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집에서 보림어린이문고
이영득 지음, 김동수 그림 / 보림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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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어린 아이들은 시골은 똥 냄새가 나고, 컴퓨터가 없고, 오락기가 없고, 하루종일 만화가 나오지 않는 따분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시골을 알아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골을 알지 못해서 그런 생각을 한다.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샘을 내는 것 처럼, 시골의 공기를 가져보지 못한 아이들은 그렇게 시골에 대해서는 투덜거린다.
  그런 아이들에게, 아이들의 시선에 맞는 예쁜 그림과 글씨로 시골에 대해 알려주는 예쁜 책이다.
 어른인 나도 책이 너무 예뻐 눈을 떼지 못했다.
 동생이나 친구의 그림일기를 훔쳐볼 때의 두근두근함으로 책은 술술 넘어간다.
 
 1. 내 감자가 생겼어요.
 솔이는 자주색 꽃을 보고 고구마가 열리는 줄 알았다. 아빠와 할머니는 그런 내 이야기에 깔깔깔 거리셨지만, 도시에서 자란 엄마는 웃는 이유를 모르나보다.
 이 꽃 밑에서 열리는 감자는 내 감자라고 했다. 솔이 감자.
 솔이는 할머니는 좋지만, 시골은 싫었다. 하지만 솔이 감자가 생긴 후 솔이 감자를 캐러 빨리 시골로 가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감자 밭을 뒤져도 솔이 감자를 찾기가 힘이 든다. 할머니는 캐 보면 알 거라 하셨는데, 다 캐보아도 내 감자가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화가 나서 감자를 휙 던졌다.
  할머니가 그 것을 보고 뭐라고 하신다. 할머니 혼자 키운 감자가 아니라고...
 할머니 혼자 키운 감자가 아니라고? 할머니는 혼자 사시는데 그럼 할머니는 누구와 감자를 키웠을까? 그리고 솔이는 솔이의 자주색 감자를 찾았을까?
 한 장 한 장 솔이와 함께 호흡하며, 시골의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 더 이상 똥 냄새가 나고 컴퓨터가 없고 오락기가 없고 만화도 안나오는 지루한 곳이 아닌 자주빛 감자도 있고 두더지도 볼 수 있는 시골은 신나는 곳이다.
 
 2. 또글또글 망개 목걸이
 시골이 싫은 이유 중 하나는 심심하기 때문이다. 할머니네 옆집에 사는 상구는 이상하게 솔이만 보면 숨기에 바쁘다. 솔이는 상구랑 놀고싶은데...
 상구가 망개를 주고 맛있다고 먹어보라 했는데 솔이 입엔 영 떫기만 하다.
 상구에게 촌뜨기라고 놀리자 상구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그런데 촌뜨기 상구가 그 떫은 망개로 목걸이를 만들어 준다.
 상구의 손재주가 솔이는 마냥 신기하고 부럽기만 하다. 상구에게 망개 목걸이를 만드는 법을 가르켜 달라고 했다. 상구는 반듯반듯 여러 알을 꿰었지만 솔이는 삐뚤삐뚤 쉽게 꿰어지지 않는다.
 상구가 이번엔 망개 팔찌를 만들어 주었다.
 소나기라는 책을 보면, 소년은 소녀와 친해지고 싶어 알밤을 만지작 거린다.
 그렇게 만지작거리고 있었을 상구의 망개가 귀엽기만 하다. 솔이는 상구와 친해질 수 있었겠지?
 
 3. 말 잘 듣는 호박
 솔이는 동생이 갖고싶다. 호박같은 동생이라도 동생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아빠가 새참보다 맛나다는 낮잠을 자는 사이, 할머니가 긴 줄을 들고 호박 밭으로 가서 호박을 때리는 시늉을 하신다.  빨리 호박을 영글어내지 않으면 줄기를 뽑아버리겠다고...
 그 것을 본 솔이도 콩, 참깨, 옥수수에게 가서 소리를 지른다. 알 꽉 차야해!
 자고있는 엄마아빠에게로 돌아오니 괜히 엄마에게 부아가 치민다.
 호박같은 엄마, 호박같은 동생이나 낳아주지...
 호박 꽃엔 과연 호박이 영글었을까? 호박이 할머니 말을 알아 들은 것일까? 그리고 솔이는 호박같은 동생을 가질 수 있을까?
 
 4. 꼬꼬꼬, 닭이 아파요.
 상구가 울상이다. 엄마아빠가 잘 키우면 빨리 돌아올거라고 사주고 간 닭이 아프다.
 병아리 때 부터 상구가 키워서 이젠 알도 낳는데, 이질에 걸려 설사도 하고 낳는 알도 물렁물렁 하다. 잘 나는 비행기, 모래바람을 잘 피우는 모래바람, 청개구리를 꿀꺽한 꿀꺽이.
 너무 예쁜 이름의 닭들이 아파서 솔이도 덩달아 속이 상하다.
 닭들이 좋아하는 메뚜기도 잡고 지렁이도 잡아줬지만, 닭은 자꾸자꾸 아파만 간다.
 할머니에게 투정을 댔더니, 할머니께서 이질풀을 썰어넣어주면 낳는다고 하신다.
 상구 닭은 이질이 나았을까? 상구는 이번엔 솔이에게 무엇을 선물로 주었을까?
 
 도시 생활에 익숙한 아이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자연을 친구처럼 이야기 해 준다. 나도 자주 감자를 심고 싶고, 망개 목걸이를 만들고 싶고, 호박에게 가서 소리를 지르고 싶다. 막 낳은 따끈따끈한 달걀을 품어도 보고싶다.
 아이들에게 자연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하기엔 충분하다. 또 상구같은 친구도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심심할 것 같은 시골에 가도 함께 놀아주고 따뜻한 마음을 전달해 줄 순수한 상구같은 친구가 있다면 심심하지 않을 것 같다.
 엄마한테 괜히 물어본다. "엄마, 우린 시골 언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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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아부지 내친구 작은거인 14
이상배 지음, 한태희 그림 / 국민서관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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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가 들려주던 도깨비 이야기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

그리고 아부지도 사라졌다.

 

사실, 아부지의 꿈이 먼저 사라졌었다.

아부지의 시간과 고향이 더 먼저 사라졌었다.

하지만, 알지 못했다.

 

아부지에게서 걸린 전화에 "???-" 이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아부지는 도깨비를 만나러 간 것이다. 깨비골로 말이다.

 

 

 - 어느 금요일 오후, 아버지가 사라졌다. 과장님이 된 이후로 눈코뜰 새 없이 바빠 나와 놀아주지도 못하던 아버지가 회사가 끝나기도 전에, 조퇴를 하고 갑자기 없어진 것이다. 엄마와 나는 걱정이 되어 아버지의 연락만 기다렸다. 갑자기 걸려온 아버지의 전화에서는 "???"소리만 들린다. 도깨비 이야기를 늘 해주어서 내가 도깨비 아부지라 부르던 아버지가 아무래도 도깨비를 만나러 간 것 같다. 그치만 엄마는 바쁜 아빠가 거길 왜 가냐며 날 핀잔 준다. 아버지를 찾기 위해 아버지가 좋아하는 장소 이곳저곳을 찾아 헤매다 엄마는 깨닫게 된다. "그래, 맞아. 아부지는 도깨비와 친구였어." 아버지를 찾아 깨비골로 가기 위해 엄마랑 기차를 탄다. 난 기차가 좋다. 자주 타고 싶다고 하자 엄마는 이제 자주 타게 해주겠다고 하신다. 와, 신난다. 기차도 자주 탈 수 있고, 아버지께 이야기만 듣던 깨비골도 가볼 수 있다니...

 

 - 과장이 되었다. 부인은 왠일로 엘레베이터까지 마중을 나와 나를 반기고 이제 부장이 되려면 열심히 하라고 다독거려준다. 그 때부터 내 이름은 이동순이 아닌 이과장이 되어 버렸다. 승민이에게 도깨비 이야기를 해 줄 시간 조차 없다. 가끔은 고향에 가서 마음을 쉬어보고 싶지만 아내는 그럴 시간이 어디있냐고 나를 다그친다. 몸도 힘이 들지만, 마음도 자꾸 지쳐만 간다. 부장님은 오늘 내로 끝내야 한다며 이과장을 자꾸 찾는다. 그동안 너무 무리를 했나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긴다. 꿈에서 아부지를 만났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아부지를 찾아뵈야겠다. 회사 일을 팽게치고 기차를 탄다. 한시간 반만에 도착하는 이 곳을 그동안 왜 잊고 지냈을까. 부모님의 산소와 내가 살던 집엔 풀만 무성하다. 이 곳을 왜 잊고 지냈을까. 내 친구였던 도깨비들이 나타났다. 옛날처럼 나를 반겨준다. 그래, 난 이 곳에서 살아야 한다.

 

 

 여동생이 학교에서 돌아와 막 웃었다. 아빠가 이유를 묻자 웃으며 이야기를 했다.

 "아빠, 애들이 으름이 뭔지 모른대. 오늘 국어시간에 국어 선생님이 으름 이야기를 해줬는데, 애들이 아무도 모르잖아. 선생님이 아는 사람 손 들어보랬는데 나 밖에 없었어. 애들이 나보고 촌년이라고 놀렸는데, 그걸 왜 몰라?"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시골에 살고 계시는 것을 난 어렸을 때부터 행복이고 고마움이라고 생각해 왔다. 비록 도시에 살고있지만, 가끔씩 할머니 할아버지를 뵙는 걸로 시골에 사는 것을 대신할 수 있었다. 곤충채집도 하고, 물고기도 잡고, 채소와 과일도 딸 수 있었다.

 산업사회가 진행되면서 많은 사람들을 도시로 내몰고, 핵가족화는 발 붙일 흙이 있는 곳이 없는 사람들을 만들어냈다.

 그런 과정에서 어린 아이들은 시골의 훈훈함과 정겨움을 알 수도 없게 되었다.

 비록 어른들은 그 훈훈함과 정겨움을 잊은 것이지만 아이들을 알 수도 없다. 시골이라고 하면 컴퓨터도 없고 오락기도 없고 만화도 하루종일 나오지 않는 재미없는 곳일 뿐이다.

 엄마아빠 무릎에 누워 옛날이야기를 듣는 장면도 사라지고 있다. 엄마아빠는 아이들만 보면 공부해야지, 학습지는 했니? 학원은 다녀왔고? 같은 이야기만 한다. 그리고 엄마아빠는 매일 돈 문제로 싸운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이 책은 모르고 지냈던 꿈과 환상을 알려준다. 칼로 찌르고, 총을 쏘고 두두두두 소리만 나는 기계가 아닌 ??? 웃는 도깨비들이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고 엄마아빠를 조른다. 시골에 가자고.. 도깨비를 만나고 싶다고...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 이 책은 부모들이 앉아 아이들에게 읽어준다면 그들의 어린 시절의 꿈과 지금의 우리 가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될 것이다. 한권의 동화책이 바쁘게 돌아가는 시간 속에서 잊고 있었던 여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한번쯤 뒤 돌아 보게 만들어 줄 것이다.

 

<좋았던 구절>

"아부지, 어머니, 못난 아들이 보고 싶으셨지요!"

"오냐, 보고싶었다."

"저도 아부지 어머니가 보고싶었어요. 그런데도 자주 오지 못했어요."

"그래. 안다. 그래도 쉬어가면서 일해야지."

"쉴 수가 없어요. 제가 과장이 되었거든요. 일이 많아요."

"일이 많으면 복이지."

"어렵고 힘들어요."

"어려운 일이라도 쉽게 하고 쉬운 일이라도 어렵게 해봐라. 아부지가 농사 짓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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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
홍영우 글.그림 / 보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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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길동전은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고전동화이지만, 이 책은 조금 특별하다.

 이 책을 쓰고 그린 홍영우씨는 재일 조선인 2세로 차별 때문에 한국 사람임을 숨기고 살아야만 했다고 한다.

 그런 현실에, 홍영우씨는 아마 홍길동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을까?

 정의의 편에 서서, 불의에 대항하에 싸우는 홍길동은 정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할 만큼 멋진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차별 속에서 살고 있을 재일교포 어린이들에게 홍길동같은 사람이 되어 꿈을 심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정의는 승리하게 되어 있다는...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이었지만 특별한 능력을 타고 있어서 그 능력으로 못되고 욕심많은 중이나 탐관오리들을 혼내주는 용감한 사람이 된다.

 그는 산 하나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넘고, 아이일 때부터 어른도 들지 못하는 바위를 번쩍번쩍 들며 짚으로 만든 사람을 주문을 외워 자기와 똑같은 사람으로 만드는 놀라운 능력도 갖고있다.

 파워레인저나 원피스의 고무고무팔이 부럽지 않은 능력이다.

 

 어렸을 때, 들은 옛날이야기는 "- 있었어. 그랬거든?" 으로 끝나는 엄마아빠의 조곤조곤 말솜씨가 내용보다 중요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부터 편안해지고 마치 진짜 있었던 일들을 듣는 것같은 환상에 빠졌었다. 그렇게 잠이 들면 꼭 그 이야기의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책은, "-있었어. 그랬거든?" 같은 구어체를 사용함으로써 어렸을 때, 엄마아빠의 무릎을 베고 들었던 그런 이야기같이 눈에 쏙쏙 들어온다. 그 땐 귀에 쏙쏙 들어오던 이야기들이 책과 책의 그림을 통해 눈으로 들어오는 반가움이었다.

 

 이 책이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일본에서 처음 편찬된 책을 국내에서 재출간한 것이라 그런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책장을 넘기는 것이 아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책을 넘기게 되어있다. 또 붓글씨를 연상시키는 글자체에 세로 줄로 이루어져 있다.

 어렸을 때, 처음으로 세로줄을 접했을 때 그 새로움을 기억했다.

 "와- 와, 이 책을 세로로 써 있어. 아빠, 옛날 책은 이랬어?" 하며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책이 쓰여진 방식에 적응이 되지 않아 어지러웠었다.

 그리고 처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어가는 책을 봤을 땐, 몇번씩이나 책을 넘기는 방향을 헷깔려 했었다.

 그렇게 볼 때, 어린 아이들이 접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특히 대형 서점같은 곳을 생각해 보면 유아용 도서, 아동용 도서가 따로 분류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 책 크기로 가지런히 꽂을 수 있는 책은 마치 아동용 도서인냥 한 켠에, 크기가 큰 책은 마치 유아용 도서인냥 또 다른 한 켠에 꽂혀있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책은 유아들 손에 쉽게 들어가리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유아들이 보기엔 무리가 좀 있고, 아동들이 보기에도 세로 줄에 넘기는 방향이 반대인 것은 충분히 어지러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물론, 뉴스에서처럼 초등학교 6학년이 차라투스트라를 읽는다는 대치동 아이들은 다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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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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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은 스쳐지나가기만 해도 인연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어쩌면 책과 독자역시 지독한 인연으로 엮여있는 거라 만남의 타이밍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딱 지금이 이 책이 나와 만나야만 했던 타이밍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베스트셀러에 이 책이 올랐을 때도 '공지영'의 힘이거니 하고 시큰둥했었고, 다른 사람들이 추천을 해줘도 평소에 나랑 취향도 비슷하지 않던 사람인데 뭘 하고 시큰둥했었고, 그러다가 부끄럽게도 영화화가 결정되고 주연배우 캐스팅이 사람들 사이에 논란이 되자 살짝 관심을 갖고 구입했다가도 책꽂이에만 꽂아둔 채 계속 미뤄두던 책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손에 책을 끌어당기는 자석이라도 붙은 냥 이 책이 턱하니 내 손에 잡혀버렸다. 꼭 나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는 듯..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하루 밤 사이 다 읽어내버렸다는 말에 한 몫 보태기라도 하듯, 나 역시 책에서 손을 놓지 못했다.

 

이 책을 멀리 했던 이유랍시고 변명식으로 말을 하자면, 슬픈 소설이나 슬픈 영화를 보면 힘이 다 빠질 때까지 유난히 눈물을 쏟아내는 엄마를 닮은 나는 그래서 슬픈 소설도 슬픈 영화도 멀리하려고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이 울지 않는 부분에서부터 유난히도 울어재끼는 것이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닌데도 창피할 때가 있다.

이 책 중간에 나와있는 한 구절처럼,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으로 찬 사이다를 붓는 것 처럼 싸아싸아했다.
 
힘이 드는 요즘이었다. 몸은 힘들지 않아도 마음이 너무 힘든 요즘이었다.
너무나 자주 가장 친한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 짜증나서 혹은 힘이 들어 죽어버릴 것 같다는 말을 되풀이 하곤 했다.
그리고 그 말은 결코 말 뿐만이 아니라, 정말 죽는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던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다들 너무도 쉽게 아무것도 아닌 냥 '가'버리는데, 정작 '가'의 세계를 원하는 나는 '멈춰'를 요구당해야만 하는 현실들이...
내 이상과 맞지 않는 현실들이 난 너무나 힘이 들었고, 마음이 타 들어가는 것 처럼 아팠었다.
 
그런 나에게 턱 하니 들어와버린 책은 정말 내게 꼭 필요한 이야기들을 속삭여줬다.
한 여자와 한 남자의 마음아픈 사랑이야기를 빌어서.... 그들의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하지만 사랑한단 그 말을 하기에도 짧았던 그 시간들을 말해주며, 아무리 힘이 들어도 지금이 너의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그러니 힘을 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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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벌루션 No.3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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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읽기 까다로운 책을 만나는 도중, 울컥 다른 책을 읽고 싶어졌다.
 잠시 손에서 그 책을 놓고, 즐거운 책을 읽으려고 책 장에서 REVOLUTION no.3를 뽑아들었다.
 
 가네시로 가즈키라면, 독서에 지친 나에게 독서의 재미를 다시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새벽 2시경에 읽기 시작한 책을 차마 놓을 수가 없어서 끝장을 보고야 말았다.
 역시 가네시로 가즈키의 독자를 끌어들이는 마력은 엄청나다.
 
 먼저 읽은 Fly, Daddy Fly에서 이미 인사를 나누었던 더 좀비스 멤버들과 재회를 한다.
 아니, 원래대로였다면 이 책에서 먼저 더 좀비스 멤버들과 인사를 나누었어야 했다.
 그들이 뭉치게 된 이유, 그들 사이의 유대감, Fly, Daddy, Fly에선 알 수 없었던 그들 사이의 끈끈한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더 좀비스가 아닌 더 좀비스 멤버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무엇.
 
 학력으로 승패를 가누는 사회에서 그들은 어쩌면 패배자의 낙인이 찍혀버린 문제아들이겠지만, 사람 됨됨이로 승패를 가누는 사회에서 그들은 이미 이 세상의 유전자를 바꿔버릴 혁명가들이다.
 그러고 보면, 순신은 체 게바라 정도가 되는건가? 낯선 혁명가.
 그들의 우스운 이유로 시작된 모험과 친구의 죽음, 그리고 여행. 그 속에서 그들은 어쩌면 그 자체가 좀비스일지도 모르는 사회에 순응하려 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려 한다.
 그래, 사회에서 소위 엘리트로 인정받는 사람들에게 그들은 너 어느 별에서 왔니?라고 묻고 싶을 정도의 낯설고 삐뚤어진 외계 생명체 같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알고있다.
 그들의 낙인이 사실은 패배자의 낙인이 아닌 순수함의 낙인이라고... 세상이 정해놓은 틀에 아직 주조되지 않고 생생히 살아있는 젊음이라는 것을 말이다.
 
 소수가 살아남기 힘든 세상 속에서 분투할 수 있는 힘을 보여주는 그.
 그리고 그런 그들을 만들어 낸 가네시로 가즈키.
 그리고 그 소수가 살아남기 힘든 세상 속에서 살아남은 가네시로 가즈키.
 
 작가가 더 좀비스에 묻어나고 독자가 더 좀비스에 묻어나고
 더 좀비스가 세상에 더 늘어나길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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