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e - 시즌 1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1
EBS 지식채널ⓔ 엮음 / 북하우스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글자보다 여백이 많음에 감사한 책. 제작진이 방송분량 5분을 채우기 위해 23시간 55분을 미련없이 버리고 마음껏 느끼며 살 수 있었다던 것처럼, 5장 가량의 책장을 넘기고 난 후 밀려드는 깨달음과 감동은 오래도록 나를 울린다. 책을 통해 떠올릴 수 있는 영상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슬펐던 이야기들.

지식e는 대체로 슬픈 이야기다. '구분'해서 슬프고, '밀어'내서 슬프고, '기억'하기에 슬프고, '돌아'보기에도 슬퍼서 모두가 잘 하지않게 되는 그런 이야기들을 조곤조곤 하나씩 꺼내서 조심스레 펼쳐놓는다. 그저.. 펼쳐놓을 따름이다. 그런데 그 여백이 가득한 공간에 정성껏, 힘주어 씌어진 짤막한 글귀들은 사정없이 가슴을 툭툭 쳐댄다. 수많은 자료와 사진들을 거쳐 탄생했을 그 짧은 이야기속에 그들의 23시간 55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것이 문득문득 느껴질 땐, 그것이 하나의 지식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녹아들어간, 그리고 우리의 삶으로 녹아들어야 할 '앎'이라는 진중권의 말에 절감한다. 이미 누군가의 실제 삶이었던 것을 또다른 누군가가 스스로의 삶과 바꾸어 전달해주는, 이 소중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내 삶속으로 품어안지 않을 수 있을까.

커피, 햄버거, 축구공, TV, 비타민같은 흔한 일상의 사물들이 결코 일상의 것만은 아님을, 통계데이터의 정확한 수치와 참고자료를 통해 알려준다. 세계가 매년 마셔대는 4천억잔 커피판매량의 이윤 중 1%는 후진국의 커피재배농가의 몫, 99%는 미국 거대커피회사와 중간거래상의 몫. 햄버거용 소고기 100g 때문에 사라지는 숲은 5평방미터. 가죽 32조각과 1,620회의 바느질로 만들어지는 축구공, 그것을 만들고 파키스탄 아이들이 받는 돈은 일당 300원, 세계적인 축구스타 베컴의 일당은 2,000만원......

이렇게 열거된 데이터의 말미에는 분명 그들이 있는 힘을 다해 쥐어짜냈을 것이 분명한 짤막한 멘트가 힘껏 메시지를 쏘아대고 있다. 눈에 보이는 글귀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얻느냐하는 것은 읽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것이고 그 메시지를 어떤 방법으로 내 안에 융화시켜 나가느냐 하는 것 역시 읽는 사람마다의 몫이 되겠지. 충분히 마련된 여백의 공간에서 마음껏 느끼고 깨닫고 반성하고 생각하면서 문득, 나도 모르게 한장 한장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책장을 넘기는 내 손을 발견하곤, 이제는 처음처럼 마냥 희기만 한 여백이 아닌 그 공간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 것 같아 뭉클한 기분이 된다. 지면의 공간이 점점 사유의 공간으로 바뀌어 수많은 상념과 성찰로 채워져갈 때, 이 350페이지 가량의 작은 책이 품고 있는 힘이란 얼마나 거대하고도 따뜻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실제 방송될 때 삽입되는 배경음악 대신 내 주변을 둘러싼 고요한 적막이 주는 느낌도 참 좋다. 지면의 여백처럼 소리에도 여백이 있는 거라고 해야할까. 사방이 조용한 가운데 책 속에 펼쳐지는 파란한 삶을 보고있자니 그 이질감에 한없이 소름이 돋는다. 방송의 사운드와 영상이 주는 효과야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만, 책으로 접할 때의 장점이 글귀 한번 더 보고 사진 두번 세번 더 볼 수 있는 여유로움이라는 것 역시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지면의 빈 공간과 소리의 빈 공간이, 시간의 빈 공간과 맞물려 내 삶의 빈 공간으로 들어오는.. 말이 좀 웃기지만 정말 그런 느낌이다.

얼마 전 인터넷 뉴스에서, 100여년 전 뉴욕 동물원에서 오랑우탄과 함께 갇혀 '전시'되었다가 32살에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 콩고 피그미족 오타 벵가에 대한 이야기를 봤다. 자연스럽게 사끼 바트만이 떠올랐다. 그녀를 이용한 이상한 쇼, 백인들의 인디언 강제이주, 열악한 환경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삶의 터전을 강탈당하는 철거민들... 약자에게는 한없이 강한 인간의 잔인하고도 저열한 습성의 끝은 대체 어디인지 마음이 아득해졌다. 아프리카 원주민을 야만인으로 규정짓는 그 순간 스스로가 야만인이 되는 것임을, 약자들을 무참히 짓밟는 그 순간 스스로의 인간성이 무참히 짓밟히는 것임을, 우리가 행하는 모든 비인간적인 짓거리들이 바로 그 자신에게 더 큰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것임을 왜 알지 못하는지...

삶의 소중하고도 분명한 가치들, 그러나 그 개념 자체가 너무나도 변질되어버린 것 같은 세상을 향해 부드러운 칼날을 쥐고야 만 감성채널 제작진들이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하나하나의 아이템을 준비하는 긴 시간동안 느꼈을 수많은 감정들을 고스란히 담아 이토록 짧고 강렬하게 압축시켜낸 그들의 결과물, 이런 것을 돈 몇 푼에 낼름 받아먹어도 되는 것일까. 어떤 이의 삶을 또 다른 어떤 이의 삶으로써 내 삶에 얻어내는 것이.. 한없이 송구스럽고 한없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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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빠 2008-06-09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식e>에 관한 설문조사로 도움을 받고 싶은데요
http://blog.naver.com/image2two 에 오셔서
내용을 확인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