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한낮, 말라비틀어진 낙엽들을 긁어모아 태웠다. 양지쪽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시는 할머니를 위한 작은 이벤트랄까. 부지깽이를 들고 빨간 불꽃이 너울거리는 낙엽더미를 들쑤시는 게 제법 재밌다. 파르라니 귓불을 얼리던 추위는 단숨에 사라졌다. 대신 낙엽 태우는 열기가 확 얼굴로 달려든다. 이렇게 뜨거운 게 불이란 걸 잊고 살았다. 기껏해야 가스레인지의 불꽃이나 라이터 불꽃이 내가 아는 불꽃의 전부였던가 보다.
그리고 의식처럼, 십오 년 전 쯤의 일기장 하나를 꺼내와 한 장씩 뜯어 불 속에 던져 넣는다. 낯선 감정의 파편, 흐린 기억의 아득한 한 때를 훔쳐 읽으며. 저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나란 이름으로, 저 많은 말들을 쏟아 붓는 저 이가 과연 나인가. 아니면 치명적인 기억의 오류? 일기장이 소멸하는 순간은 비감하다. 기억뿐만 아니라 기록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두고두고 보기가 싫은 것이 또 그것들이다. 무슨 의식처럼, 해마다 한두 개씩 재가 되는 게 숙명인 듯, 오늘도 한 권의 일기장이 사라졌다.
감귤 혹은 사과가 없는 겨울은 겨울이 아니다. 그 둘이 똑 떨어진 어제 하루, 나는 금단현상에 시달렸다. 날이 밝자마자 슈퍼로 달려가 귤 한 박스를 실어올 정도로. 냉장고 야채 박스 안에 귤을 가득 채우고서야 마음이 놓인다. 과일도 중독이 되나. 단맛이 강한 과일은 덜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덜. 오렌지의 단맛, 배의 단맛, 참외의 단맛, 혹은 달콤한 포도 같은 경우. 날마다 때마다 먹기에는 민숭민숭하고 시금털털한 귤이나 사과가 제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