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라 건 내게 있어 가을은 고통의 계절이다. 무의식중에도 ‘괴로워’ 소리가 튀어나올 만큼. 알러지성 비염으로 고생한 게 한해 두해의 일은 아니건만 올 가을은 유독 고통스럽다. 더구나 비염에는 쌍둥이처럼 따라다니는 결막염으로 인해 눈두덩은 퉁퉁 부어있고 눈동자는 충혈 되어 아침이면 꼴불견도 그런 꼴불견이 없다. 남들은 가을의 정취니 뭐니 하며 한껏 고조되어 있을 때 콧물 훌쩍이며 낑낑거리는 모양새는 영 아니다.


아프다고 골골거릴 때마다 엄마는 ‘그거, 시집가면 낫는 병이다’라고 못을 박고, 핑하고 뀌던 콧방귀도 해를 거듭하면서는 긍정하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여자라는 성의 내 유전자 속에 내재된 모성애가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기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가설에 스스로 수긍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슬그머니 결혼을 재고하자는 건 아니다. 변덕이 죽 끓는 인간도 아니고 ‘독신’으로 살리라 결심한 그 순간부터 그것은 운명이 된지 오래다. 자기가 선택한 길을 끝까지 고수하여 걸어간다는 목표도 나름대로 괜찮지 않은가. 살면서 뭔가를 탐하여 구하지도, 누군가를 의지로 삼아 본 적도 없이 나름대로는 똑바로 걸어왔노라 자족하지만 늘 후회투성이였다. 어떤 삶인들 후회가 없으랴만, 후회는 나름의 반성과 회한이고 내 삶은 아직도 먼 길을 가야한다.


지금 바램은 오직 하나, 어서 가을이 지나가 겨울이 오는 것. 천지사방을 꽁꽁 얼리는 추위라면 알러지 따위도 간 데 없이 사라질 터. 나는 역시 겨울이 좋은가 보다. 겨울 생이라 겨울이 좋은가보다 했더니 알러지 없는 겨울이라서 좋았던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잉크냄새 2004-09-21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고 나니 님에게 풍성한 가을 보내시라는 말이 저만의 사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앞으로 다가오는 가을은 항상 풍성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겨울 2004-09-24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어있는 날이 더 많은 집에 들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모든 이의 가을이 풍성하기를 바래요. 곤경에 처한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이 가을이 풍요롭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