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상페
장 자크 상뻬 지음, 허지은 옮김 / 미메시스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론적인 지식은 하나도 없이, 그냥 그림보는 행위 자체를 좋아한다. 그림과 마주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갑자기 그 그림과 이야기를 하게 되거나, 내가 메리포핀스처럼 그 그림 속에 들어가게 되는 일이 발생하는데 그런 순간적 동화 때문에 그림을 보는 일을 놓을 수가 없다. 그 그림은 유화, 수채화 등에 국한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순간이 발생시켰다는 그 우연같은 느낌 때문에 드로잉을 좋아하는 편이고, 그림 속에서 유머와 작가의 심리를 엿볼 수 있다는 의미로 그래피티나 풍자 만화도 좋아한다. 장 미쉘 바스키아의 그림에서 보여지는 독특한 우울과 뱅크시의 그래피티에서 보여지는 도발적 예술성도 좋고, 툴루즈 로트렉의 광고 그림에서 나타나는 그 시대의 분위기도 좋다. 그런 비슷한 이유로 장 자크 상뻬의 단순한 따뜻함을 사랑한다. 상뻬의 그림은 단순해 보이지만 따뜻하고, 특히 그의 글들과 함께 보게 되면 그 감성은 배가 되었었다. 「속 깊은 이성친구」나 「얼굴 빨개지는 아이」는 특히 좋아하는 책이고, 쥐스킨트의 글에 그가 그림을 그린 「좀머씨 이야기」나 명작 반열에 올라도 좋다 싶은 「꼬마 니꼴라」시리즈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그런 상뻬의 그림만을, 그리고 겻들여 그의 이야기들을 감상할 수 있는 이 책이 반갑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서 찾아볼 수도 없었다.

그동안 상뻬를 좋아했다면, 이 책을 통해 그의 프로다운 모습에 더욱 감탄하고 이젠 그를 존경해 마지 않을 것이다. 1978년 이래로 미국의 <뉴요커>의 표지를 그려온 상뻬는 <뉴요커>를 동경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그 곳에서 일을 하게 될 거라는 생각도 못했다. 그것은 자신에게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꿈을 확신시켜주기도 한 그 곳에 대한 벅찬 감정 탓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사람들이 뉴요커에 그림을 보내보라는 말을 했을 때도 항상 그쪽에서 먼저 연락을 할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것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부심 탓이 아니라 거절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는 뉴요커 본사 앞에 서서 그 홀에 들어갈 용기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꿈에 대한 열정은 결국 기회를 주는 법인지 그는 뉴요커 사장의 편지를 받았고 그림을 보냈고 첫 번째 표지가 실린 이후 꾸준히 뉴요커 표지를 그리게 된다. 상뻬는 자신의 그림에 대한 수정 요청을 너무나 당연히 너그러이 받아들이고 들였다. 그는 뉴요커 사장만큼 최고의 잡지를 만들기를 원하는 사람도 없을 거라고 인정하고, 몇 번이고 수정을 한다. 그리고 뉴요커 사장은 상뻬에게 뉴요커 생각은 접고 당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라고 요청한다. 이것이 바로 함께 일하는 동반자의 신뢰 관계에서 비롯되는 최고의 동업이 아닐까.

자신이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 주는 사치품을 만드는 풍자화가라고 말하는 상뻬의 인터뷰는 그가 왜 이 자리에서 이만큼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해 주는지 충분히 알게끔 한다. 최고의 자리에 있지만 그럼에도 자만하지 않는 것. 자신의 역할이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 주는 것이니만큼, 그것에 더 충실하려고 하는 것. 뉴요커 본사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자신은 이 곳에 일을 하러 왔다는 생각을 하며 밤 작업을 해도 되겠냐는 그의 말은 자신의 직업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장인'이라고 해도 좋을만큼의 치열한 집중력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여전히 우리는 상뻬의 그림을 볼 수 있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떤 사람은 그의 성공에 '운'도 포함되어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운' 역시 상뻬에게서는 그가 만들어 낸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더 많은 그의 그림을 보며 따뜻해질 수 있기를, 그리고 벚꽃이 좀 더 많이 피면 이 책을 들고 야외로 나가보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된다. 그의 그림을 보며 만나는 내 세상은 좀 더 다른 모습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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