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중력 증후군 - 제1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윤고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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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색의 공포가 시작되었다. 도시의 사람들은 하나씩 눈이 멀기 시작했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자들의 도시」(해냄, 2002)는 이렇게 시작한다. 사람들은 그 전염병을 피하기 위해 그들을 격리시켰지만 결국은 치과 의사의 아내를 제외한 모두가 병에 걸렸다. 한국에선 아폴로 눈병이 유행했다. 그 눈병은 전염성이 강해서 금새 타인에게 전염 되었다. 학교에선 눈 병 걸린 학생들을 격리시켰다. 그러자 아이들은 눈병이 걸린 아이들을 찾아가 부탁을 했다. '네 눈을 비빈 손으로 내 눈도 비벼줘.' 눈병에 걸린 아이들은 어느새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눈병에 걸리지 않은 아이들은 부러운 눈으로 그들에게 속하지 못했음을 한탄했다. 곧 한국은 아폴로 눈병에 걸린 아이들의 천국이 되었다.

 

     공동체 의식이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군중심리가 크게 작용한다. 혼자 있을 때와 타인과 함께 있을 때의 모습은 차이가 있고, 그래서 더욱이 우리는 소속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렇게 공동체 의식이 강할 수록 혼자 있을 때, 혹은 심리적으로 혼자라고 느껴질 때의 고독감은 배가 된다. 이 책은 그런 현대인의 소외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 소외가 우울하거나 어둡지만은 않다. 작가의 상상력 속에서 현대인의 무거운 고질병은 유쾌해진다. 마치 무중력 상태에서 유영하는 것 같아진달까?

     달이 두개가 되고, 세개가 되며 사람들은 두려워진다. 익숙함에서의 탈피,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두려움은 세기말 우리가 느꼈던 감정과도 같았다. 종말이 오지 않을까, 우린 어디로 가야할까. 우린 우리가 서 있는 현실을 지겨워하면서도 현실이 떠나갈까봐 두려워한다. 그리고 그런 두려움이 큰 사람들은 자신을 버리고 무중력자가 되려고 한다. 달이 여러개가 된 현실 속에서 그들은 무중력 상태를 꿈꾸고 그들이 만들어 낸 히트상품 '달'은 날개를 돋힌 듯 팔려나간다. 하지만 결국은 이것 역시 유행일 뿐이다. 사람들은 또 다른 유행을 만들어 내고, 그 유행을 쫓지 못해 조급해진다.

 

     사람들의 욕구에 맞춰 트랜드는 빠르게 변화하고, 그 속에 우리의 안정감은 더더욱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그런 현대인의 어두운 모습을 너무나 상큼하게 담고 있다.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지 않을 수 없다. 젊은 작가들이 쏟아내는 칙릿과 그런 소설들을 선호하는 문학상의 흐름 속에 한겨레 문학상은 이번에도 그 품위를 어느정도 유지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다른 책들이 많이 연상이 되었다. 책을 읽으며 또 다른 책을 기억하고, 나만의 책 나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야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의 기쁨 중 하나겠지만 뭔가 비슷한 느낌에 사로잡혀 버리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다. 특히 2007년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인 정한아의 「달의 바다」(문학동네, 2007)가 유독 머리를 떠나지 않았는데 물론 달이라는 소재 하에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나 주제 등은 사뭇 달랐지만, 이 책의 작가가 현대인의 소외와 고통을 이야기 하기위해 가져온 '군중 심리'라는 하나의 소재가 왠지 이 책과 그 책을 연결 시킨 것이다. 물론, 두 책 모두 신인작가의 기량이 돋보였으며, 한국 문학의 또 다른 내일을 기대하게 했다는 점에서 즐거웠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 다른 달이 출현했다. 앞으로 작가가 보여 줄 또 다른 모습이 자뭇 궁금해진다. 책 뒤 심사평 처럼, 나 역시도 작가가 '무중력'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작품을 널리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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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웃 어 보이
닉 혼비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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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끊임없이 무기력해지던 때가 있었다. 난 가족을 위해 뭔가 해야 했고, 뭔가 되어야 했고, 뭔가 꿈꿔야 했다. 아니, 그래야 한 것이 아니라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양 손은 텅텅 비어있었고 그 자책감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렇게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서 난 내가 되기로 결심했다. 내가 되어야 난 숨쉴 수 있고 내가 숨쉬며 힘껏 사는 것이 모두에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난 지금까지도 내가 되고 있고, 가끔은 내 그런 생각들이 철없고 무책임한 자기합리화였을지도 모른다는 또 다른 자책을 하게 되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자책의 시간보다는 만족의 시간이 더 많음에 다행이다. '내가 되기' 그것은 당연한 것처럼 들리지만 썩 당연한 일만은 아니다.

 

        그리고 여기에도 내가 되지 못한 두 사람이 있다. 어른 한명, 아이 한명. 어른이되 어른같지 않은 윌과 아이이되 아이같지 않은 마커스는 우연히 서로를 알게 되고 어느순간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다. 그 누가 어른과 아이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했던가. 이 책은 어쩌면 아이들이라고 얕잡아 본 어른에게, 어른이라고 다 지루하다고 생각한 아이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놔 줄 수도 있을 듯 하다. 세상에서 젤 속 편한 어른인 것같은 윌과 세상살이 고민은 다 짊어진 것 같은 마커스는 너무 다른 서로를 마음에 들지 않아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가고 마음을 열고 결국은 자신을 발견한다.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 속에서 이들은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마커스는 윌에게 마음을 터 놓고 의지하며 아이가 되어간다. 조숙한 것이 뭐가 나쁘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마커스에게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고통이었다. 자신의 아픔을 감당하기 위해 아이는 애써 어른이 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마커스는 윌과 엘리를 통해 알게 된다. 감정에 솔직할 수 있고 뭐든 해볼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아이여서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윌은 마커스를 통해 진정한 어른이 된다. 진정한 어른이란 자유의 방종이 허가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유에 진정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하는 것임을 마커스를 통해 보게 된다.

        우린 누구나 혼자 살 수는 없다. 그것은 결혼 관계의 유무가 아니라 사람 관계를 의미한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알게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한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다. 그것을 윌과 마커스를 통해 깨닫게 된다. 닉 혼비의 글은 명쾌하고 유쾌하다. 책을 통해 내 주변을 돌아본다. 나의 관계, 그것은 어쩌면 내가 괜찮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인가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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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shop CS3 핵심 활용 비법 400
무라카미 히로코 지음, 임효정 감수 / 삼양미디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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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엄청난 컴맹이다. 인터넷 검색 외에는 무엇 하나 제대로 다룰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다. 그나마 한글 프로그램이 가장 익숙하고 한글 프로그램만 제외하면 다른 프로그램은 손도 못대는 실정이다. 사실 대학교 1학년 때, 엑셀이나 파워포인트부터 간단한 홈페이지 만드는 법까지 가르쳐 주는 수업이 필수교양에 속해있었다. 그런데 인터넷도 되는 컴퓨터에다가 50명 넘는 인원이 복작대고 있으니 수업이 귀에 잘 들어올리가 없다. 난 수업시간에 늘 메신저를 띄워놓고 장난치기 일수였고, 그러다 과제가 주어지면 아는 오빠에게 부탁해 어물쩡 넘어가곤 했다. 그게 요즘 들어 그렇게 후회가 되는 것이다. 여행을 계획하고 내 입맛에 맞게 여행 일기를 블로그에 써 보고 싶은데, 또 몇년간 써오고 있는 서평을 좀 더 그럴듯 하게 딱 나만의 것으로 써보고 싶은데 이것들을 하려면 포토샵은 필수였던 것이다. 포토샵 창을 띄워놓고 아무리 이것저것 눌러봐도 뭐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인터넷을 보고 따라하면 된대서 관련 카페들에 여기저기 가입을 해봐도 이해력 딸리는 난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책 저 책 들춰보던 차에 일반 서적으로 친숙하던 삼양미디어에서 포토샵 관련 서적이 나온 것을 알고 반갑게 만나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완전히 내 스타일, 내가 찾던 류였다. 난 설명이 장황하거나 한 설명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또 기초부터 차근차근은 왠지 초반에 질려버린다. 나한텐 내가 필요한 부분만 딱딱 찾아서 그 때 그 때 활용하고 또 활용하다가 손에 익는 '익숙해지기' 학습법이 '차근차근 배워나가기' 학습법보다 효과적이고 잘 맞는다. 그런 내게 이 책은 참 적당하다.

     책 제목처럼 400개의 비법이 간략간략하게 나와있어 내가 필요한 부분만 쏙쏙 뽑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기초를 무시하지도 않았다. 생초보인 나도 알수 있게 아주 기초적인 내용부터 나와있어서 앞의 몇 챕터만 조금 주의깊게 보고 숙지한다면 그 뒤의 응용은 필요할 때마다 찾아서 익히기 좋다.

     카메라를 사고, 사진을 찍어도 가끔은 원하는 효과를 내고 싶을 때가 많았다. 늘 바라만 보는 그대였던 포토샵 프로그램들을 딱 맞는 책을 만나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이 책을 통해 내 블로그가 조금 더 버라이어티 해지고 포토샵이 내게 익숙해져서 언제라도 뚝딱뚝딱 프로그램을 처리할 수 있는 포토샵 고수가 되길 바라고 있다.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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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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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밤, 내 인생의 책들을 꼽아봤다. 내 기억 속에 너무나 반짝거리며 꽂혀있는 책들을 떠올리며 내 시간을 되짚었었다. 그 땐 몰랐다. 단 하루만에 또 한권의 잊지 못할 책이 생길 것이라는 것을.

     난 영문학을 좋아하지 않았다. (과거 시제로 쓰는 것이 옳다. 아마도 이젠 좋아질 것 같으니까.) 전공으로 선택을 했으면서도 영문학은 달갑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덜 섬세한 것 같았고 왠지 모르게 덜 감상적인 것 같았다. 난 섬세하고 감상적인 이야기들이 좋다. 난 미국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이 역시 과거 시제로 쓰는 것이 옳다.) 이유는 딱히 없지만 미국이라는 나라는 내게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영화에 나오는 드라이브 코스로는 아주 제격인 길고 긴 시골길도, 바라만 봐도 넋이 나갈 것 같은 불빛을 뿜어대는 라스베거스도, 화려하고 다채로운 뉴욕도 그 어느 하나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난, 센트럴파크에 누워 이 책을 읽으며 날 끌어당기는 수많은 손을 느껴보고 싶다.

     2001년 9월 11일, 세계는 충격에 휩쌓였다. 비행기가 건물을 통과했고 건물이 무너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이 책은 바로 그 사건에 기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이 책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야기이다. 그 사건으로 아빠를 잃은 오스카는 아빠를 찾고 싶다. 그것이 아빠를 잊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오스카가 아빠를 놓지 못한 것은 마지막으로 아빠에게 듣지 못한 그 한마디, '사랑해' 때문은 아니었을까. 우린 늘 얼마나 많은 말들을 머뭇거리다 놓치고 마는 걸까, 하지 않아도 좋은 말들, 걸러도 좋은 말들은 기여코 뱉어낸 후 주워담지 못해 후회하면서 해야 할 말들은 얼마나 많이 놓치고, 잊게 되는 걸까. 그 말들을 다 모아 담을 수 있는 언어저장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가 단지 한 소년의 홀로서기를 그리는 것은 아니다. 이 이야기는 9.11 테러 이전의 2차 세계 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9.11은 단지 한 순간의 일은 아니다. 그건 그 순간 이전의 모든 순간을 안고 있는 한 순간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 이전의 모든 순간이 바로 이 순간에 달려있어. 전 세계 역사의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잘못된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어.(p.322)

     그리고 그 과거의 순간엔 오스카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있고 오스카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첫사랑이 있고 오스카의 할머니가 있고 오스카 할머니의 아버지가 있다. 오스카 역시 이전 모든 순간을 안고 있는 한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에겐 말하지 못한, 세월이 있고 그리움이 있다. 그들은 미래를 믿고 현재에 충실하지 못했음을 잃어버린 후에야 그리워하며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모두, 그렇게 살아간다.

     우리의 귀는 예전에도 두개였고 지금도 두개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남의 말에 무심하고 필요한 말을 아낀다면 언젠가 우리의 귀는 사라지고 우리의 언어도 소멸하지 않을까. 우린 점점 말하는 법을 잊게 되고, 나중엔 토마스처럼 산더미 같은 공책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지 못한 말들의 무덤...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단 한번도 만나지 못한 아이에게 쓴 편지의 무덤. 그 속에서 우린 대답 없는 물음을 계속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몇시입니까? 미안합니다. 도와주세요.


     책은 엄청나게 아름답고 믿을 수 없게 슬프다. 끝을 바라보며 밝혀지는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은 강렬한 반전이 아니라 아름다운 마무리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 준다. 책을 읽는 시간이 행복했다. 코 끝이 찡해지고 몇 번을 고개를 들어 눈을 깜박깜박 거려야 했지만 책을 읽는 내내 책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마치 센트럴 파크에 누워 맨하튼 쪽으로 끌어당겨지며 꿈으로 새겨진 모자이크를 더듬는 기분이었다. 정말, 정말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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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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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햇살이 드는 버스에 앉아 책을 펼쳤다. 예전엔 차 안에서 책을 읽으면 바로 멀미가 시작되었다. 그러다 생활이 바빠지고 책을 읽는 시간이 간절해지자 차 안에서 책을 읽게 되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책과 멀어지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 언젠가 부터 책은 내게 유일한 도피처이자, 가장 완벽한 개인적인 공간을 선사해 주었기 때문에.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상관없었다. 책 한권이면 난 즉시 완벽한 나만의 세계를 가질 수 있었고 내 앞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펼쳐졌다. 그래서 난 아직까지도 책을 놓을 수가 없다. 버스 안에서 책을 읽으며 책과 함께 내 지난 시간을 더듬기 시작했다.

     내 독서의 시작은 내 기억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 엄마는 아직도 내 어린 시절을 이야기 하신다. 어느 날 혼자 책을 읽고 있었으며 어느 날 혼자 글을 쓰고 있었으며 하루종일 책만 읽어서 못 읽게 하자 화장실로 책을 들고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는, 내 기억에 닿지 않는 그런 일들은 어려서 부모님이 내게 아주 큰 기대를 하게끔 했으나 결국에 난 독서를 좋아하는 것 외에는 학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무지한 아이로 자랐다.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은희경 작가에게 공감을 했다. 은희경은 자신이 가진 현재 문학의 전 자산은 초등학교 때의 글자 중독에 가까운, '닥치는 대로 한 바퀴 도는 독서 편력'이었다고 단언한다. (p.142) 내겐 문학의 자산이라는 것이 아직은 없는 것 같지만 독서 경력이라는 것이 있다면 내 전부가 초등학교 때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도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만. 그 이후 몇년간은 난 만화책에 몰두하느라 (어떤 만화책은 한권의 고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줄 때도 있지만) 다른 책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책을 손에 잡은 것이 대학교 때의 일이다. 대학교 시절 아직도 잊지 못하는 경험은 나보코프의 「롤리타」에 있다. 그 때 난 부전공으로 법학과 수업을 듣고 있었지만 내 기대보다 법학은 꽤나 속물적인 학문이었다(고 스스로는 생각했다). 그래서 내 흥미는 이내 식고 말았고, 난 100명 가까이 듣는 헌법 수업시간에 롤리타를 읽으며 나 홀로 다른 세계에 있다는 느낌에 만족했다. 그리고 그 수업을 듣는, 주로 내 앞에 앉았던 잘생긴 한 신입생과의 로맨스를 상상하며 짧은 글을 썼었다.

     매혹적인 독서가들을 만나며 나 역시 잊지 못하는 나만의 책을 꼽아보았다. 책이 한 사람을 설명해 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토록 실감나게 다가왔던 것은 처음이었다. 잊지못할 기억 속 첫 책에는 「어린왕자」가 있으며 「제인에어」가 있고 어린이판 「셰익스피어 모음」이 있다. 그리고 고모가 살던 집의 창고로 쓰던 방. 그 후 내게는 밀란 쿤데라와 엘프리데 옐리네크와 임레 케르테스와 로맹 가리와 김연수 그리고 또 누가 있을까.

 

     솔직히 난 이 책을 읽으며 몇번이나 울컥했고 한 번은 눈물까지 쏟았다. 남들과 늘 어긋나게 울고마는 나 조차도 알 수 없는 내 감정의 선이 또 어딘가에서 건드려졌다. 예를 들어 김탁환 작가의 표제가 된 '한 권의 책은 더 나은 삶에 대한 열망'이나 에필로그의 '살아보지 못한 삶도 삶이다' 같은 문장이 반짝반짝 빛이 나서 눈을 시리게 했다. 그리고 또 하나, 나름대로 열심히 책 읽고 살았다고 생각한 내가 읽지 못한 책은 또 왜 이리 많은지. 나도 한 번, 고속터미널 역 영풍문고에 서서 책들을 보며 눈물 흘린 적이 있었다. 내가 다 못 읽고 죽을 책들이 쌓여 있는 것이 너무나 억울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 이유 때문에 눈물이 난 건 아니다. 아직 내 독서는 갈 길이 멀지만 내가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분명하다. 한번 만난 책을 또 다시 만나기 위해, 난 첫 독서를 한다. 그 사실을 깨달은 한 읽지 못한 책에 조바심 낼 필요는 없다.

     이 책의 서평을 쓰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의 독서와 나의 시간을 만나봤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 그래서 난 이 책이 엄청나게 좋았다는 감상은 살짝 빼 버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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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08-08-15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뜬금없이 스킨의 커피가 마시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