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 방송도 국가기관의 민간사찰 문제로 여지없이 이슈로 떠올랐던 <PD수첩>. 뒤늦게서야 보고 나서는 6월 22일 20주년 특집방송까지 봤다.  

토크콘서트라고 해서 PD들이 노래라도 한 곡 부르려나 완전 기대했었는데 그냥 가수들 음악 따로 패널들 얘기 따로... 그저 그런 특집이었다. 편집도 튀어서 산만하고... 방송예고글 봤을 땐 뭔가 굉장히 흥미로울 것 같았는데, 패널들의 얘기는 너무 짧아서 황당했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가수들의 무대가 길게 느껴지면서 괜한 거부감마저 들었다.; 싫고 좋고 할 가수들도 아니고, 아니 오히려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는데도. (인공위성, 바비킴, 김창완밴드, 이상은, 노영심이 나왔다)

<PD수첩 20주년 특집 토크콘서트 '대한민국, 안녕하십니까?'>    

첫 번째, 내레이션 - 노종면(YTN 해직기자), 정영심(용산참사 유족), 박대성(미네르바), 한채민(촛불소녀) 
당시 방송됐던 장면들이 나오면서 그들의 내레이션이 흘렀다. 노종면 기자(외 5명)의 경우 "방송의 중립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므로 해임처분은 재량권을 일탈한 것"이라고 판결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직기자로 남아있다. 회사는 항소했고 그들은 재판 결과에 따라 복직을 시켜달라며 '구걸'하지 않았거든. 구본홍을 바로 코앞에 두고 목소리를 높이던 그, 높았던 목소리만큼 제자리로 돌아가는 길은 높은 오르막길이 되고 있다. 용산 역시, 여전히 용산이다. 이제 용산이라고 하면 그 뒤엔 자동적으로 참사라는 단어가 붙어야 할 것만 같은, 길고 깊게 각인된 야만정부의 단면.

헐. 난 그 사람이 미네르바인 줄 몰랐다. 왜 미네르바 얘기에 못 보던 사람이 앉아있나, 피디인가 기자인가 했는데, 미네르바가 살이 빠져 그런 거였다. 그러고보니 방송예고글에 35kg나 빠져서 수척한 모습이었다는 말이 있었는데도, 사람이 살이 빠졌다고 저렇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나 싶을 정도로 미네르바인지는 상상도 못했다. 몸도 힘들었겠지만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을 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법원이나마 중심을 지켜줘서 정말 얼마나 다행인지, 정말 이 나라 골로 가는 거 아슬아슬하게 버텨주고 있는데 그래서 가끔 무슨 판결 기사라도 눈에 띌라치면 지레 심장이 철렁한다. 똑같은 법서를 보고 공부한 사람들인데 어째서 누구는 개고 누구는 사람인지.

두 번째, 토크 - 진중권, 전원책, 박재동, 최유라 
사회자 이문세가 대한민국이 안녕하냐고 묻는 질문에 전원책은 안녕하다고 했다. 보수꼴통이니 빨갱이니 이런 소리 듣는다고 기분 나빠할 필요 없고 그렇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시끄러운 것 자체가 안녕하다는 것이라고. (속 편한 소리 하십니다...;) 반대로 진중권은 안녕하지 못하다고. 현대미술 강연 나가는데 정보과 형사가 따라붙는 본인의 얘기며 미네르바 사태며 뭐 그런 당연히 나올 얘기들...  

암튼 두 분 나오면 재밌다. 백분토론 단골 파이터;였는데, 토론에서 참 살벌하다 어떻다 얘기가 나오니까 전원책 왈, 진중권이 방송에서 진짜 화나게 하는데, 방송 끝나면 또 웃게 만든다네.ㅋㅋㅋ 자기랑 부딪히면서 진중권이 크는 거라고 말할 때 뭔가 진짜 사회의 어른같은 기분이 들어서 보기 좋더라. 실제로 진중권이 전원책과 논쟁을 벌이면서 사회적 이슈를 확대하는 측면도 있지만 이미 그의 발언 자체로도 충분히 이목이 집중되는 사람이라 그렇게 큰 영향이 있는 것 같지 않은데, 다만 본인과 의견이 다른 상대를 향해 그런 말을 하는 것이 (그 쪽 사람들에게선)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인지라... 초큼 감동이었다는 거.

전원책 변호사와 박재동 화백은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하는데 전원책의 말에 의하면 "이 친구는 수학시간에도 뒷자리에서 누드같은 그림 그리던 좌파였다"고 한다. 나도 수업시간에 그림 많이 그렸는데, 중고딩 때 나 좌파였나ㅋㅋㅋ 투닥투닥 재밌었다. 아 근데 너무 짧았다고...
 
세 번째, 내레이션 - <PD수첩>의 주요 장면들  
김미화(맞나?)의 내레이션과 함께 나오는 자료화면에서는 또 가슴에 불이 붙어 올랐다. 첫 촛불로 기록된 미선이효순이 추모집회와 SOFA개정요구집회, 쇠고기수입반대집회, 용산참사. 망루에 오르며 두 팔로 하트를 그려보이던, 누군가의 아들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그 사람들이 어떻게 그 누구의 눈에는 그저 쓸어버릴 하찮은 목숨에 불과할 수 있었을까. 이제 태어나면서부터 인생 경로가 정해지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대한민국에서는 목숨값마저도 "평등하지 않다". 

네 번째, 토크  - <PD수첩>의 역대 PD 송일준, 최진용, 최승호
제일 기대했는데, 너무 기대했나벼ㅡㅡ 주옥같은 몇 마디가 가슴을 치고 들어왔지만 너무 짧고 썰렁했다. 고생담을 구구절절 늘어놓거나 방송철학을 거창하게 늘어놓기를 바랐던 것도 아니고 그저 그렇게 진솔한 얘기들을 좀 더 '길게' 듣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다섯 번째, 작은 PD수첩 -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뉴타운 개발 아래 짓밟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짤막한 다큐. "집 부서진 아이라고 친구들이 놀려서" 학교를 며칠씩이나 빠졌던 아이가, 온 동네가 박살 난 폐허더미 위에서 "제가 정들었던 집이에요" 라고 울먹울먹한다. 이 아이의 상처와 기억은 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그 작은 가슴에 박힌 눈물덩어리를 어찌. 엄마한테 반찬투정이나 하고 동생이나 괴롭히고 숙제 안 해서 혼나기나 할 나이에, 어른도 감당하기 쉽지 않은 아픔을 받아내야하는 가혹한 현실 속 그 아이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어째서 이 나라는 10살도 채 되지 않은 꼬마 아이의 얼굴에 어른의 절망을 무자비하게 처발라버리는 건지. 아이의 얼굴은 아이답게 지켜주는 것이 국가가 해야할 일 아닌가?...

암튼 그렇게 눈물 쏙 빼놓고는 마무리는 참 발랄하게도 비행기 날리기(방청객들이 PD수첩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서 무대로 날려보내기)를 한다. 에에. 평소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에서 잠깐 벗어나 좀 경쾌하고 다채롭게 가려고 했던 것 같지만, 아무래도 <PD수첩>이라는 프로그램을 쇼의 형식으로 담아내려던 기획은 무리였다 싶다. 쑥쑥한 가슴에 노래는 잘 안 들어왔고 음악이라기보다 그냥 번잡한 소리로만 들렸다. 어쨌든 PD수첩의 20년과 맞물렸던 그 간의 굵직굵직했던 사회문제를 한 눈에 되돌아볼 수 있었던 것, 너무 오래 전이라 몰랐던 방송도 슬쩍 맛보기로나마 알 수 있었던 것으로 충분히 의미는 있었다. 그만큼 지난 20년의 대한민국 역사를 "관통"해온 PD수첩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며.

흠. 그래도 이런 특집 정도면 어설프게 노래랑 섞어서 토크콘서트를 하느니 손석희(이럴 때 안 보면 언제 보나요)가 진행하는 미니 토론처럼 꾸몄더라면 참 좋았을 것 같은데 말이다. 진중권 외 패널들과 피디들이 한 자리에서 그냥 편하게 대화하는 형식으로... 뭐 이미 끝난 방송가지고 아쉬워해봤자지만. 그래도 좀 너무 헛헛해서, 마침 주문해놨던

<PD수첩 - 진실의 목격자들> 을 집어 들었다. 일주일 전에 받았는데 계속 못 읽고 있다가 이 참에 주말 독서로. 책날개에 보니까 지승호의 트위터가 소개돼있다. 서재는 닫으신 지 꽤 오래된 것 같은데 그 쪽에 집중하고 계신가보다. 알라딘엔 그 분과 개인적으로도 친분있는 님들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이미 알고 있으실 수도 있지만 혹시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latteemiele(프랑스어인가. 뭔 뜻일까?) 

<진심의 탐닉>을 한 편 한 편 마음 좋게 읽었지만 역시 난 미사여구 없이 있는 그대로 풀어 주는 이런 인터뷰가 더 좋다. 전문 인터뷰어의 인터뷰와 영화잡지기자의 인터뷰, 각각 인터뷰를 전하는 매체도 다르고 자연히 인터뷰 방식이나 색깔이 다를 수 밖에 없으니 굳이 비교선상에 놓을 문제는 아니지만... 그냥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그렇다는 거. 간결하고 압축된 대화 속에서 느껴지는 잔잔한 감동도 좋지만 이렇게 일견 무미한 듯 죽죽 이어가는 이야기 속에서 천천히 차오르는 감동, 차분하게 스며들어 깊숙히 퍼지는 울림이 좋다.  

<PD수첩>을 최초로 기획했던 김윤영, 그와 함께 초창기 멤버였던 김상옥, 종교문제를 중점적으로 파헤쳤던 윤길용,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김환균, 각종 이슈의 중심에 있었던 송일준, 권력의 핵심부를 건드렸던 최진용, 최근 검사 스폰서 문제를 고발했던 최승호, 황우석 신화를 깨뜨렸던 한학수, 쇠고기 협상의 문제점과 광우병 위험을 지적했던 김보슬 PD. 아아. 이름 하나하나 써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손가락이 찌르르르한다. 진실을 향한 열정, 용기, 양심으로 똘똘 뭉쳐 PD수첩을 스무살로 키워낸 이 사람들. 진짜 멋진 사람들이다. 시청자가 제일 무섭다고 말하는 그들. "외압에 맞서면 당장 죽는다. 그러나 굴복해서 얼마간 살아남더라도 더 이상 정직하지 못한 방송은 어차피 나중에 죽게 되어있다. 그럴 바엔 지금 죽는 게 낫다." 고 말하는 그들. 갖은 고난과 위협 속에서도 기어이 여기까지 꿋꿋하게 걸어온 그들에게 마음 속 깊은 존경, 존경, 존경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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