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어찌나 살랑살랑 불어주시는지 아주 황홀해 숨이 널어갈 지경이다.

아침과 점심의 그 언저리 쯤, 햇살은 좋고, 바람은 불어주고, 녹음 짙은 나뭇잎은 묘한 춤사위를 보여주는 날이다. 

보자기처럼 하늘을 둘러싼 감나무의 건강한 연초록 이파리가 이렇게 눈이 부시게 멋졌나. 

바람이 지나가다 한소끔 쉬어가고, 햇살이 내려오다 가볍게 비켜가는 손이 닿지 않는 저 높은 곳의 나뭇잎이란 실로 의젓하다. 

감나무가 몸 전체를 느리게 흔드는 걸 따라서 무화과나무, 보리수나무, 목련나무, 으름나무 이파리도 흔들기 시작한다. 

짧거나 길게, 빠르거나 느리게, 때로는 경박하게, 혹은 귀엽게. 이것은 5월의, 5월만의 경이다.

그것을 향해 시선이 박히면서 시작된, 하늘보다는 가까운 곳을 바라보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보물이다.

그럼에도, 5월은 그 자연의 무한한 혜택과는 무관하게 약간의 불편함과 죄책감에 시달린다. 

챙김을 받는 것도 챙기는 것도 도무지 서툰 나와 같은 사람에게 치뤄야할 겹겹의 의무는 고역이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이야 반가우나, 그 순간 건네는 인삿말과 웃음이 완전 내숭이나 거짓도 아니건만, 약간의, 아주 약간의 과장, 호들갑, 인내심이 뭐 대수랴만, 오롯이 홀로 사는 사람에겐 쉽지 않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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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한낮, 말라비틀어진 낙엽들을 긁어모아 태웠다. 양지쪽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시는 할머니를 위한 작은 이벤트랄까. 부지깽이를 들고 빨간 불꽃이 너울거리는 낙엽더미를 들쑤시는 게 제법 재밌다. 파르라니 귓불을 얼리던 추위는 단숨에 사라졌다. 대신 낙엽 태우는 열기가 확 얼굴로 달려든다. 이렇게 뜨거운 게 불이란 걸 잊고 살았다. 기껏해야 가스레인지의 불꽃이나 라이터 불꽃이 내가 아는 불꽃의 전부였던가 보다. 




그리고 의식처럼, 십오 년 전 쯤의 일기장 하나를 꺼내와 한 장씩 뜯어 불 속에 던져 넣는다. 낯선 감정의 파편, 흐린 기억의 아득한 한 때를 훔쳐 읽으며. 저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나란 이름으로, 저 많은 말들을 쏟아 붓는 저 이가 과연 나인가. 아니면 치명적인 기억의 오류? 일기장이 소멸하는 순간은 비감하다. 기억뿐만 아니라 기록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두고두고 보기가 싫은 것이 또 그것들이다. 무슨 의식처럼, 해마다 한두 개씩 재가 되는 게 숙명인 듯, 오늘도 한 권의 일기장이 사라졌다.




감귤 혹은 사과가 없는 겨울은 겨울이 아니다. 그 둘이 똑 떨어진 어제 하루, 나는 금단현상에 시달렸다. 날이 밝자마자 슈퍼로 달려가 귤 한 박스를 실어올 정도로. 냉장고 야채 박스 안에 귤을 가득 채우고서야 마음이 놓인다. 과일도 중독이 되나. 단맛이 강한 과일은 덜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덜. 오렌지의 단맛, 배의 단맛, 참외의 단맛, 혹은 달콤한 포도 같은 경우. 날마다 때마다 먹기에는 민숭민숭하고 시금털털한 귤이나 사과가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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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먹다 - 제1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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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이에게서 반가운 선물이 도착한 것은 이른 아침이었고 겨울이었다, 뭐든 감추기에 좋았다. 고질병처럼  12월만 되면 헛헛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마지막 달력 앞에서는 언제나 엄마 손을 놓친 아이처럼 황망하다. 또,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온다는 거. 수십 번을 반복해도 낯설다. 마음이 무거운 짐을 진 것처럼 헉헉대는 중이었다. 꾸역꾸역 입맛 없는 밥을 먹듯이 삶이 그러할 때. 

담담하게, 조선시대 여염집 여인네의 단아하고 단단한 마음 한 자락을 들여다보듯이 밤을 새워 책을 읽었다. 읽기 전에 며칠을 두고 바라본 것과는 다른 속도감이다.  조곤조곤 무상한 글은 강한 흡인력을 동반한다. 몇 번이나 글쓴이의 이력을 더듬었다. 어떤 사람일지. 어떻게 살아 왔을지. 목소리는 어떤 빛깔을 띨지 궁금했다. 

TV에서 보던 조선시대 양반가 여인네들의 획일화 된 모습에 색과 향이 깃들인 듯. 마음에 창을 달아 놓은 듯. 결혼하여 아이 낳고 남편 지위에 따라 덩달아 신분이 오르지만 그게 무어냐고 되묻는 여인의 내심은 흥미롭다. 아무리 지아비라지만  남편이 곧 내가 될 수는 없었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정서에 대한 시비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 남편과 혼인했다면 그 다른 누군가가 받았을 작호였다. 나는 그저 변수에 다름 아니었다. (64쪽) 묘연은 그러한 여인네다. 천하의 한량, 파락호 아비를 향해서도 가감없는.  평소 빈틈없던 묘연의 부재를 틈타 아내의 세간을 뒤지는 남편 태겸의 모습은 절로 웃음이 난다. 거친 손의 무덤덤한 아내를 귀엽다 생각하는 성정이 불같은 남자의 여린 속이 엿보여서. 친영가서 아내를 맞이했을 때도 제일 먼저 내 마음을 붙든 것은 반항기 가득한 아내의 눈빛이었다. 임금 앞에서 그런 눈으로 서 있다가는 역심을 품은 자라 의심받을 만했다. 남편 자리가 맘에 안 든다고 혼례청의 상을 뒤엎는 신부의 모습이 상상되기도 했다. 아내를 데려오는 일은 적진에 홀로 인질로 잡혀 있는 포로를 구출해내오는 것만 같았다. (54쪽) 이러한  속마음만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남편이라서 이전과 이후에 부린 패악이 다 용서가 될 것 같다. 태겸은 현대물의 로맨스 소설에 나올 법한 의뭉한 인물이다. 

깊은 밤이었고 봄이었다, 미치기에 좋았다. 내가 소설에서 찾는 것은 부유하는 마음 둘 곳이다. 딱 좋은 자리를 찾았을 땐 심장이 두근댄다. 하늘로 두둥 날 듯이 긴장한다. 그 자리의 주인이 되어 어떤 비극이건 기쁨이건 감당한다. 같잖게 위로도 건넨다. 비틀린 여문의 연정과 엇갈린 향이의 기다림이 회복 불가능의 종말로 치닫는 순간도 무던하게 지켜보게 하는 건 이 소설의 미덕이다. 결코 같이 널을 뛰게 하지 않는다. 아름답다면 아름다운 맹목적인 일편단심에 오히려 마음이 간다. 향이의 비극은 온전했던 남자를 미치게 만들며 희석된다. 시어미한테 쫒겨난 아내를 쫓아간 여훤의 우직함은 또 어떤가. 모름지기 부부란, 사랑은 이래야 한다고 이르는 것 같다. 그러나 냉정을 가장한 애정에 매달려 아내 둘과 자식 둘을 잃고 버린 최약국이란 미련한 사내만은 이해 불능이다. 본성이 애정결핍증이라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는 특이한 종자다. 

한낮이었고 여름이었다, 넘치기에 좋았다.  원래는 하나였던 몸이 둘로 나뉜 희우와 난이의 부서질 듯 여리고, 속이 곪아 썩어나도록 인내하는 방식은 사실 최악이다. 외조부를 빼 박은 희우와 같은 할아비를 두었어도 종의 신분인 난이 태생부터가 기겁할 일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그 둘의 만남과 이별을 이 소설 속 사랑 중 가장 고고하게 치장을 한다. 신분의 벽, 핏줄의 벽의 뛰어 넘어 어쩌면 불륜까지 암시한다. 온갖 방법으로 서로가 서로를 보지 않으려고 하였지만 만나지도록 맺어진 운명을 탓할까. 거슬러봄 직한 세상이라고, 지킬 수 있는 것을 지켜내며 살아내길 바란 평범치 않은 어머니 묘연이 있었지만 허깨비가 되어서도 제 길을 걸어가는 희우를 탓할 수는 없다. 어째서 한번이라도 손을 내밀지 않았느냐고 난이를 윽박지를 수도 없다. 지킬 것을 지키고 책임 질 것을 지며 가는 둘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또 밤이었고 가을이었다, 버리기에 좋았다. 이 이야기 속 모든 인연이 만나고 헤어지는 곳인 감선사의 현각스님이 집을 나가 소식이 없다던 묘연의 남동생 기현임이 드러나는 순간은 풀리지 않던 매듭 하나가 저절로 풀어진 모양새다. 모든 죄의 원천인 아버지의 방만함을 지고가려하지만 이미 정해진 운명은 그의 뜻을 거스른다. 하연이 죽고, 향이가 죽고, 희우가 병들고, 난이가 실종되는 그 모든 사정을 짐작하지만 막을 수 없음에 절망하는 사람이다. 여동생 묘연처럼 온몸으로 맞서지도, 하연처럼 짓밟히지도, 어머니처럼 이중적인 얼굴로 견뎌내지도 못한 비겁한 인물로 단정하고 싶지만 그건 그의 영혼이 극단적이리만치 순결해서다. 묘연은 어머니와는 반대로 살리라 결심하며 시집을 가고, 하연은 숨을 곳을 찾아 시집을 가고, 기현은 자신까지도 버리고자 출가를 한다. 그들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았나가 이 모든 이야기의 끝이다. 

내간체라는 중독성 강한 글의 영향인지 이렇게 끄적이는 것도 마치 소설의 일부처럼 여겨진다. 잘 쓰여져, 잘 읽히는 소설 한 권을 읽은 후의 포만감 속에서 행복이나 불행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담담함이 내내 물처럼 흐른다. '달을 먹다'라는 열정적인 제목은 소설의 분위기를 사뭇 무겁게 만들지만 출구없이 막막한 글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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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12-31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진 않았지만 왠지 님의 문체와 비슷할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랫만이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겨울 2007-12-31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오랫만이라 이 동네가 낯설기까지 합니다. 떠나고, 변하는 것에는 아무리 긴 세월이 흘렀어도 익술하질 않습니다. 내년은 올보다 덜 힘들었으면, 님도 그러하시길 바래요.
 

 

 

 

간밤에 그렇게나 추웠나. 이른 아침 마당엘 나가보니 감나무 잎이 우수수 떨어져 쌓였다. 단풍도 들기 전인데 말이다. 바람도 불었나? 엇, 그런데 무화과나무 잎도 몽땅 떨어졌구나. 일부러 또각또각 잘라놓은 것처럼.




국화의 만개는 어딘지 부자연스럽다. 그 가느다란 대공에서 올라왔다는 사실이 영 믿기지도 않고, 무슨 놈의 색은 그리도 선명한지. 대개 모든 꽃의 색깔은 불가사의지만 이것은 크다는 생각이 압도적이라 예쁘다거나 아름답다거나 하는 생각이 도무지 들질 않는다.




아무리 나쁜, 최악의 상황도 부닥치면 견디게 돼있다. 당장은 죽을 것 같아도 시간이 좀 지나면 어떻게 되겠지 한다. 그렇게 비관과 낙관은 널을 뛴다. 지극히 소소한 일로 비관하고 끝장이다 싶을 거창한 일에 낙관한다. 사실 이보다 나쁠 수 없다 생각한 순간부터가 차츰차츰 좋아지는 때니까.




확 추워진 날씨에 패딩 잠바와 비니로 완전무장을 하고 나간 아침. 샛노란 은행잎이 융단으로 펼쳐진 동네 어귀에서 와! 하는 감탄사를 내질렀다. 떨어지기 무섭게 쓸고 또 쓸던 이전과는 달리 언젠가부터 떨어진 낙엽을 바라볼 수 있게끔 되었다. 마치 은행잎이 비가 되어 흩뿌려진 듯 그림 같은 절경이다. 가을은 이렇게 제 존재를 드러내는구나. 모른 척 할래 야 할 수가 없도록. 덕분에 짧은 산책이지만 가을로 흠뻑 샤워를 한 기분이었다.




초인종 소리에 나가보니 처음 보는 아주머니 한 분이 서 계셨다. 감나무 장대를 빌리러 왔노라고. 근처에 사신단다. 그런데 난 왜 한 번도 보질 못했을까. 낯가림이 심해서 첨보는 사람을 향해 생글생글 웃으며 대꾸를 할 만큼 낯판이 두껍질 못해서 빌려 드리면서도 반은 잃어버려도 그만이지 싶었다. 어차피 망가져서 제대로 기능을 못 하던 거라. 뜬금없이 그 분은 이웃집이 어쩌니 하면서 한참 수다까지........ 하던 일을 제치고 나온 것도 기분이 별로인데. 속으로만 얼른 가시라고 빌었다. 대문을 잠그질 않는 습관이 있어 어떤 방문객들은 벨을 누르지도 않고 마당으로 들어와서 현관문을 두드리곤 하는데, 불청객일 경우 난 불같이 화를 낸다. 대문이 열렸건 닫혔건 일단은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는 게 예의가 아니냐고. 몰입하던 일을 중단하고 나갔는데 나와는 하등 관계도 없는 이가 내 사적인 영역을 침범했다 싶으면 결코 고운 말이 나갈 수가 없다. 숨어있던 성깔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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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11-19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의 가을 풍경을 이렇게 접하는군요.
근데, 아이디 바뀌셨네요. 참 오래도록 친숙했던 아이디였는데,,,,

겨울 2007-11-19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변덕입니다.^^ 이사는 귀찮고 그래서 만만한 아이디만.
어떻게, 잘 지내시나요?
집 떠난 고생은 조금만 하고 오세요.
 

 

11월의 달력을 펼치는 순간부터가 내겐 겨울의 시작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겨울이다. 집안에 칩거하기 시작한 후로는 더욱 겨울이 애틋하다. 내 집을 찾아온, 귀한 손님 같은, 온전한 내 겨울. 쌀쌀함을 넘어 시린 아침 공기, 바람, 떨어져 죽은 낙엽에 마음이 설렌다. 나는 어쩌면 겨울 중독자일지도.




난로는 겨울의 로망이다. 11월이 되는 첫날, 난로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그 위에 물주전자를 올려 낮이고 밤이고 물을 끓인다. 징~ 혹은 윙~ 신호를 보내며 끓기 시작하는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흩어졌던 마음의 갈레가 하나로 모여들고, 책을 읽고, 잠을 자고,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다. 살아있어서 좋다는 생각이 든다.




종일 생강을 씻어 까고 얇게 썰어 설탕에 잰다. 그리고 밤늦도록 난로 위에서 다리고 또 다린다. 온 집안에 생강냄새가 스며든다. 일부는 열어놓은 창문으로 빠져나간다. 생강이라면 치를 떨던 시절도 있었다. 생강냄새에 길들여지는 때가 있는 것 같다. 처음엔 다들 싫어하는 생강 맛이 좋아지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다.




제법 통통한 알타리무 다섯 개를 깨끗이 씻어 물김치를 담그고, 보통 무 두 개로 깍두기를 담갔다. 찌개를 끓이거나 반찬을 만드는 요리 보다, 김치 담그는 일이 훨씬 가치 있게 느껴지는 건 나만 일까. 한 끼의 식사로 소비되어 사라지는 모든 요리는 지치고 화가 난다. 반면 저장, 보관하여 먹는 음식을 완성했을 땐, 스스로가 기특해진다. 옆집에서 호박죽을 끓여왔는데 보기보다, 생각보다 맛있어 놀랐다. 사실, 첫 번째 끓여왔을 땐 숟갈도 안대고 버렸다. 죽 종류, 어디선가 가져온 정체불명의 죽을 먹는 일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두 번째는 솔직히 죄송해서 미안해서 먹어봤다. 수제비를 떠 넣은 호박죽인데, 달달한 것이 입에 찰싹 달라붙어 놀랐다. 비법을 물어와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집 안 곳곳에 굴러다니는 호박이 과연 내 손에서 먹음직한 죽이 될 수 있을 런지는 두고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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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11-03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강차 준비하셨군요. 겨울에 최고에요. 저도 그런 거 잘 못 마셨는데 겨울에
목감기 걸리면 제일 좋더군요. 쌉싸름하니 퍼져오는 그맛과 톡쏘는 냄새..
겨울준비 이야기가 너무 따뜻해요, 우몽님.^^

겨울 2007-11-05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이 많이 차졌어요, 혜경님.^^
안개인지 구름인지 잔뜩 껴서 하늘은 우중충해도
코끝에 와 닿는 공기냄새가 좋아서 한참을 느리게 걸어다녔어요.
혜경님의 겨울맞이 채비는 끝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