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일보에서 길고 긴 이준익 감독 이너뷰를 읽고 잠시 또 영화를 떠올려본다.
나는 달이 이몽학이고 마지막에 견자가 달을 베는 것 역시 이몽학이 가졌던 허무한 욕망을 베어버린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리뷰 제목도 달의 몰락이라고 붙였는데... 의미가 약간 달랐구나.
뭐 영화를 보고 각자가 느끼기 나름이고.
인터뷰에선 비관적인 엔딩에 관해 매우 깊이있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화의 스토리가 약하고 후반부가 꼬이면서 결말이 김 빠진다는 평을 많이 보긴 봤는데...
스토리는 좀 부족하다고 느꼈지만(특히 견자) 난 그냥 결말은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이준익의 말처럼... 꿈이라는 건 성공보단 실패하는 것이 오히려 현실에 가까우니까 말이다.
암튼 영화 내용과는 별 상관없는 인상깊은 말이 있어서 일부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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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남웅) 시대가 변했고, 그에 따라 감독님의 영화관도 바뀌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까요?
이(이준익) <왕의 남자>와 대척점에 있는 결말은 모냐면, 거짓 희망을 관객들에게 던져주는 시대가 아니다. 지났다. 2010년 지금의 젊은 애들에게 거짓된 희망으로 입장료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선택이었다고. 요즘의 젊은이들을 향해 꿈이 없는 세대라고 말하잖아. 꿈을 키우려고, 성취하려고 대학교에 들어갔더니 서울대, 고려대 학생이 대자보 붙여놓고 자퇴를 했어. ‘대한민국 대학은 대기업의 제품 생산 교육만 시킨다.’ ‘나의 꿈은 그게 아니다.’ 그러고 자퇴를 했어. 그 대자보를 보고 있는 학생들은 행동하지 않았지만 그 심정이 어떨까, 라고 우리는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거야.
그전에 88만원 세대라고 우석훈 박사가 말했지만, 문화적으로 보면 나는 약정세대라고 봐. 대한민국 청소년 중에 약정에 안 걸린 사람 있나 나한테 얘기 좀 해줘봐. 약정을 안 걸면 새로운 기술을 쓸 수 없도록 만든 사람들이 386세대라는 거야. 386세대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광장에서 외친 결과가 지금 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서 밑에 세대 젊은이들을 약정으로 묶어버린 거야. 빨리 이 약정을 풀어야 아이폰을 살 수 있고 또 다음 약정을 걸 수 있어. 그렇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 그럼 열심히 ‘알바’ 해서, 비정규 노동을 해서 돈 번 후 다시 약정을 걸고, 재약정을 걸어야지만 현대 사회의 시스템으로부터 이탈되지 않는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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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간단히 말해서, 모두 해체하고 다시 시작하자는 말씀이시군요.
이 오른쪽 날개가 왼쪽 날개를 비난하고, 왼쪽 날개가 오른쪽 날개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럼 한쪽 날개만으로 새는 날아가지 못한다고. 이미 새가 아니야. (웃음) 서로 상대의 가치를 존중해야만 새가 온전히 날 수 있는 게 좌우의 목표야. 그게 원래 좌우의 논리야. 민주주의는 그래서 생긴 거라고. 동인, 서인을 만들게 된 본래 취지는 좌의정과 우의정을 놓고 균형을 잡겠다고 한 거야. 근데 씨발 좌의정, 우의정 새끼들이 도망가는 것도 의견 통일을 못하니까 내가 해체를 해버린 거지. (웃음)
이럴 바엔 차라리 해체를 해라. 그럼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거짓 희망을 주지 않고 있는 그 자체를 인정하면, 절망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진짜 희망이 보인다고. 절망이 두려우니까 자꾸 가짜 희망을 던지잖아. 그 가짜 희망을 던져서 중독 시키는 게 뭐냐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야. 예를 들어, 이몽학이는 일그러진 영웅이라고. 자, 이몽학이를 <브레이브 하트>처럼 그리라면 못 그리겠냐고. 내가 <글래디에이터>로 왜 못 그리겠어. (웃음) 그게 진짜 영혼이고, 진짜 희망이야? 가짜야, 가짜. 가짜 희망이라고. 그 가짜 희망에 우리 영혼을 팔 수 없는 거 아니냐는 거지. 그래서 이몽학이를 그렇게 그린 거야. 상업적으로 불리하지. 상업영화 감독으로써 난 정말 자해를 한 거지. (대폭소) 미친놈이지 내가, 미친놈이여. 아이씨, 이준익은 미친놈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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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이몽학은 일종의 주변부를 통한 캐릭터의 해체로 봐도 될 텐데요. 특히 이몽학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에서 해체가 두드러졌어요. ‘이몽학의 난’은 1596년에 일어났는데 영화는 임진왜란이 터진 1592년에 벌어진 것으로 설정하고 있고요, 견자의 손이 아니라 그의 부하들이 이몽학의 목을 베어 항복했죠. <황산벌>과 <왕의 남자>에서도 그랬지만 감독님은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차용하는데 별로 관심이 없으세요.
이 역사는 기록인데 승자의 전유물이잖아. 그러니까 난 기록을 믿지 않아. 기록을 다 의심해. 일단 난 글을 믿지 않아. 책을 안 믿어. 책은 거짓말이 가능해. 내가 요즘 좋아하는 책이 독일 물리학자가 쓴 건데 멋진 제목이야. <진리는 거짓말쟁이의 발명품이다> 책 안에 진리가 있다잖아. 그 진리가 거짓말쟁이가 만든 발명품이라는 거야. 너무나 멋있는 말이야. 말도 거짓말 할 수 있고 표정도 거짓 표정 지을 수 있고 글도 거짓말 할 수가 있어. 내가 믿는 건 딱 하나야. 소리. 목소리는 거짓말을 못 해. 그래서 거짓말 탐지기를 소리로 하는 거야. 소리는 생리거든.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나는 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소리를 들어. 근데 글은 거짓말을 해. 책의 반은 다 거짓말이야. 난 거짓말을 찾으려고 책을 보지. 역사적인 사료를 보는 순간, 거짓말이 어디 있는지를 찾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