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화살 - 대한민국 사법부를 향해 석궁을 쏘다 우리시대의 논리 12
서형 지음 / 후마니타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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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뱉는 말들이 얼마나 사람을 가볍게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한 쪽 이야기만 듣는 것도 선호하지 않는다. 설사 그들이 약자이거나 피해자라 하더라도, 세상의 모든 일은 쌍방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법부에 대한 끊임없는 의혹과 법조인들의 둔감한 현실감각을 탓하면서도, 석궁 사건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 할 수 없었다. 영화가 나왔을 때도, 시각적 오락성이 현실 판단을 흐리게 할까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알고 싶었고 양 쪽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무엇이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이 사건이 잘못된 것인지. 그러기엔 역시나 책이 좋겠다 싶었다. 김명호 교수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 3자의 시선으로 쓰여진 책이 필요했고 거기엔 영화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 이 책이 적절했다.

     이 책에 대한 사건은 인터넷만 찾아봐도 그 자료가 무궁무진하게 나올테니 각설하고, 이 사건에서 눈여겨 볼 것은 김명호 교수와 그를 대하는 법조인들의 태도이다. 나는 김명호 교수가 잘했고, 그의 행동이 영웅시 되어야 한다는 입장은 아니다. 그가 화살을 쐈건 안 쐈건 그것은 중요하다고 보지 않는다. 물론 그것이 이 사건의 판결을 달리 할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되긴 하지만 일단은 그의 극단적인 행위는 문제가 아주 없다고 볼 수는 없다. 나는 현실감각이 부족한 판사들만큼이나 김교수 역시 현실감각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억울함을 조금 다르게 풀어나갈 수 있었다. 무작정 자신의 올곧음만 주장하며 타인의 비도덕함을 탓하는 것은 어떤 입장의 누구든 잘못이다. 즉, 나는 그 사건을 담당했던 판사나 검사들에게도 저마다의 입장이라는 것은 존재함을 인정 한다. 김교수는 누군가 옷을 벗을 각오를 하고 정의를 위해 싸워주길 바랐겠지만, 어떤 사람에게 정의가 어떤 사람은 직업윤리와 더불어 자신의 생활터전과 연관이 있기도 한 법이다. 그럼 문제는 그런 현실을 알면서도 우리가 왜 그 사건과 관련있는 판사나 검사들을 비판하느냐로 옮겨간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프라이드가 담겨있는 세계가 공격을 당했을테고, 그런 상황에서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옛말은 진리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핵심을 파고들자면 그것은 자신들의 프라이드이기 이전에 한 개인과 집단의 싸움이었다. 가장 처음의 싸움에서 그들은 강자의 편을 들었고, 아니 누가 누구의 편을 들었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정황상 김명호 교수에게 불리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적어도 그들은 김명호 교수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대 줄 수 있는 판사와 검사에게 사건의 최종해결을 맡겼어야 했지만 그랬지 못했고, 그 과정에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옛말은 떠올랐다. 즉, 가장 본질적인 문제로 가자면 그들의 프라이드 문제나 그들의 생활터전의 문제가 아니라 한 약자의 생활문제와 직면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린 김명호 교수가 잘한 행동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그의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김교수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은 머리와 마음으로 이해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은 머리로는 이해하되 마음으론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저자는, 김명호와 법조인들의 이야기를 들음과 동시에 마이크를 일인시위하는 그들의 억울함에까지 들이댄다. 그러면 우리는 알게 된다. 소수의 억울함은 도저히 말할 곳이 없다는 것을. 이 세상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면 속이라도 시원해지는 장소도 주지 않고, 신문고를 죽으라 두드리면 왕이 들어줄 수도 있다는 아주 작은 희망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저, 힘없고 빽없는 자들은 자신의 무능을 탓해야 하는 아주 어지러운 상황만 제공할 뿐이다. 그렇기에 법조인들이 자신들은 결백하고 자신들은 나날이 발전하는데 국민들이 자신들을 믿지 않는다는 한탄에 코웃음이 나올 뿐인 것이다. 큰 사건을 보기 좋게 처리한다고 해서 소수의 억울함은 풀리지 않는다. 적어도 화장실 개선 공사나 있으신 분들의 봉사활동으로 포장하지 말고 소수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이려는 아주 작은 노력이라도 했다면 그들의 신뢰도는 더 높아졌을 수도 있다. 이 사건은 그래서 단지 김명호 교수 한 사람의 투쟁이 아니라 모두가 잘 살아보자는 모두의 투쟁이 되버린 것이다. 이 점들을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주는 인터뷰어로서의 저자의 능력은 충분했다. 아주 잘 이 책을 걸러 읽어간다면 이 사건, 그리고 이 사건 이전의, 그리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소수의 짓밟힘을 볼 수 있다. 단, 걱정되는 점은 김명호 교수를 영웅화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그의 행위의 이유는 정당하지만 그 수단은 정당하다거나 타당하지 못했다. 그것은 부서진 화살의 행방, 혹은 실제 유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며 살아가는데 필요한 아주 작은 유연함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부서진 화살은 실제의 화살이 아니라 사회의 거대한 보이지 않는 힘에 부딪혀 부서지고 있는 김교수의 독고다이 정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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