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교수님으로부터 연구실 사람들에게 메일이 왔다. 공지사항을 알리거나 최신의 중요 논문을 포워드 하실 때 가끔 이렇게 전체 메일을 보내시곤 하는데 오늘은 신문 기사 하나를 보내 오셨다. 기분 좋은 기사라고 말씀하시면서. 내용은 많이들 알다시피 진주에 있는 경상대학교에서 세계적 권위의 학술지 '셀(Cell)'에 논문을 게재했다는 것. 한국에서는 네번째로 셀에 논문이 발표되었다는 것과 그것이 흔히들 말하는 수도권 일류대학이 아니라 '지방 국립대'에서 나왔다는 게 뉴스 기사로서의 가치가 높다고들 생각했나보다. 그래서 기사 제목도 이 글의 제목처럼 뽑았고 기사 중간에도 '경상도 시골 처녀'가 일을 냈다고 말한다.

 

 (이 녀석이 바로 '셀'이라는 저널이다. 만화 <드래곤 볼>에서 지구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그 셀이라는 놈과는 상관이 없다)

 

이렇게 좋은 저널에 논문을 발표하는 것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을 빛내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런 기사들이 날 때마다 언론이 관심을 보여서 기분 좋고, 한국의 연구 여건이 많이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 좋고, 나도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지만 기사의 뉘앙스는 왜 꼭 '개천에서 용났다'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걸까. 이 논문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나왔다면, 흔히들 말하는 일류대학에서 나왔다면 이러저러한 수식어 없이 좋은 논문을 냈다고 말할텐데. 굳이 '지방 대학'의 '시골 출신 처녀'가 일을 냈다고 할 필요도 없는데 말이다. 아무리 신문에서 지방 국립대가 일을 냈다고 말을 해도 그 대학에 우리 아이를 보내야지 하고 생각을 바꾸는 부모는 이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를 무시하는 말이 아니다. 소위 일류 학벌을 지향하는 이 사회의 세태에 대해서 하는 얘기다. 사회적 정서와 인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한, 이런 류의 기사는 앞으로도 반복해서 보게 될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느끼기에 한국의 연구 여건은 갈수록 상향 평준화를 이루어 가고 있는데, 미국에 있는 다른 여러 대학들이 하버드보다 연구를 못 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이제 어디에서 논문을 발표했다는 게 아니라 논문을 발표했다는 그 사실 자체로 기뻐하고 축하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거야 뭐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치고, 논문을 내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고 고민했을 내 또래의 그 연구원과 동료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논문에 실린 데이터들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실험의 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동종업계종사자로서 잘 알고 있다. 우리가 말하는 '꽝!'이 난 결과들 때문에 고민한 날들도 많았을 것이고 좋은 결과를 얻어 기분 좋은 날도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내 연구 목표는 '즐기면서 하기'이다. 물론 경쟁에 의한 압박도 있을 것이고 예상한 대로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힘들어 하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즐겁게 해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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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털이 2004-05-28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왜 유명한 저널들은 다들 이름이 단순할까? 세포(Cell), 자연(Nature), 과학(Science), 신경세포(Neuron), 면역(Immunity) 등등등...

sweetmagic 2004-05-29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쉬.....연구생 이셨군요......저흰 그런 유명한 저널도 없어요. 있으면 그걸 목표라도 열심히 해볼텐데... 흑

머털이 2004-05-29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분야의 동료 연구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공헌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좋은 연구이겠지요. 힘내시기 바랍니다. ^^

sweetmagic 2004-05-29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너무 부끄럽군요.....
전 연구자로서 소양부족인가 봅니다. 님 말씀 깊히 새기겠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