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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이면 - 제17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조남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평점 :
문학동네 69호 - 2011. 겨울에 실린 문학동네 소설상 당선작의 제목을 보았다. 「챔피언」이라고 했다. 그 제목이 조금 더 말랑거리는 제목「귀를 기울이면」으로 출간되었다. 책을 읽기 전 당연히 챔피언과 귀를 기울이면 사이의 연관성을 상상하게 되었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이미 알아버린 후였지만, 잠시 머리 속에서 밀어두고 두 제목 사이에 있는 공간에 내 이야기를 넣어보는 것은 재미있었다. 내가 만들어 낸 이야기는 복싱 챔피언 자리를 노리던 소지섭이 경기 중 귀에 부상을 당하는데, 그 후에 세상의 모든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결국 소지섭은 주먹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절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닌-와 상대방의 스탭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소리 등을 들을 수 있게 되어 상대의 공격패턴을 예상하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챔피언이 된다는 코미디같은 이야기였지만, 늘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본다는 것은 두근거리는 일이다. 그 두근거림을 또 한 번 선사해 준, 조남주 작가와 문학동네 편집부의 콤비플레이에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2010년 문학동네 소설상의 수상작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수상작엔 더 없는 관심을 기울였다. 거기다 문학동네 소설상이라 함은 내게 은희경, 천명관, 김언수, 김진규 등의 애정돋는 작가라인을 만들어 주었다. 당연히 새 작가에 대한 기대도 클 수 밖에 없었다. 제목을 따라 독자도 움직이는 듯, 내 귀가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에 기울여졌다. 그리고 두런두런 그들의,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가 들렸다.
부모의 욕심, 산업 체제의 부조리, 자신의 욕심만 중요한 어른 사회의 손놀림 등이 '쓰리컵대회'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포장 되어 지능도 조금 모자라고 가정환경도 조금 모자란 한 아이를 무너트리고 있었다. 내면에 아무도 모르는 작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던 아이는 그 가능성을 자신의 즐거움이 아닌 어른들에 의해 써버리게 되지만 그 역시 외면당하는 순간, 현실은 아이에게 지옥이 된다. 그 과정을 우울하지 않고 재치있게 풀어 낸 이 소설은 지루하지 않았고, 이전의 수상작들이 그랬듯 뛰어난 가독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무언가 모순 된 체제를 보여주려 하는 것 같다는 초반의 기대는 (작가의 이력을 전혀 모를지라도) 후반으로 넘어갈 수록 작가의 이력에 방송일이 포함되어 있을 것 같다는 확신과 함께, 서서히 흔들려간다. 심사평에서도 나왔듯 뒷힘이 부족한 것은 독자에게도 꽤나 맥이 빠지는 일이다. 그러나 신인 작가이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빼 버리고라도 이 작가에게 하게 되는 기대는, 이미 많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우려먹었던 퀴즈쇼, 혹은 배팅 게임, 그리고 좀 모자란 사람의 재능 발견기를 식상하지 않고 다시 새롭게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내겐 작가는 소설 속의 생활을 체험해야 인물과 사건을 생생하게 불러낼 수 있다는 자각을 다시 한 번 하게 해 주었으니, 여러모로 고마운 소설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이어지는 작가 인터뷰와 수상 소감은 뭉클했다. 왜 나는, 결혼해서 애도 낳아보지 않았으면서 이렇게 결혼해 애 낳고 키우는 어려움에 공감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글을 쓰고 싶었다는 그 마음에 울컥한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 한 마디, 사랑한다, 사랑하는 방법이 모두 다른 것 뿐이야. 라는 마음에 책을 읽는 내내 잡고 있던 긴장의 끈을 스르륵 놓아버렸다. 이게, 어쩌면 내가 모든 소설에서 듣고 싶었던, 그리고 요즘 내게 가장 필요했던 말일지도 모른다. 완성도, 몰입도, 즐거움이야 어쨌건 처음부터 끝까지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