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다 (반양장) - 노무현 자서전
노무현 지음, 유시민 정리,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엮음 / 돌베개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는 예전 어느 때처럼 마냥 열정으로만 부를 수 없는 이름 노무현. 그냥... 그런 그의 이야기다. 이미 잘 알려진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이야기, 사법고시 합격 이후 성공가도를 달리다가 인권변호사로 새롭게 태어났던 이야기, 정치를 시작하면서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기까지의 여정, 시대의 바람과 국민의 바람을 타고 대통령이 된 후 재임 시절의 이야기, 그리고... 퇴임 이후의 슬픈 악몽같은 이야기.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대통령이라는 자리에서의 노무현은 분명 우리가 바랐던 모습이 아닌 적이 많았다. 얽히고 설킨 국정, 자신이 선택하면 정말 '결정'이 되고 '실현'이 되는 막중한 권한과 책임 속에서, 그는 섣불리 그의 뜻을 온전히 펼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제 그는 지지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으로 족했던 정치인 노무현이 아니라, 그를 지지하지 않고 심지어 적으로 간주하는 사람들까지도 똑같은 국민으로 품어내야 할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이었기 때문에. 게다가 그 적이라는 사람들이 어디 보통 사람들이었나.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 모든 것이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여전히 원망스럽기도 하고, 마지막이 비겁했다고 생각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한 번쯤 마음을 내어 읽어 본다면, 변명같긴 하더라도 조금쯤은 그를 이해할 수도 있을... 작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그도 대통령으로서의 그의 선택에 모두 만족했던 것은 아니었고, 가진 거라곤 국민들 빽밖에 없던 사람이 그런 국민들로부터도 외면을 당하면서까지 외롭게 갈 수 밖에 없었던 그 길에, 그 정도면 애쓴 거라고, 그것으로 됐다고, 뒤늦게나마 작은 불 하나 밝혀줄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소망을 가져본다.

가장 대통령다웠으면서도 가장 대통령답지 않아서 좋았던 노무현. 기대만큼 잘 하지도 않았고 때론 기대와 어긋나는 모습도 보였지만... 인간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 사이에서 엄청났을 번뇌와 갈등을 전혀 모른 척 할 수가 없어서, 그래도 꾸역꾸역 마음 속에 담지 않을 수 없었던 노무현.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았고, 권력자와는 어울리지 않는 꿈을 가졌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공부를 끝까지 게을리하지 않았던 책벌레 노무현. 그와 같은 사람을, 정치인을, 대통령을, 언제 또 볼 수 있을 지 몰라서 더 그립고 아픈 노무현. 그러나 내 평생 정말 사람같은 사람을 대통령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노무현... 그런 노무현이 나의 노무현이다.

그는, 자기가 잘 나서 대통령이 된 게 아니라 바람을 타고 대통령이 된 거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는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잘못이라며 자기를 버려야한다고 했다. 잘 된 건 남 탓이었고 잘 못된 건 내 탓인 사람이었다. 꿈 많은 청년은 오로지 꿈만 보고 달려오느라 주변을 정리하는 기술같은 것도 몰랐다. 그래서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임기 내내 싸웠던 언론들이 마지막으로 성대하게 차려준 광기의 굿판에서, 선동질에 여전히 잘도 넘어가는 국민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그는 갔다. 그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눈을 뜨고 새삼 눈물 흘리는 바보 국민들은 그에게 다시 돌아오라고 부질없는 손짓을 한다. 바보 노무현은 바보 국민들을 만나 행복했다. 그리고 불행했다. 이제, 다시 행복해질 차례일까. 

이 자서전 아닌 자서전이, 문재인의 말처럼 따뜻하고 정겨운 작별인사가 될 수 있기까지는 해야할 일이 참 많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가까이서 그를 보고 느꼈다면, 이제 그를 좀 멀리 두고 그가 있는 곳까지 또박또박 걸어가야 할 거다. 대한민국에 이렇게 폼나는 정치인이 있었다. 돼지저금통의 기적같은 힘으로 당선되어 이렇게 진심으로 고군분투했던 대통령이 있었다. 역사가 그렇게 노무현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그가 꿈꿨던 미래를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쉽지 않은 숙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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