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연유로 탄생했든 이 그림의 이미지에서는 인노첸티의 포부와 더불어 보육원의 사명을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시키겠다는 불굴의 의지가 드러난다.

―『버려진 아이들의 집, 피렌체의 인노첸티』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그토록 칭송됐던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와 퍽 비슷하게,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멋진 프레스코화와 아치 기둥, 박학다식함이 돋보이는 논고에 가려진 것은, 지고한 시민적·종교적 이상과 아동이 학대당하고 노예가 강간당하고 가족이 파탄 나는 폭력적인 현실이 충돌하던 때에 강제 노역을 하며 동산 취급을 받았던 인간의 땀과 고통이었다.

-『버려진 아이들의 집, 피렌체의 인노첸티』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피렌체의 노예는 열 명 중 아홉이 여성이었고, 이들은 집안일을 하면서 남성 고용주에게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 그러다 끝내 원치 않은 임신을 하고 아이를 유기하게 되었다. (중략) 15세기 피렌체에서는 비적출로 태어난 아동의 무려 60퍼센트가 노예의 자식이었고 아버지는 많은 경우 부자 남성이었다. 이렇게 위법하게 태어난 아이들은 바르디, 메디치, 피티, 스트로치, 토르나부오니 등 이름도 찬란한 피렌체 귀족 가문의 핏줄이었다.

―『버려진 아이들의 집, 피렌체의 인노첸티』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인노첸티 보육원에 들어오는 아이들 중 많은 수는

주인이 노예를 강간해서 태어난 비적출자, 즉 사생아였습니다.

이 죄 없는 아이들은 탄생 자체가 부모의 죄악을 증명하는 거라고,

죽느니만 못한 존재라고 여겨졌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이 도시의 통치자들은 병원과 자선 단체라는 열악하고 비효율적인 시스템에 위탁되고 있는 어마어마한 수의 업둥이들에게서 도시의 노동력 부족에 대응할 가능성을 보았고, 냉정한 경제적 계산에다 인본주의적 수사를 섞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미래의 보육원은 환영받지 못한 밤비니를 거둬서 살려놓는 일 이상을 해야 했다. 피렌체를 이탈리아와 유럽 지성의 중심지로 탈바꿈시키는 중인 새로운 철학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그 아이들을 양육하고 교육해야 할 터였다.
피렌체인들이 르네상스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이 말은 그로부터 약 400년이 지난 뒤에야 등장한다—이 새로운 보육원은 인본주의의 신념을 실천하게 될 것이었다.
―『버려진 아이들의 집, 피렌체의 인노첸티』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