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가느라 내 몸은 그렇게 힘이 들었나 보다. 마음을 기쁘게 해 주는 어떤 사람과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 선선하게 살갛을 부비는 바람이 그지없이 좋았다. 휴, 한숨 소리가 절로 나는 고단한 시기가 이제 가나보다 생각하니 절로 기운이 난다. 이상한 것이 그 덥던 한 여름도 무탈하게 잘 보냈다고 자축을 하자마자 몸이 이상신호를 보내왔다. 축축 늘어지는 몸과 무거운 머리, 무엇보다 뚝 떨어진 식욕에 반항도 한번 못하고 백기를 든 것이다. 독하다면 독하다는 소리도 곧잘 듣는데 어째 이럴 때는 찍 소리도 못하는 지 모르겠다.
오늘 책을 읽다가 '권태는 모양이 없다. 그래서 우리 내부에 혹은 우리의 밖에 그토록 많은 권태가 우글거리고 있는가?'라는 문장에서 우뚝 섰다. 내가 겪은 이즈음의 시련은 '권태'라는 이름으로 부르기에 적합하다. 굳이 병원에 가서 소변검사니 피검사를 받지 않아도 되는 병명 '권태'다. 새삼스럽지도 않다. 애초에 난 권태로운 인간의 대명사였으니. 특별히 집착하는 것도 없고 유난스럽게 호들갑을 떠는 법도 없고 어지간한 유머에는 웃음도 주지않는 인색한 인간인 고로. 소중한 물건이나 사람이 없다는 자각이 왠지 섬뜩하다. 사람에게도 돈에도 마음을 주지 않는 이상한 인간이라는 말을 아주 최근 누군가에게 들을 때도 그런가보다 웃어넘겼는데, 문제라면 문제인가. 그래도 꿈은 아직도 열심히 꾸고 있는데. <삶이 활기를 띠는 것은 그 꿈의 불가능성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