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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책
김이경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책에 빠져본 사람은 이 책의 제목이 ' 순례자의 책'이 아니라 '책 순례자'여야한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
이 책은 '나만 이 책을 봤을거야' 하는 은밀한 자부심과 '너도 그 책을 읽었니'라는 공감사이에서 왔다갔다하며 언제나 책을 끼고사는 (?)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고독한 희열들을 담기 위해 애쓴 역작이다.
책을 쓰고 만들고 , 퍼뜨리고, 감춰두고, 찾아다니고, 두려워서 불태우는 모든 행위들에 대한 기이한 모험담이며 뒷얘기다. 심지어는 죽어서까지 책땜에 마음편치 못하다. 하지만 '나의 책 자서전 '이 완성되지 못하면 죽어서도 해방되지 못하리라고 상상하는 중독자가 아니라면 이 책에서 전개되는 에피소드들은 단지 흥미거리나 호사가들의 가십일 수 도 있다. 그러나 책이 인생의 전부거나 그에 버금가는 의미를 지닌 사람이라면 동서고금 선배나 동류들의 신앙고백서로 읽힐 경지에까지 책과 그에 얽힌 모든 것에 대한 애정과 숭배가 두텁게 녹아있음을 감지하고 감격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에피소드 10가지 소설 편편마다 뒷부분에 친절히 그 주제와 배경과 소재의 출처에 대해 자세한 지식적 설명을 함으로써 평생을 책을 끼고사는 작가의 모든 역량이 여과없이 드러나지만 사실 독자가 감탄하는 건 그보다 역사적 사실과 일화들을 재구성한 탁월한 솜씨다. 문체의 다양한 시도와 스토리를 엮어가는 구성력과 전통적 추리기법에 깃들인 서정성이 최근의 유수한 faction 소설과 비견될 만큼 맛깔스럽다.
책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책과 책쟁이들의 역사와 비밀을 잘 알고 있었는지, 또 이 책에 공감하는지 시험해봐야 하는 테스트용 텍스트로 적합할 뿐더러 청소년 권장도서목록용으로도 손색없는 실용성까지 갖춰 결국 좋은 책이 보여주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작가의 풍부한 지식과 무한한 상상력이 펼쳐질 다음작을 어떤 것일까 하고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