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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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사랑에 관한 이야기. 그러나 사실은 절망에 관한 이야기.

 

한 때 난 사랑에 꼭 어떤 결말이 있어야 한다는것에 의심을 했었다. 사랑의 결말- 그것은 결혼 아니면 이별이라는 종점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왜 결혼이 사랑의 완성인것이냐? 그런게 아니면 왜 꼭 이별해야 하는것인가? 사랑의 결말은 사랑하지 않음이다. 그냥 이대로 할 수 있는 한 오래도록 사랑을 하리라, 사랑을 지켜가리라-. 어쩌면 나는 많이 어렸었는지도 모른다. 생활이라는 현실 속에서 부대끼고 까이는 세월을 지나온 지금 난 변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믿음은 어떤 의미에서는 여전하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하나도 소개되지 않는 소설이다. 아주 담담하게 재미없는 한 중년여인의 생활을 말한다. 그녀는 그림을 그리며 산다.사람들과 많이 어울리지 않지만 나름 여러 방법으로 시간을 즐기며 산다. 7년이나 사귄 그러나 여전히 믿음으로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 아주 유명한 화가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좋은 평판을 얻는 편이다. 그런  그녀에게는 절망이 늘 가까이 있다. 혼자 쓸쓸한걸까 싶은 순간이 오면 어김없이 절망이란 친구가 '안녕 잘 지내고 있나봐?'하고 인사를 건넨다. 어느 날은 아무렇지도 않고 어느 날은 그 친구가 오는게 버겁다.

 

이야기를 너무도 담담하게 풀어가고 있어서 과연 절망을 말하는 걸까 의심하게 되지만 결국은 절망에 관한 이야기. 담담해서 맘에 든다. 그리고 사랑에 관한 결말이 아니라서 더 맘에 든다. 그녀의 소소한 일상, 평범한 혹은  평범하지 않은 일상과 어린 시절의 회상은 많은 부분 공감을 했다. 심심해서 절망이 더욱더 절절하게 느껴지는 이야기. 세 번째로 접한 에쿠니 가오리 작품. 아직까진 실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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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출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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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영하를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과 전혀 다른 김영하의 초기 단편집이다. 10년이 지난 단편들을 두툼하게 하드커버로 묶어내는 통에 신간으로 착각할 뻔했다.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의 글이 이렇게 신선하다니 놀랍지 않은가. 하긴 전공과 자신이 좋아하는일과 자신이 잘하는 일과는 전혀 다른 문제니까. (뭐? 네가 공순이라고? 왜 그랬어?라는 말을 심심찮게이 듣는 내가 바로 견본)

 

다양한 이야기와 이미지가 엉켜 있고 무엇인가 공통된 주제는 찾지 못하겠다. 처음 수록된 ' 도마뱀'을 읽으며 느낀 주술적이고 몽환적인 신선함이 채 가시기 전, 다음 편인 '호출'에서도 오홋!하고 즐거운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도드리' , '손', '내 사랑 십자드라이버', '총', '삼국지라는 이름의 천국', '베를 가르다', '전태일과 쇼걸', '나는 아름답다', '거울에 대한 명상' 모두 제 나름의 힘과 이미지와 놀라움을 담고 있다.  억지로 꿰어 맞추자면 각 이야기 주인공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린 시절의 억압, 상처 그게 아니면 사춘기 시절의 상처 혹은 잘난체하며 '운동'을 하던 시절의 부채감 같은.

 

다양한 부채감과 억압을 들여다보면 어느 새, 그 주인공이 나인듯 착각하기도 한다. 모양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누구나 자신 안에 치유되지 않은 상처 하나씩은 갖고 있는게 아닐까? 잊을만하면 덧나거나, 나았다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쑤시곤 하는 어떤 상처들. 그 상처를 치유하는것은 그런데 결국 자기자신이다. 어떤 부채감을 떨어내는것도 자기자신. 언젠가는 입으로 소리내어 말해야만 치유될 수 있는 것.

 

건조한 문체가 좋았던 <검은꽃>이 생각난다. 데뷔작인 '거울에 대한 명상'(영화 <주홍글씨>의 원작)부터 수록된 단편들은 엉뚱한 비꼼이나 유머없이 건조한 문체들이다. 맘에 든다. 김영하의 책들을 겨우 몇 권 보았을 뿐인데, <오빠가 돌아왔다>같은 유머도 <검은꽃>같은 건조함도 모두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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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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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다 본 책을 이제야 읽는다. 나란 사람이 유행에 뒤지는건 옷이며 신발은 물론이고 책에까지도 예외가 없다.

사실은 뭐 그런거다. 책을 사는것보다 빌려 읽는 일이 더 많아지면서 신간을 유행따라 읽을 일이 별로 없어진 것. 도서관의 수서과정이 얼마나 늘어지는지 신간을 빌릴 수가 없고, 설사 신착이라 한들 이 책처럼 유행의 중심에 있는 녀석이 내게 오기까지는 베스트셀러 목록이 열 번쯤 바뀐 후인거다. 그리고 그 중간중간 읽고 싶은 책들의 리스트는 또 얼마나 자주 바뀌는가. 가끔은 사기도 하고 가끔은 베스트셀러를 빛의 속도로 들여놓는 동네 대여점에서 보기도 하지만. )

 

우리는 애인을 만들 자유가 있는 부부다. 결혼할 때, 그렇게 분명하게 못을 박았다. (37쪽) 이런 부부가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한  쪽이 일방적으로, 몰래 애인을 만들거나, 양쪽 다 애인이 생긴다 해도 그 상황은 이미 애정을 바닥내고도 모자라 증오나 무관심만 남은 부부가 아닐까?  "결혼"이란 상대방에 대한 독점적 소유를 법적으로 공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다처든, 일처다부든 마찬가지일게다. 아내나 남편이 아니라 '애인'이란 것이 핵심이니까.

 

그런데 이 커플, 서로에 대한 애틋함으로 결혼하여 각자에게 애인을 잘 챙기라 말하고 있다. 적어도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다. 알콜 중독 성향에다 우울증이 있는 쇼코는 동성애자인 남편 무츠키를 지극히 아끼고, 무츠키 역시 한없이 친절하고 다정하다. 다만 두 사람에게는 이성애적인 사랑이 아닌 다른 종류의 사랑이 있고, 그래서 서로 몸을 섞지 않으며, 서로의 애인까지도 친구처럼 지낼 수 있다.  이 이야기가 <아내가 결혼했다>와 다른 점은 남(남편)-녀(아내)-남(남편)의 관계가 아니고 남(애인)-남(남편)-녀(아내)로 엮인 이들의 독특한 관계. 물론 한 사람을 공유해야 한다는 점에선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쇼쿄는 다정한 남편에게 점점 더 많은 것을 기대하면서도 혹여 남편과 애인의 관계가 깨지면 자신들 역시 깨질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결말이 매우 엉뚱해 보이지만, 이 세사람 모두에게 최선의 길이었으므로 예측가능했다.

결말은 경쾌했지만 이 부부는 '무츠키와 잘 수 없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태연하게 부드럽고 자상한 무츠키를 견딜 수 없다. 물을 안는 기분이란 섹스가 없는 허전함이 아니라, 그것을 서로에 대한 콤플렉스라 여기고 신경을 쓰는 답답함이다.'(183쪽) 같은 말에서 아슬아슬함을 느끼게 한다. 반짝반짝 빛나지만 곧 깨어질지 모를 얄팍한 유리처럼.(25쪽)

 

세상에는 참 많은 종류의 사랑이 있는 모양이다.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지만, 또한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치유하기도 하는 사랑도 있는게다. 그리고 100명중 90명이 하는 이성애가 있지만, 누군가는 동성을 사랑하고 누군가는 양성 모두를 사랑한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되지만, 때론 말이 통해서 가슴이 통하지 않는 사랑도 있는것. 사랑하는 과정에 생기는 수많은 감정들과 성장은 직접적인 체험없이는 결코 배울 수 없는, 알 수 없는 것들일게다. 아내를 안지 못한다 해서 아내에 대한 사랑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부부도 있는거겠지. 그 감정은 내가 겪지 못했으므로 이해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 감정의 존재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는거다. 그게 바로 사랑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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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하는 저녁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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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 동거한 애인을 단 사흘 만에 버리게 한 존재 하나코. 그녀를 보는 모든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지만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소망하지 않고 허무한 듯, 물처럼 혹은 엉뚱하게 사는 여자.

8년의 세월을 나눈 다케오와 리카는 그녀 때문에 헤어지게 되지만, 다케오를 사랑하지 않는 하나코는 아무렇지도 않게 리카와 함께 살겠다고 찾아오고, 얼덜결에 수긍한 리카는 점점 그녀에게 어렴풋한 애정을 느끼게 된다.

 

<반짝반짝 빛나는>처럼 독특한 사랑이야기인가 싶었지만, 책장을 덮은 지금의 느낌은 실연과 절망에 관한 이야기였구나 싶어진다.

리카로선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헤어짐을 15개월동안 하나코와 살면서 조금씩 인정하게 되고, 하나코는 하나코대로 말하지 못한 어떤 절망의 그늘을 보여준다. 스릴러처럼 이야기는 끝까지 하나코의 절망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그녀와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에 관한 진실은 무엇인지 말하지 않는다. 다만 어렴풋하게 짐작할 뿐이다. 백만인의 사랑을 받는다 한들, 스스로 살아갈 희망이나 사랑을 만들어가지 못한다면 결국 아무 소용 없는것 아닐까? 하나코가 그 누구에게도 정착하지 못하고, 그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고, 늘 도망치듯 살았던 것은 그런 이유때문이었다.

 

이 세 사람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어찌보면 엉뚱하고, 현실감도 없으며, 슬프기까지 할텐데, 어쩌면 이리도 담담하고 맑은 느낌이 들까?

어....나는 감성적인 인간이 아닌데, 늙은것인가. 어쩌자고 이런 이야기에 홀린담.

그러니까,  에쿠니 가오리가 맘에 든다.

적어도 지금 이 두 작품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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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학교 아이들
커티스 시튼펠드 지음, 이진 옮김 / 김영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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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을 압도한 21세기 새로운 고전의 탄생!

이라는 마케팅 문구는 넘쳐도 너무 넘친다. 물론 매력적인 책이긴 하지만.

 

이쁘지도 않고, 공부를 잘하는것도 아닌 리 피오나가 비싼 학비의 사립기숙고등학교에서 보낸 4년동안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남의 눈에 띄지 않기를, 그러면서도 눈에 띄기를 바라는 그 모순된 감정에 시달리는 사춘기 소녀의 마음이 어찌나 공감되던지. 내가 사춘기 마음을 가진것은 아니다만, 그 시절을 지나왔으니 이해하는것이리라. 새로운 친구를 만날때마다 흔들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때마다 뒤로 주춤 물러나는 그녀는 그러면서 커 나가고 있으니. 때로 충동적이고 때로 너무 진중하던 시절들.

 

리는 자신이 정말 좋아했던 크로스와 연인이 될 수도 있었지만, 스스로를 비하하는 바람에 그 기회를 놓친 꼴이 되었다. 크로스처럼 완벽한 남자가 공기처럼 존재감 없는 자신을 좋아할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자신을 연인의 자리에 세우지 못했다.

 

'그 때 나는 알지 못했다'라는 문장이 여러곳에서 반복되는 것은 그 시절과 달라졌다는 얘기며, 성장했다는 뜻이고, 그 파란만장하고 롤러코스터같은 시절을 지나 슬기를 얻거나 혹은 지루한 삶을 살게 된다는 뜻일게다.

 

 

자신을 사랑하는것. 스스로 귀하다고 여기는 것.

그러한 삶의 자세는 사춘기가 지나면 모두들 절로 얻게 되는 것일까?

열여섯 사춘기를 지난지가 벌써 언제인데, 난 아직도 어린 리와 비슷한 상태를 자주 겪는걸까 싶어진다. 살 수록 그 마음가짐이 필요하고 소중하다는걸 느끼는데 말이다.

 

좀더 자신감을 가질 것. 좀더 턱을 들고 걸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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