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식모들>이란 책을 읽는 내내 체증이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가치 혹은 체제를 전복하는 발상의 신선함이, 식모라는 이름 밑에 깔린 불우하고 어두운 시절의 상처가 보상받는 듯해서, 통쾌했다. 식모살이를 했던, 그 과정에서 학대받고 홀대받았던 소녀, 여자들이 이 이야기를 읽고 깔깔대고 웃었으면 좋겠다. 식모라는 이름에 그런 놀라운 비밀이 있었음을 진짜로 믿은들 어떤가.   

    

소설과는 무관한 이야기지만 어릴 적 살던 시골에 도시로 식모살이를 떠났던 먼 친척이 있었다. 가끔 고향에 내려올 때면 화려한 치장을 해서 시선을 빼앗겼는데 부러움 반 시샘 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겨우 먹고살 정도의 농사가 대부분이었던 시골에서 대도시로의 식모살이는 신부의 상승에 가까웠던 듯도 싶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과정에서 식모살이를 한 경력이 큰 흠이 되었던 것 같지는 않으니까. 아니면 흠조차도 잡지 못할 만큼의 형편없는 남자와의 결혼이었던가. 직접 만나 얘길 들어보질 못했으니 진실은 모르겠다.


당시에는 좀 산다싶은 집에서는 일꾼을 부렸다. 문서에 있는 종이 아니니 머슴은 아니었고 그냥 뭉뚱그려 일꾼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요즘으로 치면 무의탁 노인이나 노숙자 비슷한 형편의 중장년쯤 되는 그들은 마을 사람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았고 누구도 존대를 하지 않았고, 하물며 아이들조차도 아저씨나 할아버지가 아닌 ‘일꾼’이라는 호칭으로 하대를 했음에도 당연시 되었다. 일꾼들만이 입을 법한 낡은 옷에 몸에서 지게를 내려놓는 법이 거의 없었고 홀로 술을 마시고 홀로 담배를 태우는 모습에 익숙했다. 악덕 주인을 만나면 혹독하게 부려졌고 좀 너그러운 주인집에 사는 일꾼은 종종 술에 취하는 약간의 여유도 있었다. 어린 아이의 눈으로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들의 삶을 수긍하고 관조했다는 사실이 이제야 생각해 보면 놀랍다. 그들의 노동에 대가가 있었던가. 있었다면 어느 정도였을까. 일꾼을 부렸던 악덕 주인 중에는 친구네 집도 있었다. 그 집에 놀려가기를 꺼렸는데 이유가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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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2-26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시진출이 신분상승이 되는 경우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시골로 이사와서 살다보니 노인네들의 말씀에 매번 이런말이 들어가더군요
"울 아덜이 안산 아파트에서 사는디..."
"울 큰 딸이 성남 아파트에서 이번에 30평으로 이사갔어. 가보니께 대궐갔더라니께"
경제적 수치로 신분이 상승되는 세상에서 저는 신분하락을 기꺼이 맞이하고 삽니다.
살만합니다. 뭐 하하하하^^

겨울 2006-02-28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같은 신분하락이라면 저도 기꺼워 할랍니다. 시골에 다녀와서 비몽사몽 정신을 못차렸습니다. 지금도 졸음을 무릅쓰고 앉아있고요. 여행이랄 것도 없는 외출에도 몸은 비틀대고 큰일입니다. 참, 송아지가 태어나는 경사가 있었네요. 그 전 달에, 한놈이 죽어서 세상에 나오는 바람에 부모님의 상심이 크셨는데 이번엔 아주 건강하고 예쁜 놈(?)이 나왔어요.^^
 


 

이맘때의 다른 날 아침은 챙 하는 반짝임이 유리 너머에서 거드름을 피웠었다. 그런데, 안개가 비처럼 흩뿌리던 오늘은 불행히도 어둑한 새벽이 끄덕끄덕 졸고 앉아있질 않던가. 뒹굴뒹굴 일어나기 싫다, 일어나기 싫다. 온갖 원망 퍼부으며 머리 감고 세수하고 양치하고 터덜터덜 안개 속을 걸었다. 이상하고 이상한 날, 깊고 느린 안개의 숲에 도시가 잠겼다. 느린 것이 나 뿐만은 아닌 듯, 모두 다 놀라서 몽롱한 상태인 듯, 꿈을 꾸는 듯 사람들이 오간다.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온종일 기분이 좋았던 내 생애 가장 멋진 안개비가 내리던 날.  

 

나는 유난히 날씨에 따라 변덕이 심한 편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성질을 부린다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관대해지고 유약해지고 착해진다고 할까. 목소리 톤까지 달라지는데 스스로 말을 하다가 몇번을 놀랐다. 내 목소리가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다니,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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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2-15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과 몽상님, 이제 겨울잠 끝내셨어요?
곰의 꺼풀을 벗으셨으니 말입니다.^^

겨울 2006-02-16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넷, 로드무비님.^^ 겨울이 너무 지루해서 곰짓을 관뒀어요. 손 내밀면 닿을 곳에 봄이 있는데, 오늘, 바람이 매서웠어요.
 

 

심호흡을 하자. 깊고 길게. 그러다가 숨쉬기를 멈추고 들어봐. 아니 바라봐. 뇌수 저쪽에서 떠오르는 풍경 속으로 들어가. 거기에는 넓은 평원이 있지. 부드러운 경사로 내려가는 초원의 끝에 강이 흐르고 있어. 가만히 강안(江岸)에 앉아 그 강물을 바라봐. 그 강물의 흐름을 좇아가노라면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지. 이상하게도 뇌리에 흐르는 그 강물은 늘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사실이야. 누구나 동일하게 매번 같은 시간, 같은 풍경을 불러낸다는 것도 예사롭지는 않아. 이를테면 내가 앉아 있는 곳에서, 햇살이 수면 위에 쏘아대는 금화살의 방향으로 보아 나는 남쪽을 마주하고 있고, 물 위에서 일렁이듯 반짝거리며 이동하는 햇살 가루의 온기로 느끼건대 머물러 있는 시간은 아마도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쯤의 시간. (그 집 앞, p.15)


좋아해마지않는 최 윤의 글은 손이 닫지 않는 거리의 마음과 귀를 씻긴다. 잠깐의 우울로 가라앉은 기분도 덩달아 축 늘어지는 팔다리도 그래서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눈을 감아도 잠들지 못하는 불안에 떨던 영혼을 달랜다. 종교가 없는 나는 신을 부를 수도 없고 반복해서 읽으며 길라잡이가 되어줄 성서도 없지만 간혹 이렇게 몇몇 글들로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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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대체적으로 허구일 거라는 전제하에 읽으면서도, 작가가 아는 ‘진실과 허구의 경계’가 어디쯤일지가 정말 미치도록 궁금했다. 윤수의 ‘블루노트’를 읽다가 청승맞게 눈물을 흘린 것은 슬플 수밖에 없도록 쓰인 글 때문이라고 투덜투덜 댔다. 한 사형수가 흘린, 건넨 삶의 자잘한 부스러기를 조잡한 기술로 엮은 거라고. 사형수를 잉태하는 세상, 사회의 부조리에 새삼 분노하는 척하다 체념하는 척하다 결국은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보기 좋게 빚은 소설이 아니냐고, 사형을 위한 사형이라는 비난과 성토, 호소 말고는 전부 다 가짜가 아니냐고, 속살거리는 혀 때문에 솔직히 맥이 빠졌다. 온전히 소설을 소설로, 진짜라고 믿어버리는 망각을 체험하지 못한 것은 내 탓일까 아니면 작가 탓일까. 정말 대단한 작가라면 가짜도 진짜처럼 진짜는 진짜처럼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이건 신파고 상투적이고 뻔해. 물론 이렇게 툴툴거리는 건 비겁하다. 겨우 한 번, 아무런 고민도 없이 읽어치운 주제에 말이다. 그러나 유정이 자신의 삶을 망가뜨린 존재와 피터지게 싸우지 않은 것은 내내 용서라는 빈말만 남발한 것은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다. 또박또박 악랄하게 엄마와 싸웠어야 했고 가해자인 사촌오빠를 찾아가 분노를 터트렸어야 했다. 얼렁뚱땅 세월을 탓하며 용서라는 이름으로 눈물만 흘려서는 안 되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고? 그거야말로 위선이고 위악이다. 그렇다면 네가 원하는 게 뭔데? 현실 혹은 사실을 뛰어넘은 치열함, 순결함, 맹목성 혹은 현실같은 비현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이야기만 아니라면 무엇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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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2-10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적 글쓰기에 대한 맨날 그렇고 그렇게 얽힌 글은 맥이 풀린답니다.
저 역시 이 작가가 왜 계속 자기구멍속에 빠진 이런 글만 쓰는건지 이해가 안되어요
도대체 글은 왜 쓴답니까. 우리 소설가(여성작가)들의 한계점을 그녀로부터 발견하면 속이 상해요. 헉..너무 악평이었죠?^^;;
 

 

제프리 디버.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가. 읽는 내내 자꾸 심술이 불만이 꿈틀댄다. 맛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확 뱉어 버리고 싶어지는 책이다. 링컨 라임이 등장할 때와 아멜리아 색스가 등장하는 장면 말고는 전혀 흥이 나질 않는다. 마치 영화의 시나리오를 보고 적당히 소설로 엮은 듯해서. 하긴 소설의 영화화든 영화의 소설화든 대다수의 작가들이 꿈꾸는 일이니 이런 푸념은 단지 푸념일 뿐인가. 그렇담 뭘 기대했는데? 적어도 이전에 읽은 퍼트리샤 콘웰 정도의 감수성? 그럼에도 ‘코핀 댄서’까지는 읽어주겠다. 한 작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려면 적어도 두 편 정도는 읽는 게 예의일 테니. 이거 다 읽고 영화랑 비교하려고 덴젤 워싱턴과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비디오도 빌려왔다. 사실 이게 더 기대가 크다. 비교하고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찾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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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6-01-27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영화를 보고서 책을 읽었는데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어쩌면 무언가 감성이 맞지 않는 시기에 읽으셨는지도...^^
코핀댄서가 저는 더 재미있었는데 어떠실지 모르겠네요...
참.. 닉네임을 바꾸셨군요...^^

비로그인 2006-01-27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핀댄서 원츄..;;;

겨울 2006-01-27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성이 맞지 않는 시기라, 날개님 말씀을 들으니 아, 그렇구나 싶어요. 이제 겨우 절반 정도 읽어놓고 불평이라니 경솔하죠? 사실 첫페이지부터 문장들이 마구 거슬리는 거에요. 지문이나 묘사도 이상하고 번역의 문제인가 싶기도 하고, 하여간 그랬어요.

비숍님, 본컬렉터 읽으며 코핀댄서 괜히 샀나 싶어 소심을 떨고 있었어요. 하지만 님이 원츄 하시니 안심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