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그렇게나 추웠나. 이른 아침 마당엘 나가보니 감나무 잎이 우수수 떨어져 쌓였다. 단풍도 들기 전인데 말이다. 바람도 불었나? 엇, 그런데 무화과나무 잎도 몽땅 떨어졌구나. 일부러 또각또각 잘라놓은 것처럼.




국화의 만개는 어딘지 부자연스럽다. 그 가느다란 대공에서 올라왔다는 사실이 영 믿기지도 않고, 무슨 놈의 색은 그리도 선명한지. 대개 모든 꽃의 색깔은 불가사의지만 이것은 크다는 생각이 압도적이라 예쁘다거나 아름답다거나 하는 생각이 도무지 들질 않는다.




아무리 나쁜, 최악의 상황도 부닥치면 견디게 돼있다. 당장은 죽을 것 같아도 시간이 좀 지나면 어떻게 되겠지 한다. 그렇게 비관과 낙관은 널을 뛴다. 지극히 소소한 일로 비관하고 끝장이다 싶을 거창한 일에 낙관한다. 사실 이보다 나쁠 수 없다 생각한 순간부터가 차츰차츰 좋아지는 때니까.




확 추워진 날씨에 패딩 잠바와 비니로 완전무장을 하고 나간 아침. 샛노란 은행잎이 융단으로 펼쳐진 동네 어귀에서 와! 하는 감탄사를 내질렀다. 떨어지기 무섭게 쓸고 또 쓸던 이전과는 달리 언젠가부터 떨어진 낙엽을 바라볼 수 있게끔 되었다. 마치 은행잎이 비가 되어 흩뿌려진 듯 그림 같은 절경이다. 가을은 이렇게 제 존재를 드러내는구나. 모른 척 할래 야 할 수가 없도록. 덕분에 짧은 산책이지만 가을로 흠뻑 샤워를 한 기분이었다.




초인종 소리에 나가보니 처음 보는 아주머니 한 분이 서 계셨다. 감나무 장대를 빌리러 왔노라고. 근처에 사신단다. 그런데 난 왜 한 번도 보질 못했을까. 낯가림이 심해서 첨보는 사람을 향해 생글생글 웃으며 대꾸를 할 만큼 낯판이 두껍질 못해서 빌려 드리면서도 반은 잃어버려도 그만이지 싶었다. 어차피 망가져서 제대로 기능을 못 하던 거라. 뜬금없이 그 분은 이웃집이 어쩌니 하면서 한참 수다까지........ 하던 일을 제치고 나온 것도 기분이 별로인데. 속으로만 얼른 가시라고 빌었다. 대문을 잠그질 않는 습관이 있어 어떤 방문객들은 벨을 누르지도 않고 마당으로 들어와서 현관문을 두드리곤 하는데, 불청객일 경우 난 불같이 화를 낸다. 대문이 열렸건 닫혔건 일단은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는 게 예의가 아니냐고. 몰입하던 일을 중단하고 나갔는데 나와는 하등 관계도 없는 이가 내 사적인 영역을 침범했다 싶으면 결코 고운 말이 나갈 수가 없다. 숨어있던 성깔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잉크냄새 2007-11-19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의 가을 풍경을 이렇게 접하는군요.
근데, 아이디 바뀌셨네요. 참 오래도록 친숙했던 아이디였는데,,,,

겨울 2007-11-19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변덕입니다.^^ 이사는 귀찮고 그래서 만만한 아이디만.
어떻게, 잘 지내시나요?
집 떠난 고생은 조금만 하고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