를 보내왔다. 축축 늘어지는 몸과 무거운 머리, 무엇보다 뚝 떨어진 식욕에 반항도 한번 못하고 백기를 든 것이다. 독하다면 독하다는 소리도 곧잘 듣는데 어째 이럴 때는 찍 소리도 못하는 지 모르겠다.

오늘 책을 읽다가 '권태는 모양이 없다. 그래서 우리 내부에 혹은 우리의 밖에 그토록 많은 권태가 우글거리고 있는가?'라는 문장에서 우뚝 섰다. 내가 겪은 이즈음의 시련은 '권태'라는 이름으로 부르기에 적합하다. 굳이 병원에 가서 소변검사니 피검사를 받지 않아도 되는 병명 '권태'다. 새삼스럽지도 않다. 애초에 난 권태로운 인간의 대명사였으니. 특별히 집착하는 것도 없고 유난스럽게 호들갑을 떠는 법도 없고 어지간한 유머에는 웃음도 주지않는 인색한 인간인 고로. 소중한 물건이나 사람이 없다는 자각이 왠지 섬뜩하다. 사람에게도 돈에도 마음을 주지 않는 이상한 인간이라는 말을 아주 최근 누군가에게 들을 때도 그런가보다 웃어넘겼는데, 문제라면 문제인가. 그래도 꿈은 아직도 열심히 꾸고 있는데. <삶이 활기를 띠는 것은 그 꿈의 불가능성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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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9-02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이 활기를 띠는 것은 그 꿈의 불가능성 때문이다...
님, 권태란 녀석... 한번씩 찾아오지요. 바쁘다고 찾아오지 않는 것도 아니더라구요^^
님의 글로 진단해보건데^^ 무엇엔가에 혹은 누군가에 마음을 주지 않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까요? 아니, 꼭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닐거에요. 님, '가을맞이'로 힘내세요.

겨울 2004-09-02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주지 않는 것이 문제...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