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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어떻게 내 삶을 움직이는가 - 세상의 이면을 파헤치는 실전경제학 입문서
모셰 애들러 지음, 이주만 옮김 / 카시오페아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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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신간도서 선정에 실패하다.


 세상을 움직이는 경제학의 두 가지 축 ‘경제 효율성’과 ‘임금이론’을 통해 세상의 이면을 파헤치는 실전경제학 입문서. 컬럼비아대 교수인 저자는 1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인간이 창조한 경제 개념들이 모든 사람의 복지를 염려하던 평등주의적 관점을 벗어나 부자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편향된 분석 도구로 전락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http://me2.do/GXUC0mYu 알라딘 책 소개에서


 이번 4월 신간도서는 제가 신간평가단 활동을 하면서 드물게 추천한 도서 모두가 선정된 아주 드문 경우였습니다. 저 자신이 직접 고른 책을 받고 나서, 더욱 기쁜 마음으로 책을 펼쳐보았습니다. 『경제학을 입다 먹다 짓다』가 제가 예상한 내용과 일치했다면, 이번에 리뷰하게 될 경제학은 어떻게 내 삶을 움직이는가』는 제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경우입니다. 책 소개를 읽고, 제가 주목했던 점은 ‘경제 효율성’과 ‘임금이론’을 통한 실전경제학 입문서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이를 통해서 복잡한 경제 현실과 난해한 경제 이론을 보다 쉽고 명확하게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 책은 경제 개념들이 부자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편향된 분석 도구로 전락하는 과정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책의 난이도 또한 저의 예상을 뛰어넘었습니다. 저자 본인은 서문에서 특별한 경제학 지식이나 복잡한 수식이 없어서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합니다. 책의 추천사 또한 이 책이 '경제학을 배우지 않은 교양 있는 독자'들이 읽을 수 있는 입문서라고 치켜세웁니다. 하지만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개념을 둘러싼 주장은 공공 경제학이나 후생 경제학이라는 조금은 전문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경제학적 개념이나 원리가 없이 다양한 사례를 통해 논의를 전개하기에 저는 오히려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책에 대한 이해도를 그 어느 때보다도 확신할 수 없기에 조심스런 마음으로 책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문제는 효용과 임금이다.


<웹툰 츄리닝 - 탈옥편 중에서>


 우선 1부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경제효율성입니다. 과거 공리주의자들은 효용(행복)의 사회적 총합이 가장 커지도록 분배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부자에게서 세금을 거두어 가난한 사람에게 주면, 부자가 잃는 효용보다 가난한 사람이 얻는 효용이 훨씬 더 크므로 사회의 총효용은 증가하게 됩니다. 반면에 파레토를 비롯한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런 주관적 효용의 크기는 측정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신 이들은 '어떤 사람의 후생도 감소됨이 없이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의 후생이 증가되는 것만'(파레토 개선)을 효용의 증가으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효용의 감소를 받아들일 사람은 드물기에 자동적으로 현실의 모든 분배는 최적의 분배가 되며, 복지 정책에는 반대하게 됩니다. 


 2부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임금입니다. 주류경제학자들(신고전파 경제학자)은 임금은 노동자 자신이 생산한 한계 생산물 가치와 동일하다고 설명합니다. 즉, 임금의 차이는 능력의 차이이자 결과의 차이인 셈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한계효용만큼이나 한계생산 역시 측정하기 어려우며, 같은 일이라도 지역과 국가마다 임금이 다르다는 사실을 통해 반박합니다. 이런 주장을 통해 저자는 오늘날 경제와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이 사실은 힘의 논리이자 불평등이라는 진실을 우리에게 전달합니다. 위의 그림처럼 한 사람의 희생이 다른 사람의 이득이 되는 사회가 과연 경제라는 이름으로 용납될 수 있는가는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투자와 비용 사이에서


 "왜 부자들을 돕는 것을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만 말하는가?


-룰라 브라질 전 대통령


 굳이 멀리갈 것도 없이 지금 우리사회는 효율과 분배 문제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진행 중입니다. 아직까지는 분배보다는 성장에 그 무게추가 쏠린 느낌입니다. 미진하기는 해도 복지 제도 또한 개선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동시에 서로의 주장에 대한 한 치의 양보도 보여주지 않는 독선과 아집 또한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결론이 나기는 커녕 더욱 팽팽해져 가는 이 긴장감 있는 승부를 보며, 저는 어느 영화의 마지막 장면의 대사를 떠올리곤 합니다. 정녕 모두가 납득하고 만족하는 임금과 복지제도를 갖춘 사회를 만드는 일, 아닌 그런 사회를 만들자는 사회적 합의는 불가능한 일일까요?


황제: 네 개방의 제자들이 수천만 명이 넘는데, 그들을 해산 하지 않으면 짐이 어떻게 안심할 수 있겠느냐?

소걸아: 개방 제자의 수는 내가 아니라 당신이 결정하오.

황제: 내가?

소걸아: 당신이 영명하여 국태민안 하다면, 거지가 있을 턱이 없잖소.


-영화 『무장원 소걸아 』중에서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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