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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양장) - 세상의 모든 인생을 위한 고전 ㅣ 글항아리 동양고전 시리즈 4
공자 지음, 김원중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2012년이 10일 정도 앞으로 다가왔을 무렵, 나는 장대한 독서 계획을 세우고 시카고대학교, 서울대학교, 고려대학교, 연세대학교, 미국대학위원회, 뉴욕타임스, 랜덤하우스 등의 추천도서 명단을 쭉 늘어놓고 그 중 세 번 이상 추천 된 도서 100권을 뽑아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에 <3년 독서 플랜>이라는 이름을 붙였더랬다. 그러니까 3년은 36개월. 5권에서 10권 분량의 시리즈 물이 있는 걸 감안해도 1달에 5권 정도만 읽으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목표였다. 애초에 정독하는 버릇이 들지 못해서 책을 금방 읽는 편이라는 걸 생각하면 가능할 듯 했다. 1년 여간 사지 않던 책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리스트에 맞춰 쭉쭉 주문해 나갔고, 주문한 만큼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플랜이 발효된지 3달 하고도 6일이 지났다. 꼭 실천하고 말겠다고 엑셀을 이용해 그럴 듯한 표도 만들어 놨지만, 그 중에서 내가 읽은 책은 1권. 시리즈를 빼고 1달에 3권만 읽어도 된다고 해도 1/9밖에 달성하지 못한 셈이다. 뭐 물론 계획이란 깨지라고 있는 것이며 각오란 금새 포기해 버리라고 하는 것이라는 씁쓸한 변명을 한다쳐도 작심 세권은 커녕 작심 한권 밖에 못한 이 유약한 정신력은 알아줄만 하다. 그러던 차에 '논어'를 읽었다. 그러니 이제 4월달까지 해서 1/6을 달성한 셈이다. 이 엄청난 달성률에 박수를, 보내기엔 너무나 한심하지만 그래도 시작은 반이라는 씁쓸한 자기 위안은 계속된다.
사실 고전이라는 게 너무 유명한 나머지 수많은 출판사의 수많은 번역본을 발생시킨다. 그러면 독자는 멈칫,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까마득 해 질 수 밖에 없다. 이럴 경우 얕은 지식의 독자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번역자의 이름과 출판사의 네임 밸류에 의지하는 수 밖에 없다. 그럼에 그 두박자를 딱딱 맞춘 글항아리의 「논어」는 최선책이 될 수 있다. 출판사 이름을 잘 모른다 해도 김원중이라는 세 글자가 가진 힘은 무시하기 쉽지 않다. 거기다 몇 년 전 세계 최초로 완역을 해 낸 사마천의 「사기」가 그 외향만으로도 어마어마한 포스를 풍겼음을 알고있다면 (박스에 들어있는 그 책들의 위용한 풍채를 본 순간, 이 책을 이렇게 포장해 놓는 건 사기지! 라고 소리칠 뻔 했다. 언젠간 읽겠지,라며 책장에 전시용으로 고이고이 보관해 놀 것이 너무 뻔했지만 4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그 책에 대한 구매욕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더 무시하기 힘들 번역자의 이름이다.
「논어」의 내용은 저자의 이름과 제목에 모든 것이 있다. 공자가 죽은 후 제자들이 모여 그가 한 말들을 모아 놓고 논의하여 만든 책, 즉 어록집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전이라는 것이 주는 딱딱한 이미지를 예상하고 심호흡을 하고 시작했다면, 그 심호흡이 무색해질만큼 어렵지 않은 책이기도 하다. 그가 한 짧지만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말들이 하나하나 모여있기 때문에, 역자가 역자의 말에서 밝힌 대로 그 어디를 펴서 읽어도 무방하다. 그렇기에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엔 매일 아침에 그 날 운에 맞춰 임의로 한 페이지를 펼쳐서 '오늘의 격언'으로 하루에 하나씩 새겨도 좋을 일이다. 크게 보면 학문, 덕행, 충의, 신의로 나뉠 수 있는 이 이야기들 속에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하지만 공자의 말인지 몰랐던- 유명한 말도 많이 있고 사자성어의 근원이 된 이야기도 많다. 이렇게 오래 된 이야기인만큼 현실에 걸맞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있을테고, 이젠 너무 식상한 이야기라는 평가도 있을 수 있지만, 알고 있어도 실천하지 못함에 이 이야기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온다. 거기다 김원중 교수는 해석의 폭을 제한하지 않는다. 이런 해석도 있고, 이런 해석도 있지만 이런 이유로 이런 해석을 가져온다고 그는 독자에게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럼에 그 글을 읽는 독자가 그의 해석에 동의할 수 없다면 다른 해석을 참고 해서 자신만의 이야기로, 자신만의 명언으로 바꾸어 봐도 좋다.
왜 고전인가, 하는 물음은 결국 이 책 한 권으로 설명되고야 만다. 시대가 아무리 지나도 인류 보편적인 가르침을 제시할 수 있기에 고전인 것이다. 물론 공자의 지나친 고집스러움이 드러나는 대목도 보이긴 하지만, 그럼에 그가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음을, 그래도 스스로 깨우치고 정진하려 애썼으며 그 결과물을 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가 봐야 함을 말해준다. 그렇기에 이 책이 갖는 가치가 더욱 높아지는 것이다. 고전 읽기의 바람이 불고 있고, 논어를 읽어야 함은 계속 주장 되고 있다. 그 이름이 주는 거대한 벽 같은 느낌에 지레 겁을 먹었다면, 일단 이 책의 아무 곳이나 편 후 한 대목을 읽어 본 후 도전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어떨까? 그런다면 조금의 망설임 없이 즐겁게 고전을 시작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