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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텍스트의 시대
로버트 스코블, 셸 이스라엘 지음, 박지훈, 류희원 옮김 / 지&선(지앤선)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책의 서문을 공들여 읽는 독자는 별로 없다고 어느 저자는 한탄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도 자기 책의 서문에다가 말입니다. 제가 바로 그렇지 않은 독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저는 평소 책의 내용을 읽기 전에 책의 앞뒤표지와 서문, 후기 등을 먼저 꼼꼼하게 살피는 편입니다. 모티머 애들러의 『독서의 기술』을 읽고 난 후 들인 습관입니다. 이런 습관을 통해서 때론 본문의 내용보다 값진 고갱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리뷰하게 될 『컨텍스트의 시대』는 제가 읽어본 서문 중에서도 드물 정도로 풍성한 내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우선 38페이지나 되는 적지 않은 분량입니다. 게다가 본문과는 별개로 (로마숫자로) 페이지수를 표시하는 정직함마저 보이고 있습니다. 내용 또한 다양합니다. 추천사, 한국어판 서문, 저자 소개, 서문, 프롤로그까지 책을 읽기 전 에피타이저로 손색이 없습니다. 다만 집필 과정에 도움을 준 스폰서 기업들에 대한 소개는 이제 독서에서조차 광고를 읽어야하는가하는 안타까움을 자아나게 합니다.
번역 또한 현역 개발자이신 박지훈님과 MBA에 재학중인 류희원님이 각자의 전공을 살려 임하고 있습니다. 이들 번역자의 노고 또한 책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책의 서문에서 독자를 위한 용어 설명에 지면을 할애하고 있으며, 본문에도 각주를 통해 독자를 배려하고 있습니다. 책의 말미에는 한국의 혁신가들이 바라보는 컨텍스트에 관한 내용 또한 담겨 있어 한국적 상황 또한 생각해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번역자의 역할 분담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는 점이나, 본문 1페이지부터 고유명사 포스(the Force)-영화 스타워즈의 바로 그 포스입니다-를 힘으로 번역하는 난감한 실수는 작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컨텍스트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의 힘은 우리 주위 어디에나 있으며 당신이 스크린을 터치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있다. ...(중략) 다섯 가지의 힘은 당신이 쇼핑객, 고객, 환자, 관중, 그리고 인터넷 이용자가 되었을 때 얻을 수 있는 경험의 폭과 질을 변화시키고 있다. ...(중략) 지금 모바일, 소셜 미디어, 데이터, 센서, 위치 이 다섯 가지의 힘 모두가 경제적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p.3에서
컨텍스트는 사용자가 처한 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상황정보'로 이해하면 쉽다고 번역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컨텍스트를 구성하는 다섯가지 요소인 모바일, 소셜 미디어, 데이터, 센서, 위치 기반의 기술이 사용자와 주변의 정보를 파악해서 보다 최적화된 맞춤형 개인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그 핵심입니다. 책은 이러한 컨텍스트가 새롭게 등장한 구글 글래스로 대표되는 웨어러블 기기뿐만 아니라 우리의 쇼핑, 운전, 도시, 마케팅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을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찌기 아티스트 백남준님이 "미래는 바로 지금이다."라고 정의한 것처럼,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술과 변화가 미래를 그려나가는 것임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기술이 만들어갈 낙관적인 미래를 그려낸 책이니만큼 부작용에 대해서도 저자는 크게 염려하지 않습니다. 저자 또한 개인정보 유출이나 사생활 침해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기술과 시장이 자연스럽게 그 영향력을 최소화하리라 전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구글의 모토인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입니다. 이 말은 기업이 이익을 위해서 얼마나 쉽게 사악해질 수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지난 시절 경험으로 기술의 발전이 자동적으로 문화와 윤리를 만들어낼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이를 활용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2011년 일본에서 센서들은 도호쿠 대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하기 65초 전에 공무원들에게 이를 경고했고, 이 덕분에 위험 지역으로 향하는 초고속열차를 정지시켜 수천 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쓰나미가 발생한 이후, 센서는 시민들이 피해야 할 장소들을 알려주는 방사능 열지도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p.24에서
이 책을 받아서 읽는 동안 세월호 참사라는 슬픈 사고가 있었습니다. 수학여행으로 들뜬 꿈많은 청소년부터 내일을 향해 열심히 일하던 아르바이트생, 노년의 우정을 과시하며 여행길에 올랐던 동창생분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잃는 비극을 우리 모두가 겪어야 했습니다. 분명 발달된 기술은 우리를 사건 초기부터 사고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었습니다. 희생자분들이 갖고 있던 스마트폰은 참담했던 마지막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딱 거지까지였습니다. 배의 안전을 위한 수많은 장치들도, 소중한 생명을 구해야했던 구명보트도, 불행한 사고의 원인을 밝혀줄 블랙박스까지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 가슴 아픈 현실은 발달한 기술만큼 우리의 의식과 제도가 성숙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입니다. 사회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문화지체(Cultural Lag)란 말로 정의하고 있습니다.문제는 이러한 문화지체를 우리가 똑바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단지 되풀이되는 인재(人災)에 안타까워하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금새 잊어버리곤 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이 사고조차 사전에 감지하고 예방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요? 슬픈 현실과 찬란한 미래 사이에서 저는 오늘도 하염없이 서서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