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장미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3
캐서린 패터슨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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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일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한 가수는 1인시위 끝에 삭발을 하며 눈물을 보였고, 한 배우는 노조의 농성을 돕다 경찰에 연행되었고, 어떤 이는 반년 가량 감옥의 독방보다 좁은 곳에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가진 자들이 말한 언어의 철회 뿐만은 아니다. 그들의 진정성은 노동자들을 일하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사람으로 봐 달라는 처절한 외침에서 나온다.

    역사란 결국 승자들의 기록이기에 그것에는 관심이 가지 않는다는 내가 어느 순간 역사가 되풀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안 후 그것들을 무시할 수는 없게 되었다. 역사의 아픔들은 대게 아직도 끝나지 않고 번복되고 있었고 지금의 우리 사회의 아픔으로 고스란히 전해지기도 했다. 이 책이 유난히 가슴이 아프고 감동적이었던 것도 그런 이유 탓이었다. 소설의 배경은 20세기 초반 미국이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의 모습이기도 했다. 생계를 꾸려가기도 힘들 정도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임금은 겉으로 들어 난 그들의 이유였고, 인권을 호소하는 것은 그들의 진정성이었다. 청소년문학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진실이고 사건의 기록이다.

 

    세상은 파업의 목소리로 들끓는다.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온 이주자들에게 현실은 고통이고 참혹하다. 최소한의 생계도 보장받지 못하는 임금은 부익부빈익빈의 뜻을 이론이 아니라 현실로 받아들이게 한다. 만들어진 신화 속에서 그들도 한 때 우리와 똑같은 노동자였다고 외치지만 만약 그들이 이 삶을 경험했다면 지금 그들이 이럴 수는 없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이고 신념이다. 영어 한 마디 할 줄 모르고, 쓸 줄은 더더욱 모르기 때문에 파업은 그들과 먼 이야기 같지만 진심의 목소리가 모아진다면 반드시 통하리라는 그 말을 믿는다. 어른들의 전쟁에 피해를 입는 것은 아이들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잠시 길을 떠난다. 그 길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이 말하는 진심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빵'이 아닌 '장미'도 있었기에, 누군가 그 장미에 물을 떨어트리는 순간 피어나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열심히 일 하면 잘 살 게 될 것이라 했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힘든 부모님께 몇 백이 넘는 등록금은 감당하기 어려운 산이 된다. 잠 잘 시간도 쪼개 아르바이트를 해 보지만 그것으로 충당 되는 등록금은 아니다. 그렇게 졸업을 하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은 외국에서도 잠시 공부 해 보고 다양한 경험을 해 본 자들을 원한다. 아르바이트만 해도 버거운 시간에 외국과 다양한 사회 경험은 호사가 되어 버리고 다시 우리는 부모님의 삶을 답습한다.

    위의 이야기는 팩션이었고 아래 이야기는 100%의 현실이다. 어느 쪽이 더 무겁고 가벼운 지 평가할 수 있을까. 이게 바로 지금 우리의 삶이고 우리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책은 더 찡하고 더 감동적이고 더 무겁다. 이 현실엔 과연 답이 있을까. 100년 전 이야기가 지금에도 이렇게 통용되고 있는데, 이 갈등은 언제쯤 해소되고 이 아픔들은 언제쯤 무뎌질까. 책은 끝나고 이야기는 마무리 되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우리는 아직도 길고 긴 터널 속을 지리하게 지나고 있다. 아직도 우리는 장미를 원하고, 그럼에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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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어준다면
게일 포먼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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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내고모가 이른 나이로 돌아가셨을 때, 어떤 사람들은 이제 막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고모의 아이들을 걱정했고 어떤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가장 불쌍하다며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기 마련이다라고 했다. 아직 어렸던 나는 그 누구의 말보다도 그 빈자리가 신경이 쓰였다. 어제까지 집 안에 있던 한 사람이 사라진 후 남을 그의 빈자리.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빈자리가 주는 느낌은 클 것 같았다. 몇 년이 지난 지금 고모의 아이들은 밝고 영리한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고모부를 볼 때마다 고모의 빈자리는 여전하다. 고모의 빈자리를 볼 때면 늘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제 우리 고모의 일이 아니라 우리 엄마아빠의 일이라면. 물론 나를 유난히 예뻐해줬던 고모였기에 슬펐고 아직도 고모 생각을 많이 하지만, 부모님이라면 사정은 많이 다를 것 같았다. 아침마다 날 깨워 밥 먹으라고 하던 목소리, 늦게 들어온다며 전화 해 야단치는 목소리, 집 밖에서 날 기다리고 서 있는 모습. 그 모든 습관들이 어느 한 순간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내 존재는 지금과 같겠지만, 난 그 같음을 실감할 수 있을까. 눈을 떴더니 전혀 다른 삶이 내 앞에 펼쳐져 있는데? 그 곳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

 

          갑작스런 사고, 부모님과 남동생의 죽음. 미아는 코마 상태에 빠지지만 그녀의 영혼은 이 모든 사건을 보고 듣고 느끼고 있다. 현실은 17세의 소녀가 받아들이기에 혼란스러운 것들 뿐이다. 이 혼란이 정돈되어 가며 미아는 이 현실에서 빨리 벗어나고만 싶다. 죽기 전 한 순간에 그동안의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고 흔히 말하듯, 미아의 머리 속에 행복했던 지난 날들이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그 안에서 분명히 보이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사랑이다. 부모님의 사랑, 조부모님의 사랑, 어린 남동생의 사랑,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와 남자친구까지 자신을 얼마나 아껴줬는지. 그 때, 목소리가 들린다. 네가 어떤 선택을 해도 괜찮아.

          뭘 해도 괜찮다는 위로의 한 마디. 때론 그것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어떤 가수는 사랑한다는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 순간이 있다 했지만, 삶에는 사랑한다는 말보다 괜찮다는 말이 필요할 때가 분명 있는 법이다. 부모님의 죽음, 나만 살아남은 것 그 모든 것이 너 때문에 벌어진 일은 아니다. 너는 괜찮다. 그 말에 위로를 얻은 순간 또 다른 목소리는 말한다. 남아줘.

          비웃을 수도 있다. 고작 10대의 풋풋한 첫사랑이 아니냐며. 그 안에 어떤 진지함이 있겠냐며. 결국은 시간이 흐르면 추억으로 남을 지나갈 사랑이라고. 그러나 미아와 애담을 보고는 비웃을 수 없다.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게 되고, 언젠간 운명의 짝을 만나게 된다고 믿는 낭만적인 운명론자가 아닐지라도 그들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은 어른들의 인스턴트식 사랑보다 훨씬 진지하다. 그렇기에 애담의 마지막 말에 흔들리는 미아를 이해할 수 밖에는 없게 된다.

          어떤 이들 말처럼 가슴 찡하고 눈물이 나는 그런 소설은 아니다. 아니, 이 소설과 같은 문화적 배경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감성에 아주 자극적인 소재는 아니다. 허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서성이는 건 누구에게나 어느 순간이든 올 수 있는 찰나이기 때문에, 그 찰나에 느낄 우리 주변의 사랑을 굳이 그 곳까지 가지 않고서도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그 순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 그것을 경험해 보는 것이다. 소설은 우리에게 소설 속 주인공이 되라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경험하는 그것을 공감해 보라 말하는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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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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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 이후로, 두 번째의 시간이 흐를 것 같았다. 난 또 한 번의 나이를 먹을 것이었다. 이 책의 첫 장을 편 순간 그 시간이 올 것임을 깨달았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을 읽던 그 날 처럼.

     시간이란, 사람이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흘러간다고 믿는다. 이 책 속의 말처럼 시간은 방향은 일정하지만 밀도와 속도는 균일하지 않은 셈이다. 책 속 주인공의 이름을 부를 수가 없었다. 10년 전 가을, 그 애가 내 눈 앞에서 사라진 시간의 그 틈으로 나왔다가 사라진 두 번째 소년, 그 아이가 그런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소설이란 늘 과거의 어디쯤에 있어 독자를 과거의 시간으로 데려다 놓곤 한다. 물론 그 때의 독자의 시간은 소설 속 인물의 그것과 동일하지는 않은 법이다. 난 지나 버렸지만 흘러 버리지는 못한 그 시간을 걷고 있었다. 우리에게도 그런 약속이 있었다. 첫 눈을 함께 보자는 낭만적인 대사는 하지 못했지만 드라마 속 소년 소녀의 풋풋함으로 2년 후의 가정을 했더랬다. 그 때 우린 그런 약속을 할 만큼 충분히 어렸고, 우리는 아직 사회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 어떤 면으로도 어른이 되지 않았으니까.

    

     그 아이의 인생은 평범하지는 않다. 하지만 세상이 정해놓은 '평범'이란 선에서 어딘가 모르게 빗겨나간 환경의 요소들이 아이를 성장시킨다. 아이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익숙해지며 그 안에서 가족, 사랑, 우정을 배운다. 고독은 혼자 이겨내야 하지만 슬픔은 함께 나눠야 한다는 큰 진리까지도.

     이야기 속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그리핀의 형상은 질풍노도시기를 겪고 있는 그들의 모습과 닮아있다. 그들은 이 험한 세상을 헤쳐나갈 사자가 되어야 한다. 그 사자의 등에 날개를 다는 것은 그들의 몫이다. 세상의 풍파라는 것에 휩쓸리면서도 몇 번을 일어서면 언젠가 날개가 생겨나고 그들은 자신을 향해 날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풍파에 휩쓸리고 일어서지 못하면 결국 그 날개는 꺽여버리고 그들이 꿈꾸던 세상은 일장춘몽, 하루 밤의 꿈과 다를 바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청소년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단순히 청소년 시기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이미 커 버린 어른들의 지난 시간이며, 물리적인 시간만 흘러보냈을 뿐 여전히 그 어디쯤을 멤돌고 있는 성인이라는 세상이 붙여 놓은 이름을 단 어린성인들을 위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들과 함께 길을 걸었다. 난 아직 10년 전 가을 그 어디쯤을 헤메고 있을 뿐이었다. 내 나이는 훌쩍 그 때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고, 이제 난 하이힐이 어색하지 않고 마스카라도 자연스럽게 바를 수 있어졌지만 내 마음과 기억들은 여전히 그 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그들이 키우는 사랑에 설레였고 그들이 뿜어내는 싱그러움이 부러웠고 그들의 고민에 함께 마음을 졸였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끝이 났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되는 것처럼 나의 이야기도 다시 시작되고 있음을 느꼈다.

     늘 알고있었다. 내가 그 때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일은 단 하나 뿐이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난 달아나지 않았고 그 어딘가에서 이미 사라져버린 하나의 뒷모습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시작해야 할 때가 된 것같다. 그들이 도망치지 않고 나름의 방법으로 일어나 자신의 날개를 달기 시작한 것처럼, 이 책 속 그들과 함께 내 등 어딘가에도 날개가 나기 시작하려는 듯 간지럽기 시작했으니까.

    

 

     방향은 일정하지만, 시간이란, 밀도와 속도에서는 절대로 균일하지 않는 것. (p.12)

     우리는 이치에 닿지 않는 세계에 태어난 거라고. 그래서 그랬나봐. 나는 어디론가 떠나서 숨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거든. (p.139)

     각자 너무 다른 존재들이기 때문일까. 사람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너무 많은 것 같다. 그런데도 가까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제 멋대로 결론을 내버린다. 미리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 무러 해도 관계는 바뀌지 않는다. (p.140)

     삶을 다양하게 해석하여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고 생각을 유연하게 만드는 것도 싸움의 한 방식인 것이다. 혁명이란 다른 혁명에 의해 무너질 수 있어야 진정한 혁명이다. 또한 약함은 약함을 뿐이지만 스스로의 약함을 표현하는 태도는 강함이기 때문이다.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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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1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현정수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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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슈퍼히어로보다는 탐정물을 좋아했어." "어, 탐정이면 코난인데. 아저씨 안경 코난이랑 똑같아요." 귀여운 딩동이가 코난을 이야기하고, 난 코난을 떠올리며 이 책도 떠올린다. 순정코믹추리물 이라는 이름 하에 만화로 나왔다면 더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도 가져본다. 드라마화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렇다면 꽤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국내에서 제작된다면 집사는 차승원 정도가 좋겠지? 아가씨의 추리가 마음에 안 들 때 마다 까칠하게 한 마디 툭 던지고, 좀 괜찮다 싶으면 딩동을 외쳐주는 것이다. 까칠한 도시남자 설정이면 현빈도 괜찮겠다. 그 때쯤이면 제대하려나? 뭐 이런 시덥잖은 생각들을 했다. 무거운 책들을 읽었기에 기분전환이 필요했고 이 책은 적당했다. 숙취에 시달리는 아침에 마시는 차가운 라이트 콜라의 기분이랄까.

     일본 서점대상 1위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책들이 대게 그렇듯 뛰어난 이 책 역시 작품성과 필력보다는 글을 이미지화 시키기 쉽다는 것이 장점이다. 요즘 각종 포털사이트 등에 종종 인기글로 올라오는 가상캐스팅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책 속 캐릭터들이 평범하거나 보편적이지 않고, 상상에서만 존재하는 그런 특징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 속 주인공 역시 대기업 회장의 딸이다. 재벌 2세, 3세야 현실에도 존재할 수 있겠지만 이 아가씨의 직업이 형사라는 점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감추고 형사로 활동하는 그녀의 재주는 명품들을 수수하게 보이게 한다는 점과 능숙해 보이면서도 빈틈많은 추리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계속 사건을 맡는다는 점, 그리고 사건현장 근처까지 캐딜락을 타고 다니지만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는다는 완벽한 위장술 정도이다. 그리고 그녀 옆의 미스테리한 집사는 아가씨에게 해서는 안 될말을 툭툭 뱉으며 그녀가 맡은 사건을 너무도 간단하게 풀어버린다. 야구선수나 탐정이 되지 못해 집사가 되었다는 그의 레파토리는 그의 확실한 독창성과 함께 작가가 그에 대해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을 납득시킨다. 어쩌면 꽤 허술해 보이는 이 이야기들이 그럼에도 봐줄만하고 읽을만하게 되는 것은 주인공들의 배경이야 그렇다쳐도 글의 메인이 되는 사건들에 너무 개연성이 없다거나 너무 허구적이지 않다는 데에 있다. 망하는 드라마들의 코드인 개연성 없이 벌어지는 사건과 또 개연성 없이 해결되는 실마리가 이 책에선 크게 적용하지는 않는다. 살인사건이라는 소재 탓도 어느정도는 기여하겠지만 허무맹랑한 이 이야기들 속에 깔려 있는 복선들은 꽤 그럴 듯 하다는 이유도 있다. 그리고 그 사건들의 동기 역시 말도 안 되는 억지스러운 설정이 아니라 질투 등의 사소하지만 그럴 수도 있는 그런 점들이기에 납득할만 하다.

     이런 류의 일본소설들은 식상하기도 하고 지나치게 가벼워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책을 읽다보면 그들의 문화가 부러운 한 가지 이유는 늘 발견하고 만다. 다양한 장르의 자국문학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 그것인데 아직 우리 문학엔 그것이 부족함에는 이의를 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부족은 어쩌면 우리의 인식과 고정관념 탓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젠 바꾸어 나가야 한다. 전 세계가 우리 문학을 주목하기 시작한 이 때, 그것을 얼마나 더 끌고 나갈 수 있는가는 분명 우리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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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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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는 내내 악몽은 지속되었다. 나는 꿈속에서 최현수가 되었고, 누군가를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죽인 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나의 앞날은 까마득했고, 나는 그런 어둠 속에서 길을 잃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고, 아 꿈이었구나 하는 안도를 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그런 이 책을 놓지도 못했고 매일 밤 전 날의 악몽을 계속해야 했다. 물이 차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책 속 한 글자 한 글자가 나를 엄습해 숨이 막힐 지경인데도 그 장면을 생생히 보아야 했다. 텍스트에 대한 나의 집중력 탓인지, 텍스트의 힘인 탓인지 의문을 갖는 것은 타당치 않았다.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집중력이 유독 약한 내가 이 책이라고 별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그런 독자마저 휘몰아치는 힘, 그건 분명 글이 가지고 있었다. 나는 두려움에 떨었고, 섬뜩함에 떨었고, 아버지의 마음에 그만 울컥하여 떨고 말았다. 그리고 또 하나, 나로서는 이제 겨우 세권의 책을 만났을 뿐인 이 작가의 어마어마한 성장력과 상상력에 치를 떨었다. 7년의 밤이 그렇게 깊어갔다. 내겐 고작 며칠의 밤인 채로.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첫 문장이 가진 엄청난 암시와 함께 이 책은 500 페이지가 넘는 글 속에서 독자를 7년간의 시간 속으로 이끈다. 세령호가 가진 그 엄청난 비밀은 책이 끝날 때까지 쉽사리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짐작은 하지만 물증이 없다면 그것은 증거로 성립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속단할 수 없다. 사건은 조각조각 떨어져 나간 퍼즐 마냥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최서원이 외면하고 싶은 그의 아버지의 모습이 담긴 그 퍼즐은 쉽사리 맞춰지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사건은 그 진실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고개를 내밀었을 때 오싹해 지기 보다는 슬퍼진다. 진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어떤 사건의 시작은 결코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책의 뒤표지에 쓰여 있는 말처럼 언뜻 본다면 이 책은 딸의 복수를 하려는 아버지와 아들을 지키려는 아버지 간의 대결 구도로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섬뜩한 진실들이 숨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라는 책에서 보였듯, 어떤 이는 상대에 대한 단순한 악의 때문에 누군가를 죽이기도 하는 법이다. 오영제의 행위는 단순한 딸의 복수가 아니라 그런 악의의 발생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악의라는 것이 단순히 어떤 개인의 특정한 의식 문제일까에 대해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태어나서 누군가를 단 한 번도 미워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없듯, 그것을 표출하는 정도의 차이일 듯 우리는 모두 악의를 가지고 있다. 오영제의 악의의 표출은 분명 잘못 된 것이지만 그의 과거부터 보게 되면 그를 그렇게 만든 환경의 탓도 분명 존재한다. 그렇기에 그를 그저 미워하는 것이 아닌 불쌍한 사람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가 지나치게 강한 자아를 지니고 있다면 최현수는 그와 너무나도 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어릴 적 트라우마로 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그는 결국 그것 때문에 꿈을 접었고 그것을 극복하려 아들을 지키려 하지만 그런 강한 애착은 결국 잘못 된 선택을 하게 된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가 한 선택에 대한 대가는 잔혹했다. 마치 올드보이의 한 장면처럼 복수는 쉽게 끝나지 않았고 서서히 모두의 숨통을 조여 온다. 작가는 각각의 캐릭터들에게 과거와 그에 따른 독창적인 성격을 부여함으로서 그 속에서 독자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 해 보게끔 이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서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그는 사실 서원을 돌 볼 아무 의무도 없는 사람이다. 그가 끝까지 서원을 책임지려 한 것, 그것은 현수의 부탁 탓도 글을 쓰고 싶은 그의 욕망 탓도 있겠지만 오영제와 반대되는 입장인 단순한 선의의 발생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다양한 성향의 인물들을 짜임새 있게 사건 속에 개입 시켜 놓음으로서 작품을 짜임새 있는 하나의 사건으로 둔갑시킨다. 그것을 일컬어 ‘한국문학의 아마존’이라고 부른 것이라면 그 칭호는 결코 과하지 않다.

 

    소설가 김진규가 그런 말을 했던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소설을 쓰지 못한다고. 정유정 작가의 글을 볼 때면 그렇다. 참 열심히 공부하고 참 치열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그런 노력이 이번 작품에서 타올랐다. 힘든 책임에는 분명하지만 손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그것은 독자의 몫이 아닌 텍스트의 힘이었다. 평범한 듯, 독창적인 군상 속에서 벌어지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야기는 내 머리 속에서 살아나 세령호가 펼쳐졌고, 세령호 속에 묻힌 마을을 보여주었고 등대마을의 한 청년의 싸늘한 뒷모습을 보게 했다. 그 속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강한 의심을 품었고, 그러나 그곳에도 희망은 있다는 것을 아련하게 알게 되었다. 그것을 아는 것은 늘 이렇게 힘이 드는 일인가보다. 그래도 이런 강렬한 텍스트 속에서 힘들어 보는 것은 결코 나쁘지 않다. 오히려 작가의 차기작을 손꼽아 기다리게 하는 즐거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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