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노첸티 보육원에 들어오는 아이들 중 많은 수는

주인이 노예를 강간해서 태어난 비적출자, 즉 사생아였습니다.

이 죄 없는 아이들은 탄생 자체가 부모의 죄악을 증명하는 거라고,

죽느니만 못한 존재라고 여겨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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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의 통치자들은 병원과 자선 단체라는 열악하고 비효율적인 시스템에 위탁되고 있는 어마어마한 수의 업둥이들에게서 도시의 노동력 부족에 대응할 가능성을 보았고, 냉정한 경제적 계산에다 인본주의적 수사를 섞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미래의 보육원은 환영받지 못한 밤비니를 거둬서 살려놓는 일 이상을 해야 했다. 피렌체를 이탈리아와 유럽 지성의 중심지로 탈바꿈시키는 중인 새로운 철학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그 아이들을 양육하고 교육해야 할 터였다.
피렌체인들이 르네상스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이 말은 그로부터 약 400년이 지난 뒤에야 등장한다—이 새로운 보육원은 인본주의의 신념을 실천하게 될 것이었다.
―『버려진 아이들의 집, 피렌체의 인노첸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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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가정에 “생육하고 번성하라”라는 성경의 명령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요구했고, 그래서 인구의 절반이 아동인 지역도 있을 정도였다. 여러 세기 동안 신학자들은 피임을 호되게 비난했다. 그 시절에는 믿을 만한 피임법도 없었지만 말이다.

 -<버려진 아이들의 집, 피렌체의 인노첸티> 42~43p

다티니 정도의 부와 권력을 쥔 남자는 혼외정사를 해도 제약을 받지 않았고, 훌륭한 아내라면 가정의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 한 남편이 여색을 밝혀도 눈감아주는 것이 ‘도리’라고 여겨졌다. 이런 배신이 임신으로 이어지면 부인은 자존심을 누르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를 인정하고, 심지어 집에까지 들여야 했다. 그러나 아이가 불쾌하게나마 인정을 받는 드문 경우보다 분노한 부인이—그리고 곤욕스러워진 남편이—비적출 아동을 거부하고 아기를 병원이나 자선 단체에 보내버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 병원이나 단체는 업둥이는 거뒀지만 어머니는 몰아냈고, 그러면 어머니는 대부분 거리에서 숨졌다.

-52~5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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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거리에는 오늘날 도시에 성인 노숙인이 허다한 것처럼 유기 아동들이 바글바글했다. 버려진 아기들은 성당 출입구에 남겨진 채, 강에 내던져진 채, 쓰레기 더미에 내팽개쳐진 채 발견되곤 했다. 그렇게 버려졌다가 들짐승에게 잡아먹히는 경우도 있었고, 다수는 훗날 성매매에 이용될 용도로 거래되었다.”


『버려진 아이들의 집, 피렌체의 인노첸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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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과 함께 엄마를 잃은 아이와 아내를 잃은 남편, 이를 돌보는 팔순의 노모를 생각하니 작가의 개인사 고백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되돌아보면 아이는 인생에 가장 큰 축복이고 기쁨이고 산물이었지만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좌절감을 느꼈던 시기 중 하나가 바로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기였다. 이제 위로는 연로하신 부모님 아래로는 아직은 돌봄이 필요한 아이 그리고 노화라는 필연을 맞는 나 자신조차도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돌봄의 필요 또는 수요는 점점 늘어갈 텐데 이 돌봄 수요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많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집이 위대한 건축물 아름다운 예술로 남았다는 것이 하나 더 감동적인 포인트 같다.

―『버려진 아이들의 집, 피렌체의 인노첸티』 「여는 글」을 읽으며 들려준 김선아 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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