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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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는 내내 악몽은 지속되었다. 나는 꿈속에서 최현수가 되었고, 누군가를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죽인 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나의 앞날은 까마득했고, 나는 그런 어둠 속에서 길을 잃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고, 아 꿈이었구나 하는 안도를 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그런 이 책을 놓지도 못했고 매일 밤 전 날의 악몽을 계속해야 했다. 물이 차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책 속 한 글자 한 글자가 나를 엄습해 숨이 막힐 지경인데도 그 장면을 생생히 보아야 했다. 텍스트에 대한 나의 집중력 탓인지, 텍스트의 힘인 탓인지 의문을 갖는 것은 타당치 않았다.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집중력이 유독 약한 내가 이 책이라고 별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그런 독자마저 휘몰아치는 힘, 그건 분명 글이 가지고 있었다. 나는 두려움에 떨었고, 섬뜩함에 떨었고, 아버지의 마음에 그만 울컥하여 떨고 말았다. 그리고 또 하나, 나로서는 이제 겨우 세권의 책을 만났을 뿐인 이 작가의 어마어마한 성장력과 상상력에 치를 떨었다. 7년의 밤이 그렇게 깊어갔다. 내겐 고작 며칠의 밤인 채로.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첫 문장이 가진 엄청난 암시와 함께 이 책은 500 페이지가 넘는 글 속에서 독자를 7년간의 시간 속으로 이끈다. 세령호가 가진 그 엄청난 비밀은 책이 끝날 때까지 쉽사리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짐작은 하지만 물증이 없다면 그것은 증거로 성립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속단할 수 없다. 사건은 조각조각 떨어져 나간 퍼즐 마냥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최서원이 외면하고 싶은 그의 아버지의 모습이 담긴 그 퍼즐은 쉽사리 맞춰지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사건은 그 진실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고개를 내밀었을 때 오싹해 지기 보다는 슬퍼진다. 진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어떤 사건의 시작은 결코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책의 뒤표지에 쓰여 있는 말처럼 언뜻 본다면 이 책은 딸의 복수를 하려는 아버지와 아들을 지키려는 아버지 간의 대결 구도로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섬뜩한 진실들이 숨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라는 책에서 보였듯, 어떤 이는 상대에 대한 단순한 악의 때문에 누군가를 죽이기도 하는 법이다. 오영제의 행위는 단순한 딸의 복수가 아니라 그런 악의의 발생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악의라는 것이 단순히 어떤 개인의 특정한 의식 문제일까에 대해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태어나서 누군가를 단 한 번도 미워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없듯, 그것을 표출하는 정도의 차이일 듯 우리는 모두 악의를 가지고 있다. 오영제의 악의의 표출은 분명 잘못 된 것이지만 그의 과거부터 보게 되면 그를 그렇게 만든 환경의 탓도 분명 존재한다. 그렇기에 그를 그저 미워하는 것이 아닌 불쌍한 사람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가 지나치게 강한 자아를 지니고 있다면 최현수는 그와 너무나도 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어릴 적 트라우마로 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그는 결국 그것 때문에 꿈을 접었고 그것을 극복하려 아들을 지키려 하지만 그런 강한 애착은 결국 잘못 된 선택을 하게 된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가 한 선택에 대한 대가는 잔혹했다. 마치 올드보이의 한 장면처럼 복수는 쉽게 끝나지 않았고 서서히 모두의 숨통을 조여 온다. 작가는 각각의 캐릭터들에게 과거와 그에 따른 독창적인 성격을 부여함으로서 그 속에서 독자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 해 보게끔 이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서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그는 사실 서원을 돌 볼 아무 의무도 없는 사람이다. 그가 끝까지 서원을 책임지려 한 것, 그것은 현수의 부탁 탓도 글을 쓰고 싶은 그의 욕망 탓도 있겠지만 오영제와 반대되는 입장인 단순한 선의의 발생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다양한 성향의 인물들을 짜임새 있게 사건 속에 개입 시켜 놓음으로서 작품을 짜임새 있는 하나의 사건으로 둔갑시킨다. 그것을 일컬어 ‘한국문학의 아마존’이라고 부른 것이라면 그 칭호는 결코 과하지 않다.

 

    소설가 김진규가 그런 말을 했던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소설을 쓰지 못한다고. 정유정 작가의 글을 볼 때면 그렇다. 참 열심히 공부하고 참 치열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그런 노력이 이번 작품에서 타올랐다. 힘든 책임에는 분명하지만 손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그것은 독자의 몫이 아닌 텍스트의 힘이었다. 평범한 듯, 독창적인 군상 속에서 벌어지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야기는 내 머리 속에서 살아나 세령호가 펼쳐졌고, 세령호 속에 묻힌 마을을 보여주었고 등대마을의 한 청년의 싸늘한 뒷모습을 보게 했다. 그 속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강한 의심을 품었고, 그러나 그곳에도 희망은 있다는 것을 아련하게 알게 되었다. 그것을 아는 것은 늘 이렇게 힘이 드는 일인가보다. 그래도 이런 강렬한 텍스트 속에서 힘들어 보는 것은 결코 나쁘지 않다. 오히려 작가의 차기작을 손꼽아 기다리게 하는 즐거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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