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라기보다는 러브레터(스가 시노부)


[어느 페이지를 넘겨봐도 인간의 생생한 감정과 힘이 넘쳐흐르는 것만 같았다. 새삼스레 내가 얘기할 것도 없이, 여기까지 스토리를 좇아온 모든 독자들이 느끼고 있을 테지만, 등장인물들 모두 무시무시한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므로 죽음조차 리얼하고 무겁게 다가온다. 그 죽음이 살아남은 자들에게 깊은 각인을 새기고, 더욱더 가혹한 생으로 몰아가는 모습은 압권이었다.


생명이나 사상은 이어져 내려가는 것이며 이 작품에서는 그 생명과 사상이 거의 직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사라사나 슈리 일행에게는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목표가 있었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인생의 단순한 형태, 그저 살아가기 위해 살고 있다는 것으로 향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 이유로 라스트에서 그저 학대받고 지배받는 것에 길들여졌던 민중에게 사라사와 슈리가 호소하는 내용은 엄청난 설득력을 갖고 가슴을 쳤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하라.

살아간다는 것은 원래 싸워나간다는 것과 동의어였다는 사실을 여지없이 떠오르게 하는 말이다. 실제로 사라사 일행은 그렇게 살아왔다.


이기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고, 지면 죽음밖에 없다. 하지만 비참할 뿐인 패배자들조차 실로 근사하다. 주요 패배자들은 물론, 이름도 없이 잠깐 등장하는 인물들까지, 인생을 확실히 실감케 하는 것은 대체 어떤 기술일까.


너무나 재밌어서 완전히 이야기에 푹 빠진 나머지, 사라사들과 동화되어 감격하고 화를 내고 눈물 흘리며 이야기에 휘둘릴 대도 휘둘린 나는 그 뒤에 조금 질투하고 말았다. 이토록 굉장한 이야기를 그려낸 타무라 유미 씨의 재능에 대해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 사라지는 마지막 권은 역시나, 감동과 슬픔의 도가니다. 몇 번을 읽어도 무겁고 아프다. 작가에 대한 선망과 질투를 넘어 분노까지 느낀다, 스가 시노부처럼. 문득 드는 생각. 도대체 만화가 말이야,라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이 만화를 읽고나서도 그럴 수 있을까.

 

기다리고 기다리던 '나의 지구를 지켜줘' 애장판도 완결이 났다. 전생에 그들은 달에서 무슨일을 겪었는지, 최후까지 살아남은 시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애를 태우며 궁금하게 하더니, 그 놀라운 비밀이 드러났다. 결국엔 사랑이지, 미움과 증오, 배반의 탈을 썼지만 결국엔 지극한 사랑 때문이지. 역시, 아무리 지독한 짓을 해도 미워할 수가 없더니, 돌아온 링의 기억과 함께 해피 엔드다. 자살한 영혼은 내세에 다시 태어날 수 없다는 확고부동한 교리 앞에서 솟구치는 여러가지 궁금증들이 많지만, 자살이 죄악이라는 건 익히 들어 왔었고, 그 설정이 없었으면 이 만화의 비극성을 극단까지 끌어올릴 수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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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10-26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바사라....! 저는 그 제목만으로도 가슴이 두근댑니다..^^

ceylontea 2005-10-27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바사라 다시 읽고 있어요... 넘 재미있어요... 근데 피곤해서 넘 졸려요.. ㅠㅠ
나의 지구를 지켜줘... 저도 보고 싶어요... 빨리 옆사람 보고 사라 옆구리르 찌를 것인가.. 제가 살 것인가.. 음~~!

겨울 2005-10-27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ceylontea님, 몇 번을 읽어도, 멋진 만화들이죠? 이럴 땐 만화가 있어 살만하고 행복한 세상이구나 하고 구름 위를 거닐어요. ^^ 오며 가며 자주 뵈었지만 천성이 낯가림이 심하고 게을러 인사가 늦었어요. 반가워요, ceylontea님.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할머니 소식을 듣고 차비를 차려 내려가면서 싸들고 간 몇 권의 책 속에 들어있던 소설집에서 유독 절절하게 와 닿았던 짧은 글이다. 암의 발병과 함께 뒤를 가리지 못하고 앓아누운 어머니를 간병하는 딸은 죽음에 이르는 그 짧지만 긴 시간을 그렇게 표현했다.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라고.


할머니가 좀 더 건강하셨을 때, 농담처럼 누운 자리에서 똥 누기 전에 죽겠노라 그 이상 사는 건 상상도 못한다는 듯 말씀하셨다. 그때는 그 말에 별소릴 다 하신다고 눈을 흘겼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할머니에게만은 절대 그런 날이 오지 않으리라 믿었다. 그래서일까. 링거액을 맞으며 죽은 듯이 누워계시는 할머니가 낯설었다. 그 강하던 자존심과 청결에 대한 결벽증을 어디다 흘려두고 눕고 일어나고 앉는 동작에도 안간힘을 쓰시고 지척에 있는 화장실로의 거동은 어림도 없는 것이다. 결코 누구도 특히 할머니가 원치 않았던 길이건만 어느덧 그 길 위에 서 계신다. 기억을 갉아먹는 세월의 벌레가 있어 야금야금 할머니의 머릿속을 파먹는 것 같다. 그저 운이 나빠 넘어졌을 뿐 뼈나 머리에 아무 이상도 없노라고 병원에선 말하지만, 할머니는 이제 더 이상 예전의 할머니가 아니시다. 마치 나쁜 꿈을 꾸는 것처럼 비현실적이다. 병원에서 지내는 이틀 동안 내내 그랬다.


어머니 옷갈피에는 어디서 난 건지 흔히 향비누라고 일컫는 냄새 좋은 세숫비누가 구메구메 들어 있었다. 화장품을 살 때 선물로 얹어주는 작은 향수병도 몇 개 마개가 헐겁게 잠긴 채 들어 있었다. 행여 늙은이 냄새가 날세라 그렇게 철저히 대비를 했던 것이다.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추레해지는 걸 극도로 두려워했던 어머니다운 자기 관리였다.  


소설 속의 어머니처럼 할머니도 서랍장의 옷 사이에 선물로 들어온 세숫비누를 까서 넣어두는 걸 좋아하셨다. 양말 한 짝도 대충 넣는 법이 없이 윤이 나도록 매만져서 반듯하고 정갈하게 정리정돈을 하셨다. 세탁한 빨래는 적당히 말랐을 때 걷어 구김을 펴고 손닿는 곳에 늘 걸레를 두고 닦고 또 닦으셨다. 골목 어귀에 버려지는 불법 쓰레기를 늘 손수 치우셨고 집 앞은 물론 길 가에 버려진 휴지 하나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으셨다. 그랬던 할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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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0-22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짠합니다.
할머니 빨리 회복하시길 바랄게요.

겨울 2005-10-22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쉬이 일어나질 못하시네요.

로드무비 2005-10-27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세가 있으셔서......
 

 

책이 있는 방의 장판을 새로 깔면서 대대적인 정리를 해야 할 위기에 처했었다. 10년이 다 되어가는 앵글로 된 책장을 보기 싫다는 동생의 성화에 버리자고 내어놓으니 당장 쌓아놓은 책이 갈 곳이 없는 것이다. 중고 가구점을 기웃거리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데 아는 동생이 가구의 재배치며 책의 정리를 돕겠다고 팔을 걷고 달려들었다. 먼지는 쌓이기가 무섭게 닦고 또 닦으면서도 정리하고 정돈하는 재주는 영 젬병인지라 여차하면 그냥저냥 살 생각이었는데 성격 급한 그녀가 일요일 날 공구상자를 자전거에 싣고 쳐들어왔다. 그제야 늦잠에서 일어나 아침도 못 먹고 눈을 비비고 있는데 바지런하기도 하지.


그녀는 실로 괴력의 소유자였다. 장롱이며 책장 냉장고 따위를 번쩍번쩍 들어 자리 배치를 하고 늦장을 부리는 나를 재촉해서 일을 해치우는데 누가 주인이고 누가 객인지 미심쩍었다.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보기 싫은 못이며 불필요한 전선들을 찾아 잘라주고 남길 것과 버릴 것을 즉각적으로 결정하는 그녀가 참말이지 신기했다. 덕분에 생각지도 않은 획기적인 변화를 주면서 너저분하게 널려있던 책들이 모조리 질서정연하게 책장 속으로 위로 들어갔다. 못이 있는 곳을 가릴 심산으로 대충 걸어놓았던 액자와 거울도 그녀가 적당하다고 정하는 자리에 놓여졌다.


그녀를 지켜보면서 그동안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나의 정체성에 대해 마구 의구심이 솟구쳤다. 별로 문제라는 의식도 없이 어지간히도 대책 없이 살았구나 싶었다. 하다못해 못 하나도 빼거나 박을 줄도 모르는 인간이 혼자서도 잘 살 거라고 큰소리를 쳤던 것이다. 실상 나란 인간은 주변인들에게 엄청 민폐를 끼치며 살고 있음을 자각해 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도대체 있기나 한가. 자립은커녕 매사에 의존적이지 않은가. 


P.S. 그녀를 배웅하기 위해 대문을 나섰는데 뒤따라서 나오던 그녀 덜컥 대문을 닫아 버렸다.  아니, 열쇠도 없이 나왔는데 대문을 잠가버리면 어쩌라고. 졸지에 집 없는 아이가 되어 발을 동동 구르는데, 용감한 그녀 담을 넘어가겠단다. 위험하다고 극구 말리는 내 손을 뿌리치고 결국 담을 넘어갔다. 넘어가다가 콰당 엉덩방아도 한번 찧어주고는 유유히 대문을 열고 나오는 그녀. 나는 헛헛하게 웃으며 그녀의 등짝을 후려갈기며 무탈하게 집안으로 들어와서 낄낄 웃어댔다. 사람의 이면이랄지 의외성을 발견했을 때의 즐거움이 허파를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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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백화점 앞에서 나이가 너무 많다 싶은 할머니 두 분이 전단지를 돌리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내밀어 공손하게 받아들고 오면서도 연신 뒤를 돌아보는데, 난데없이 미친 듯한 바람이 불어왔다. 누군가가 받아서 버렸을 전단지 몇 장이 빙글빙글 돌며 날아가고 있는 중에도 할머니들은 젊은 발걸음들을 쫓아다니며 전단지를 내밀고 계셨다. 날은 점점 어두워 가는데 돌아갈 집은 어디인지 그 집에는 누가 기다리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내가 있다.


가난이 분명 죄는 아니지만 때로는 부끄러울 때가 있다. 부자 앞에서 움츠러들고 당당하지 못할 때, 내가 짐작하는 그런 의미로 무시를 당했다고 느낄 때다. 아는 여자가 있다. 매사에 솔직한 그녀는 돈이 없다는 말을 쉽게 뱉는다.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무시하지 않고 그냥 웃을 것 같아서란다. 어느 날은 어떤 쇼핑몰에서 몹시 싸가지가 없는 종업원에게 심한 무시를 당했다며 분개했다. 물건 값을 깎으려 했더니 안 판다며 오히려 큰소리를 내더란다. 사지 않겠다며 던져주고 왔어야지 했더니, 자기는 그게 안 된다며 하소연이다. 마땅히 따지고 권리를 주장하고 무엇보다 말다툼을 벌이는 일이 싫어서 손해를 감수하지만 그렇게 고스란히 참고 삭혀둔 것은 두고두고 상처로 남기 마련이다.


나는 그녀에게 다음부터는 다소 무식해 보이더라도 큰소리를 내어 싸우라고,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 화를 내는 것은 아주 솔직한 감정일 뿐이라고 일러준다. 그러나 남의 부당함에는 손을 들어 분개하면서도 정작 나 스스로의 일에는 무관심한 편이다. 가슴과 머리에 오래 담아두지 않는 편리한 성격 탓도 있지만 드물게 싸워야할 땐 확실히 끝장을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끝장이란 말 그대도 진짜 끝장이다. 사람이니 코드가 맞아 죽이 척척 맞는 관계도 있지만 척을 지고 원수처럼 지낼 수도 있지 하면서도 나란 인간의 그릇이 이것밖에 안되는 구나 싶어 한심스럽다.


미친 듯이 부는 바람에 머리카락과 옷자락을 날리며 돌아오는 길. 계절이 가을로 바뀌었다는 생각. 거리에는 벌려 논 좌판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을 흘낏 지나쳐 빠른 걸음을 옮기는, 짧지만 씩씩한 내 다리. 9월 어떤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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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9-29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과 머리에 오래 담아두지 않는다니... 좋은 성격인걸요? ^^

겨울 2005-09-29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요, 무심하고 차가운 성격이래요.

로드무비 2005-09-30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요에 의해서 그런 전략 아닌 전략(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것)을
선택하신 게 아닐까요? 자기도 모르게......
저도 그런 경향이 좀 있어서.^^
할머니들이 전단지를 돌리시거나 모두 합해 5천 원도 안 될 것 같은
푸성귀를 내다파시거나 빈병들을 모으거나 하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면
아닌게 아니라 자꾸 뒤돌아봐져요.


겨울 2005-09-30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맞아요. 전략 아닌 전략. 그런데 강한 척도 자꾸 반복하다보면 내가 정말 강하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거기다 남들이 인정을 하기 시작하면 그래 나는 이런 인간이었어라고 확신을 하죠.
 

 

혼자 사는 게 외롭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무슨 재미로 사는지 혹은 무섭지 않은지. 외로움, 외롭다는 거. 나는 외로운가? 언뜻 의미가 잡히지 않아서 전전긍긍하다가 외로운지 아닌지도 모르는 바본가 싶어서 하하 웃고 마는데. 과거로 돌아가 보면 정말 외롭다고 생각했던 시절은 가족 안에서, 친구들 속에 있을 때였다. 견디다 못해 죽음을 꿈꿨던 것도 사람들과 부대낄 때였다. 그러니 혼자라서 외롭다는 의미에 기겁을 하지.


주말에 가족을 만나러 가는 일을 절반은 의무감 책임감에 떠밀려 치루다 보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아직은 젊음과 건강이 따라주기 때문이라는 엄마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다. 더 나이 들거나 병이 들게 된다면....... 좀, 고통스럽고 괴로울 것이다. 하지만 고통을 나눈다고 고통이 사라지거나 즐거움이 되지는 않으니 혼자서 겪은 들 어떠랴. 병원에 다녀온 조카의 소식에 벌써 며칠을 심란해 하고 마음이 아픈 것을 보면 혼자서 짊어지는 짐의 무게가 아무리 무겁다한들 나눌 사람을 구할 마음도 없다. 가족이나 타인의 고통에 대해 안다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다.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다. 십대에도 그랬고 이십대에도 그랬다. 삼십대라고 다를 리 없고 사십대도 역시 그럴 것이다. 애초에 불안한 영혼을 소유했으니 감수하는 것은 당연하다. 피하거나 망각할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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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09-29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말이 그말입니다. 마음이 안맞는 다른 이와 같이 있을 때, 엄청난 외로움이 밀려오죠. 그럴 땐 혼자 있을 때가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하죠...저도 그랬었어요

2005-09-29 0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5-09-29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군중속의 고독 이란 말이 이리도 오랫동안 이어져 가나 봅니다.

겨울 2005-09-29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 지나서 읽어보니 외롭지 않다는 말은 외롭다의 간곡한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오래 전 한 친구가 외롭지 않다는 건 지독한 이기심 내지 옹고집이 아니냐고 화를 낸 적이 있었는데, 뭐든 혼자서도 잘해요라는 태도가 가까운 사람을 화나게 한다더군요. 늘 입버릇처럼 아프다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을 위로할 줄은 알면서 정작 본인은 그 말을 뱉어 본 적이 거의 없으니.... 정말, 이상하죠.

겨울 2005-10-08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내가 아는 그녀 맞나요? 씩씩함과 건강함을 두로 겸비한 정신의 소유자, 반가워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