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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좀머씨 이야기로 유명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 모음집이다. 전체가 80페이지로 얇은 책이고 그 안에 있는 '깊이에의 강요'는 17페이지 정도 된다.
전도 유망한 젊은 소묘 작가가 전시회를 열었는데 어느 평론가가 신문에 평하기를 '그녀의 작품들은 첫눈에 많은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것들은 애석하게도 깊이가 없다.' 라고 했다. 그 이후부터 그녀는 '도대체 깊이가 무엇인가', '어떤 작품들이 깊이가 있는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는데 이게 너무 심각해지는 바람에 결국 '그래 맞아, 나는 깊이가 없어!' 하는 자포자기로 이어진다. 이후 얘기는 생략... (스포일러이므로... ^^;)
정말이지 오늘은 실험 하나도 안하고(!) 데이터 정리 하면서 figure 만드느라 하루 내내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이 책이 생각난 건 오늘 하루 내 모습이 소설 속 주인공의 처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실험을 해야 심사위원들을 만족시켜서 '그래 너 졸업해도 돼'라는 말이 나오게 할 것이며, 어느 정도 quality의 뉴런 사진을 찍어야 리뷰어들이 저널에 실어 주는 걸 허락하겠는가. 요즘 나오는 페이퍼들을 보면 저널의 수준은 갈수록 높아지고 점점 더 그들이 강요하는 '깊이'는 깊어진다.
비는 오는데 일은 하기 싫다는 것을 이리저리 핑계댈 것을 찾다보니 이 책이 생각났다. '그래. 난 깊이에의 강요를 받고 있어...' 근데 그러고 보니 이 책, 친구에게 빌린 지 오래 됐는데 아직 안 가져다 준게 생각났다. 오늘은 꼭 갖다줘야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