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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 당신의 반대편에서 415일
변종모 지음 / 달 / 2012년 2월
평점 :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말은 거짓말'이라는 것과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을 하다'라는 것,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는 이 두 말을 소리 내서 읽어보면 그 미세한 뜻이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출렁, 그 거짓말을 하고 있는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 온다. 달출판사의 에세이들은 늘 제목부터 이런 식이다. 첫 만남에서 인상이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말해주듯 늘 제목으로 나의 마음을 흔들어 버린다. '치유'가 각종 매체들의 키워드로 떠오르기 전부터 이 출판사의 에세이들은 제목 그 자체에 치유의 힘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이젠 달출판사의 에세이를 보는 것은 두렵고 떨리는 일이 되었다. 나의 진실과 마주하는 일이자, 다시 한 번 나의 감수성을 일깨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변종모 작가의 책이다.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라는 조금은 손 발이 오그라드는 제목의 책을 기억한다. 달짝지근한 감성엔 적응이 잘 되지 않는 체질인 터라 밀어내던 책을 우연히 마주했을 때 그 안에서 밀려들었던 감성들도 기억한다. 그러기에 한 번 더 출렁. 스스로에게 물었다. 낯선 땅에 서 있었던 여행자를 질투하는 마음 없이 그의 마음의 흐름에 동행할 수 있겠느냐고. 그렇지 않다면 책을 읽는 내내 떠나지 못하는 내게 우울할 테니까. 지금 내 마음 어디에선가는 누군가를 그리워 하던 마음과 여행하던 발을 몹시도 그리워 하고 있었으니까. 한동안의 감정 싸움이 끝이 나고 책을 폈다. 그리고 알았다. 그런 감정 싸움은 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한 장을 넘기고 한 장을 넘기다 보면 모든 것은 정리가 되어 있을 일이었다.
이 마음을 안다. 나의 기억에도 이 마음이 존재하던 때가 있다. 나와 잠시 이별하기 위한 여행, 나를 잠시 두고 떠나는 여행. 그 여행 길에서 문득 외로워졌고 누군가가 그리워졌었다. 그 때마다 나를 두고 떠나왔지만 여전히 나와 붙어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래서 더 나를 잘 알게 되는, 모순 같지만 모순 일 수 없는 그 때 그 감정들이 저자의 걸음 걸음과 함께 되살아 났다.
작가의 여행의 이유와, 자신의 글을 '반성문'이라 칭한 그 이유를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자주 여행을 다녔으나, 현실에 돌아오면 여행에서 느끼던 행복이 어느샌가 도망가 버린 것 같은 기분, 그런 느낌에 다시 여행을 했을 것이다. 유성용 작가의 책 제목이기도 한 '여행생활자' 혹은 '생활여행자'의 느낌이 이 작가에게서도 난다. 하지만 여행은 돌아올 곳이 있기에 가능한 움직임이다. 어떻게 보면 장소 전환, 기분 전환의 refresh 개념인 것이다. 그러니 다시 돌아온 곳에서는 떠난 곳에서 느꼈던 refresh 되는 느낌은 이내 사라질 수 밖에 없다. 그것을 버티지 못하면 다시 떠나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떠나는 순간, 다시 알게 되는 것이다. 어차피 나는 다시 돌아가야 함을. 그래서 작가는 길 위에서 외로움과 싸우고 문득 떠오르는 얼굴, 시간, 장소에 대한 그리움에서 벗어나려 하며 반성문을 썼을 것이다. 그들과 같이 있는 가치를 몰랐기에, 혹은 이 시간이 끝나면 다시 또 현실에 적응하려 하다 또 떠날 것임을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에.
작가의 소소한 감성들에 동감하며 책 귀퉁이를 접어놓다보면 어느새 책은 두배의 부피로 불어나 있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나서 접힌 흔적을 바라보는 일은 책과 나의 공감의 부피를 보는 것만 같다. 그렇기에 두배의 부피로 불어나 있는 이 책이 참 좋다. 그것이 이 책에 할 수 있는 최대의 찬사이며 최고의 표현이다. 그리고 바라게 된다. 나도 이제 이런 거짓말 없이 살고 싶다고.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이뤄질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여전히 나는 거짓말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