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일어서다 - 21세기 한국과 불교의 커뮤니케이션
손석춘 지음 / 들녘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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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가는 불교, 외가는 천주교이다 보니 양 쪽 종교를 골고루 접하며 자랐다. 다행히도 친가, 외가 모두 타 종교에 대한 배타심이 전혀 없었던지라 나에게 어떤 종교도 강요하지 않았고 스스로 선택하기를 권장하셨다. 나이가 먹어서 난 천주교 신자가 되었지만, 철학으로서 한 학문으로서의 불교에 대한 경외심은 늘 가지고 있다. 천주교 신자이면서도 불교 소설을 쓴 최인호 작가의 <길 없는 길>을 보며, 불교가 종교를 넘어서 인간 본연의 도리를 가르친다는 생각은 강해졌었다. 천주교 신자가 된 후에도 절에 가는 일은 멈출 수 없었다. 절에 간다는 것은 종교적인 예의를 갖추기 보다 마음의 평화를 찾는 일이었다. 조용한 산 속의 절에 가서 스님들의 목탁 소리를 듣고 처마에 걸린 종이 바람에 흔들릴 때면, 세상에서 얻은 근심들이 사라지는 듯 했다. 이렇게 불교란 내게 종교 이전에 하나의 가르침이었다. 그래서 불교를 둘러싼 비리나 잡음들이 들려올 때면 괜히 내 마음이 심난했다. 하지만 늘 그것들은 사람들에 의해 왜곡되고 몇몇 잘못 된 사람들에 의해 변색된 것일 뿐이었다. 진정한 철학으로서의 불교, 그것은 늘 우리에게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가르친다는 점은 의심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나의 의심이 틀리지 않았음은 드러난다.

3개의 장을 통해 불교에서 중요시하게 여기는 3개의 화두를 던지는 이 책은 그 화두 속에서 오늘날의 우리를 바라보게끔 한다. 즉 이 책은 단지 불교를 종교로서 믿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모두가 읽어봄직 하다. 살불살조殺佛殺祖, 회두토면灰頭土面, 입전수수入廛垂手가 바로 그 화두 들이다. 임제록에 수록 된 '살불살조殺佛殺祖'라는 말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뜻이다. 자신이 믿는 신을 죽이라고 하는 이 종교가 어떻게 보면 이해되지 않겠지만, 이것은 무소유와 일통한다. 자신의 마음이 비어있으면 부처나 조사 그 어떤 관념에도 집착하지 않을 수 있고, 세상이 정해 놓은 관념에서 벗어날 때 진정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즉, 신을 죽이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해 놓은 관념을 버림으로써 나 스스로가 부처의 가르침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니, 여러 관념들 속에서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람들이나 세상을 어지럽게 바라보는 현대의 모두에게 꼭 필요한 화두임에 틀림없다. 회두토면灰頭土面은 겉으로만 꾸며 체면을 유지하는 데 급급한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후에는 더러운 세상이라도 이 세상 속에서 사람들에게 그 깨달음을 전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말인데, 이는 불교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산 속에서 도를 닦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음을 말해준다. 우리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에 대한 답, 그 모든 것이 불교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니 이것은 내가 그동안 생각해 온 불교가 가진 인류 보편적 가치에 대한 철학과도 일맥상통한 것이었다. 이 가르침은 마지막 장에서 나오는 입전수수入廛垂手와도 뜻을 함께 하는데, 입전수수란 선종의 최고 이상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것은 선을 닦고 본성을 찾아 헤메다가 깨닫게 되는 최고의 경지가 중생의 제도라는 것을 나타낸다. 즉, 불교의 가르침을 잘 받았다면 결국 세상의 제도 속에 들어가 그것들의 문제를 마주하는 데에 큰 뜻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천주교 신자가 된 후에, 아버지는 약간의 아쉬움을 표하시면서도 그런 말씀을 하셨더랬다. '너의 종교는 아무래도 좋다. 단, 무엇을 믿음에 신중하고 무엇을 믿더라도 보편적인 가치를 전해주는 가르침은 놓지 말아라.' 그 말의 뜻도 잘 모르고 귀찮은 마음에 대충 고개만 주억거린 나는 이 책을 통해 아버지의 말씀을 찾았다. 아버지는 내가 종교로서가 아닌 철학으로서 불교를 존중함을 알고 계셨고, 그러니 한가지 종교에 치우치지 말고 여러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길 강조하셨던 것이었다. 그것이 이 책의 세가지 화두에서 드러났고 그럼에 이 책이 더 고마웠다. 이 책은 21세기 대한민국이 어느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난 그에 앞서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스스로의 문답에도 익숙치 않은 나는 아직 가엾은 중생일 뿐이었다. 부처처럼 큰 사람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부처의 가르침은 받아들이고 싶다던 나는 30년 째 제자리 걸음이었다. 그런 내가 대한민국을 논하기엔 버거웠지만, 이 책을 통해 딱 두 가지는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세상에 똑바로 눈을 뜨고 문제를 직시하고 나 하나부터 올곶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말씀에 대한 해석이었다. 그리고 그 대답은 말로 표현하는 대신 이 책을 전해드리는 일로 하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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