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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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다 본 책을 이제야 읽는다. 나란 사람이 유행에 뒤지는건 옷이며 신발은 물론이고 책에까지도 예외가 없다.

사실은 뭐 그런거다. 책을 사는것보다 빌려 읽는 일이 더 많아지면서 신간을 유행따라 읽을 일이 별로 없어진 것. 도서관의 수서과정이 얼마나 늘어지는지 신간을 빌릴 수가 없고, 설사 신착이라 한들 이 책처럼 유행의 중심에 있는 녀석이 내게 오기까지는 베스트셀러 목록이 열 번쯤 바뀐 후인거다. 그리고 그 중간중간 읽고 싶은 책들의 리스트는 또 얼마나 자주 바뀌는가. 가끔은 사기도 하고 가끔은 베스트셀러를 빛의 속도로 들여놓는 동네 대여점에서 보기도 하지만. )

 

우리는 애인을 만들 자유가 있는 부부다. 결혼할 때, 그렇게 분명하게 못을 박았다. (37쪽) 이런 부부가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한  쪽이 일방적으로, 몰래 애인을 만들거나, 양쪽 다 애인이 생긴다 해도 그 상황은 이미 애정을 바닥내고도 모자라 증오나 무관심만 남은 부부가 아닐까?  "결혼"이란 상대방에 대한 독점적 소유를 법적으로 공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다처든, 일처다부든 마찬가지일게다. 아내나 남편이 아니라 '애인'이란 것이 핵심이니까.

 

그런데 이 커플, 서로에 대한 애틋함으로 결혼하여 각자에게 애인을 잘 챙기라 말하고 있다. 적어도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다. 알콜 중독 성향에다 우울증이 있는 쇼코는 동성애자인 남편 무츠키를 지극히 아끼고, 무츠키 역시 한없이 친절하고 다정하다. 다만 두 사람에게는 이성애적인 사랑이 아닌 다른 종류의 사랑이 있고, 그래서 서로 몸을 섞지 않으며, 서로의 애인까지도 친구처럼 지낼 수 있다.  이 이야기가 <아내가 결혼했다>와 다른 점은 남(남편)-녀(아내)-남(남편)의 관계가 아니고 남(애인)-남(남편)-녀(아내)로 엮인 이들의 독특한 관계. 물론 한 사람을 공유해야 한다는 점에선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쇼쿄는 다정한 남편에게 점점 더 많은 것을 기대하면서도 혹여 남편과 애인의 관계가 깨지면 자신들 역시 깨질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결말이 매우 엉뚱해 보이지만, 이 세사람 모두에게 최선의 길이었으므로 예측가능했다.

결말은 경쾌했지만 이 부부는 '무츠키와 잘 수 없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태연하게 부드럽고 자상한 무츠키를 견딜 수 없다. 물을 안는 기분이란 섹스가 없는 허전함이 아니라, 그것을 서로에 대한 콤플렉스라 여기고 신경을 쓰는 답답함이다.'(183쪽) 같은 말에서 아슬아슬함을 느끼게 한다. 반짝반짝 빛나지만 곧 깨어질지 모를 얄팍한 유리처럼.(25쪽)

 

세상에는 참 많은 종류의 사랑이 있는 모양이다.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지만, 또한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치유하기도 하는 사랑도 있는게다. 그리고 100명중 90명이 하는 이성애가 있지만, 누군가는 동성을 사랑하고 누군가는 양성 모두를 사랑한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되지만, 때론 말이 통해서 가슴이 통하지 않는 사랑도 있는것. 사랑하는 과정에 생기는 수많은 감정들과 성장은 직접적인 체험없이는 결코 배울 수 없는, 알 수 없는 것들일게다. 아내를 안지 못한다 해서 아내에 대한 사랑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부부도 있는거겠지. 그 감정은 내가 겪지 못했으므로 이해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 감정의 존재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는거다. 그게 바로 사랑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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