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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마법사들 - 융합과 혁신으로 미래를 디자인하는 MIT미디어랩 이야기
프랭크 모스 지음, 박미용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작가 황석영님은 호남 지방이 예향(藝鄕)의 고장이 된 까닭을 비옥한 물산(物産)에서 찾았습니다. 문화가 융성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경제력이 우선한다는 지적입니다. 따라서 예술은 본디 양반이 아닌 상인의 것이라는 주장을 펼친바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을 후원했던 대표적인 패트런인 메디치가(家)에서 보듯이 경제력이 갖추어지면, 이를 통해 문화를 발전시켜 일종의 선순환을 일으키려 한 점은 동서양이라는 시공을 뛰어넘어 서로 닮아보입니다.
하지만 원래 이러한 문화 예술의 후원은 고대 로마가 가장 처음 시작한 일입니다. 특히 로마의 후원이 남다른 까닭은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은 그야말로 순수한 후원이었습니다.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이런 후원을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임과 동시에 학자든 예술가든 대상이 되는 상대와 운명을 공동 부담하는 행위"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그에 반해서 후대에 생겨난 스폰서는 경제적 이득을 목적으로 하기에 조금은 후원의 의미가 퇴색되거나 변질되어 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살펴볼게 될 『디지털 시대의 마법사들』은 현대에 부활한 패트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살펴보게 될 MIT미디어랩은 1985년 미디어 석학 니컬러스 네그로폰테 교수와 전 MIT 학장 제롬 위즈너가 20세기의 학계 풍토였던 분과 학문의 벽을 타파하여 다가오는 디지털 혁명을 연구하고 대비하자는 취지로 설립한 연구소입니다. 미디어랩은 100개가 넘는 기업과 단체들의 지원금을 받으며, 제한없는 창조적 연구를 보장받고 있습니다. 대신 연구결과로 나오는 지적 재산권을 아무 조건 없이 공동으로 소유합니다. 그 결과 미디어랩은 30여 명의 교수진과 140여 명의 연구생들이 300건 이상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산학협력의 성공적 모델이자 과학과 실생활을 접목시켜 기술 혁신을 이루는 ‘꿈의 연구소’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이 책은 MIT 미디어랩 3대 소장을 지낸 프랭크 모스 교수가 재임기간(2006~2011년) 동안 직접 경험한 미디어랩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저자 자신이 관련 분야의 전문가이자 교수로서 갖고 있는 역량을 충분히 발휘해서 "미디어랩의 교수와 학생 발명가들이 어떻게 창조하고 발명하는지, 그 마법과도 같은 환상적인 과정을 엿볼 수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p.9에서)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책이 독특한 점은 보통의 책들이 원칙을 먼저 제시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를 제시하는 연역적 구성을 보이는 반면에, 사례를 보여주고 이를 통해 원칙을 도출하는 귀납적 구성을 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습과 토론을 통해서 이론적 경계를 넓혀가는 미디어랩의 모습과도 일치하는 방식입니다.
책은 8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크게 1부와 2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4장까지의 1부는 "혁신을 향한 미디어랩만의 독특한 접근방식을 보여주는 기본 원리들"(p.12에서)을 보여줍니다. 5~8장까지의 2부는 "오늘날 미디어랩에서 개발 중인 기술이 미래의 삶과 사회, 기업을 근본적으로 어떻게 바꿔 놓을 것"(p.14에서)인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원칙과 변화들은 혁신이 자유와 휴머니즘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학문간의 경계를 없애고, 일과 놀이가 융합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어울리며, 기술과 휴머니즘이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이자 과정임을 이 책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례들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바이오메카트로닉스의 연구팀의 수장인 휴 허 박사의 경우였습니다. 10대 시절 등반 사고로 다리를 잃은 박사는 그 후 학업에 매진해 훨씬 편리한 의족을 개발합니다. 지금은 더 나아가 보통 사람이 더 빠르고, 강한 힘을 낼 수 있는 보조 장치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일반인이 장애인을 위한 발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는 단지 정도의 차이가 있는 장애인이라는 발상의 전환이 보여주는 혁신의 단면입니다.
디지털 시대의 마법사들을 디지털 매체로 만나고 싶다.
책을 읽는 동안, 원제인 『마법사와 그의 제자들(The sorcerers and their apprentices)』처럼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내는 마법서를 읽는 듯한 신비와 재미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외국의 성공 사례를 읽게되면 당연히 우리의 개발 환경에 대한 고민으로 생각이 이어지게 됩니다. 굳이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우리 나라의 연구 환경의 척박함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비록 계속 나아지고는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미디어랩의 학과제 폐기는 우리 나라에서도 생소한 제도는 아닙니다. 한 때 유행했던 학부제도나 복수전공제도는 비록 불완전하지만 학제간 경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형식만을 모방한 한계가 아닐까 합니다. 반면에 미래산업 정문술 전대표는 연구개발에 전폭적인 지지가 국내에서도 가능함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그는 연구자들이 운동기구나 출산비용까지 청구해도 신뢰와 지지를 아끼지 않으며, 예산삭감을 주장한 관리자를 해임시킬 정도로 자유로운 연구를 보장했습니다. 그 결과 국내 최초 핸들러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미디어랩을 모방하는 것은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현실과 환경, 개발자와 기업가의 정신을 고려한 우리만의 개발방식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물론 저자가 지적했듯이 이 과정에서 미디어랩의 유용한 원칙들은 멋진 참고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러한 환상적인 이야기를 책으로 전달하는 데 따른 문자적 한계입니다. 디지털 시대의 마법사들의 모습을 하루 빨리 디지털 매체를 통해 보다 생생한 영상으로 만나고 싶습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