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얘기를 하려면 먼저 아련양 종교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원래 아련양은 카톨릭 모태 신앙이었지요.

유치원도 성당 부속 유치원을 나왔고 일요일이면 성당에 꼬박꼬박 가고 여름방학엔 여름성경학교가 너무나 신이 났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버지가 견진성사를 절대 받아주지 않아서 '조당'이라는 카톨릭의 형식에 묶이어 영성체도 모시지 못하고 여러가지 제약에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

많은 방황을 하시던 어머니..

결국은 사군자四君子를 어느 스님에게 배우시다가 불교에 매료되어 개종을 하셨더랬습니다.

그 후에 아련양은 자칭 카톨릭 신자라고 하지만 불교에도 호의적인,108배로 참선도 하는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 되었습니다.(그게 불만이라는 것은 아니고요..)

 

그래서 그럴까요?

독실한 카톨릭 신자 집안에 태어난 '폴 뮌젠'이라는 사람이 현각 스님이 되는 이야기는 참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현각 스님이 스님이 되어서 참선을 열심히 하면 할 수록 자신은 개종을 한 것이 아니라 참선을 통해 예수님의 말씀에 더 다가가는 것 같다는 말..

몇년째 예비신자 과정에 이름만 올려 놓고 있지만 절의 향내에도 편안함을 느끼는 아련양의 맘과 비슷한 것 같았습니다.

 

또 다른 이 책에 얽힌 아련양의 일화..

몇년전 빌려 읽으면서 '언젠간 사서 또 읽어야지'했었는데 절판 된 사실을 얼마전에 알았습니다.

헌책방을 샅샅이 뒤져 2권 4,000원에 책을 받아 들고는 과장 하나 안 붙이고 책방 사장님한테 '고맙습니다' 90도 각도 인사를 3번이나 했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결국 믿는 수 밖에 없다.

 

아직 진리를 찾지 못했기에 자유를 얻지는 못했지만

진짜 "결국 믿는 수 밖에" 없다는

같은 결론에 도달한

조금은 혼란스러운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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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천국 이청준 문학전집 장편소설 4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슬픈 소록도

 

그들의 섬은 분명 낙토일것이나

그들의 낙토가 아닌

외부인들의 것

그래서 우리들의 천국이 아니라

당신들의 천국일 수 밖에 없다고..

 

슬픈 사람들..

당신들의 천국을 위해도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에

서로 배신 당하던 사람들..

 

결론이 어찌 되었던

내 맘에 슬픈 사람들이란 단어만 잔뜩 찍어놨던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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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 - 퓨전 도덕경
카지마 쇼조 지음, 황소연 옮김 / 운디네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철학과를 나온 아련양

2학년 전공 필수로 도가 철학 시간에 노자의 <도덕경>을 배웠더랬지요

그 때는 한자로 된 글을 하나하나 해석해가며 머리 지끈거리며 배웠는데 그러면서도 너무나 "아름다운 글"이다라며 감동 받았었더랍니다.

그래서 한동안 길거리에서 "도를 아세요"라며 미나리처럼 다니는 도처녀들을 만나면 '이런 아름다운 학문을 더럽히다니..'라면 불결한 눈으로 보기도 하였답니다.

 

몇년이 흘러 우연히 알게된  퓨전 도덕경 - 타오

영문과를 나온 일본교수가 시처럼 번역한 <도덕경>

떨어지는 한문 실력으로 떠듬떠듬 배울 때도 참 아름다운 글이다라고 생각하였는데

시처럼 번역한 도덕경은 더 아름다웠답니다.

(영어 실력이 된다면 영문판도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생각도 들더군요)

 

'나'를 죽이는 것이

 영원히

 '나'를 살리는 길이랍니다.

 라고 가르치는 노자..

 

2,500년전 노자 선생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일까 끊임없이 감동받으며 읽었던 책

 

타오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조금 아는 걸 많이 안다고 떠벌리지 않아요.

그저 세상의 중심에 있는 자연에

몸을 맡기고

그것과 하나 될 따름이지요.

모든 것은 태어나서

수백 번,수만 번

바뀌고  또 바뀌며 움직이지요.

 

이런 타오의 참모습을 받아들이세요.

그러면 당신은

남에게 아무리 많이 주어도

주었다고 하지 않을 겁니다.

성공해도

그 성공을 자신의 것인 양 떠벌리지 않을 겁니다.

떠벌리지 않으니 남들이 시기하짇 않을 겁니다.

시기하지 않으니

아무도

당신의 성공을 빼앗으려 하지 않을 겁니다.

 

오늘도 많은 반성을 해 봅니다.

나의 얄팍한 자신감으로

얇은 지식을 뽑내기 위해

새치 혀로 남에게 상처는 주지 않았을까....

앞으로 더 많은 날들을 살텐데

더 낮은 자세로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고 보니

노자의 생각과 천주교의 "낮은 데로.." "내 탓이오" 운동과 비슷한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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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만나러 길을 나서다
조병준 지음 / 예담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핸드폰으로 문자를 찍다가

가끔 '사람'을 '사랑'으로 찍기도 하고

'사랑'을 '사람'으로 찍기도 한다.

그럴때마다 생각한다.

결국 '사람'이나 '사랑'이나

내가 갈구하고 그리워하는 존재인건 똑같다고..

 

사랑을 만나러 길을 나선다.

그리고 사람을 만난다.

 

사람을 만나러 길을 나선다.

그리고 사랑을 만난다.

 

길을 나서면 기껏해야 풍경이나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이렇게 내 눈시울이,온 가슴이 시려올 정도로 아름다운 영혼들을 만나고 다니는 시인...

그렇기에 시인이겠지

 

거창한 여행은 아니지만

가끔 혼자 떠돌아 다니는 나에게 또다른 용기를 그리고 설레임을 준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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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의 죽음>은 작가 이재웅과 나의 첫 만남이다. 이전에 나는 이재웅이란 작가를 전혀 몰랐다.신문에 실리는 신간 소개는 꼬박꼬박 읽지만 그 중에 직접 책읽기로 이어지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이고,베스트셀러가 되지 않는 이상 한주에 한 번 신간 소개 코너에 소개되어지는 책들은 그렇게 내 기억 속에서 당연한 듯 잊혀져 가는게 정상적인 수순이었다.

노동운동가 출신의 어느 활동가의 사무실에 갔다가 원산폭격을 목격했다는 구절이 있는 신간소개 글이 뇌리에서 자꾸 떠나지 않았고,언젠가 읽어야지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기를 수어달...<럭키의 죽음>은 위의 망각의 수순을 밟아가는 것을 거부했고 우연한 기회에 내 책읽기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놓게 되었다.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던 그 원산폭격은 이 단편집 중 <인터뷰>에서 나온다.

<인터뷰>를 읽으면서 떠오르는 단상 하나...
1990년대 중후반 학생 운동이란게 길을 잃기 시작하던 시절
지방의 한 이름없는 여대의 여대생들이 지방법원에 데모를 하러 간다.게중 몇은 잡힌다.하루밤의 구류 끝에 풀려나는 여대생들.또 게중 몇몇 눈에 띄는 외모의 학생들은 전경(?)들과 삐삐 번호를 주고 받으며 히히덕거린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녀들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나는 치열하게 살았노라고 무용담을 얘기한다.물론 그 무용담 중에 전경들과 주고 받던 삐삐 번호 얘기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또 다른 단상 하나
IMF가 터진지 얼마 안된 대한민국의 지방의 이름없는 여대의 한 학과 학생회실
학생회 간부 몇몇이 몇달 전만 하더라도 유행의 최첨단을 얘기해 주던 '이스트팩 가방'을 창피하게 바라본다.영어 브랜드네임 부분에 태극기를 붙여야겠느니,얼마전 개봉한 '타이타닉호'를 보자니 애국심이 울고 애국심에 안 보려니 보고 싶은 맘이 자꾸 이기려 든다는 수다를 떤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녀들 중 몇몇은 열렬한 명품족이 되어 있다.

<인터뷰>를 읽으며 나는 내 얘기를,나의 친구 얘기를 읽어내리는 것 같아 내심 맘이 불편했다.
나는 <인터뷰>가 그러했지만 어떤 이는 <젊은 자식들이 아버지를 어떻게 망쳐 놓는가?>에서 찜찜한 불편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이는 <택배>를 읽고 난 후 집으로 오는 택배 앞에서 이유 없이 움찔 할 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재웅씨는 각각의 단편마다 소설 속 주인공들뿐만 아니라 우리들 모두를 발가벗기어 놓고는 발가벗기워진 우리의 모습을 거울로 비춰 바라보게 한다.벌거벗은 내 모습은 온갖 치부가 고스란히 다 보여서 좀 창피하다.그러나 조금만 지나면 곧 거울 속 내 모습에 익숙해 진다.그렇게 놓고 생각해 보면 <위안>에서의 용석은 지금은 "돌아왔어,씨발 돌아왔어."라고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흘리지만 다시 변두리 유곽을 돌면서도 진정한 사랑과 위안을 찾겠지? 그런 돌고 돌음이 우리들의 일반적인 삶의 모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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