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5월 6일에 리뷰 코너에 썼던 글인데 지금 보니 이 곳에 있는 게 맞을 듯 해서 옮겨왔다)
학부 때 들었던 교양과목 가운데 지금까지 기억나는 두 과목이 있다. 하나는 불어였고 다른 하나는 '문학의 이해 (채호석 교수님)'다. 98년 봄, 금요일 3시간 수업을 위해 우리학교에 출강 오신 채호석 교수님을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박사과정 학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동안이셨다. 당시에는 시간강사셨는데 그 때도 시간강사의 처우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가끔 등장했고 그래서 학기 중간중간 그 문제에 대해서 몇 번 언급하셨었다. 봉급의 현실화라든가 학교 당국의 인식 변화, 시간강사들의 노조 결성 등에 대한 얘기가 기억난다.

지난주에 갑자기 교수님 생각이 나서 인터넷 검색엔진에서 '채호석'으로 검색해 봤더니 어렵지 않게 지금 한국외대 한국어교육과에 계신 걸 알게 되었다. '자리 잡으셨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에 외대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는데 사진을 본 순간 그 때와 달리 말 그대로 '교수님'처럼 찍은 사진에 약간 당황했다.
하지만 그 때 모습이 남아있었기에 곧 알아볼 수 있었고 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더니 교수님도 곧 답장을 주셨다.
"아!그래요, 맞습니다. 카이스트에서 현대 소설 강의를 했었죠. 제 생각에 상당히 빡빡하게 진행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거의 매주 작품을 읽어야 했죠? 카이스트에서 했던 소설 강의는 정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열의를 가지고 참여를 했었죠. 사실 힘든 과정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전공과정 학생들보다 더 나은 점이 있었습니다. 아마 얘기 안 했었죠? 전공 학생들은 '정답'을 찾으려 하죠. '전공'이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카이스트에서는 그렇지 않았죠. 궁동에서 술 마신 것도 기억 납니다. 조그만 카페였다고 기억되는데... 맞는지^^ 의자가 조금 높았던 것도 같고... 에구, 기억력이 형편 없군요ㅡ.ㅡ;; "
우와~ 이 양반 기억력 대단하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종강 후에 궁동에서 술 사주신 일이 있는데 그 집 의자가 어땠는지까지도 다 기억하시고. (내 기억엔 TGV인 줄 알았는데 거기가 아닌가보다.)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책 많이 안 읽기는 마찬가지여서 솔직히 그 전까지 한국 현대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들로 누구누구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그 때까지 읽은 건 소설 동의보감이나 양귀자씨의 '천년의 사랑' 정도가 고작이었다 --;) 그런데 그 때 소설읽기의 맛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윤대녕 (은어낚시통신), 성석제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등과 같은 작품을 읽으며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들은 되새김질 하면서 행간을 읽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또 한 작품에 대해 두 사람이 자신의 관점에서 발표를 하면 다른 학생들이 이에 대해 토론을 했는데 나름대로 꽤 적극적으로 참여했었다. 잠시 자신감을 잃고 지내던 때였는데 그 수업을 통해 극복했다고나 할까.
"정말 바쁘겠네요. 그래도 가끔은 하늘 한 번씩은 쳐다보세요. 여유는 시간에서 오지 않고 마음에서 오더군요."
멋진 말씀이다.
고마운 분과 인연의 끈을 다시 잇는다는 건 항상 기분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