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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단체의 경영
피터 드러커 지음, 현영하 옮김 / 한국경제신문 / 1995년 5월
평점 :
1) 좌, 우 진영을 막론하고 사회 전반의 문제를 모두 국가가 해결할 수 있고, 또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투표를 하고 세금을 내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늘 한계가 있었으며, 이들 문제들을 시장에 맡긴다 하여 해결될 것도 아니다. 이에 따라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의식적인 개인들의 연합체로서 사회 부문 내지 비영리단체가 대두된다(피터 드러커는 비영리단체가 진정으로 지속적인 ‘성장산업’이라고 말한다). 물론 국가 대 사회라는 허구적 이항대립은 지양되어 마땅하고,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을 보충하는 이른바 NGO들과의 섬세한 거리두기가 필요하겠으나, 여기서는 그 논의를 생략하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관하는 개념으로 ‘비영리단체’라는 용어를 그냥 쓰기로 한다.
간단히 짚고 넘어가자면, 비영리단체란 인간과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는 조직이다. 비영리단체는 자아를 실현하고 이상을 펼치며, 신념을 갖고 신념대로 살 수 있는 삶을 돕고 충족시키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 서비스를 제공하여 사회 구성원들이 이를 향유하도록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용자들이 이를 통해 어떤 변화를 겪고 적극적 참여자로 되어, 이제는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비영리단체도 수혜하게 되는 사회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른 사람의 계발과 발전을 도움으로써 나 자신을 계발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것은 비영리단체의 중요한 활동영역이다.
2) 비영리조직의 세계에서 ‘경영’이라는 개념은 그간 관심을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금기시되어 왔다. 왜냐하면 그 단어는 영리사업과의 결탁을 암시하는 것처럼 여겨졌고, 비영리조직이 영리사업을 하지 않을 것이라면 경영을 둘러싼 그 어떤 것과 연관을 맺어 덕 볼 것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영리조직에서 성과의 문제가 제기되는 순간 “우리가 선한 일로서 봉사를 하고 있는데 성과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우리가 하는 일이 사람들의 생을 좀 더 선하게 변화시킨다면 그것 자체가 성과이고, 결과가 아닙니까?”하는 반문에 직면하기 십상이다. 그러다가 조직 자체를 선이요, 궁극적인 목적으로 확신해버리는 함정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그런 좋은 의도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비영리단체의 이익 내지 성과를 평가하는 뚜렷한 기준이 없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더더욱 경영을 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영리단체는 무보수 내지 낮은 보수로 헌신하는 활동가와 자원봉사자들, 기부금 헌납자들의 순수한 신뢰에 바탕하고 있으므로 그러한 측면에서도 더 신중하게 자원을 운용해야 한다. 강력하고도 효율적이며 목적의식적인 경영은 비영리단체에도 필요하다.
물론 비영리단체에 몸담는 사람들은 각자 어떤 선한 동기에서 일을 맡을 것이다. 그러나 그 동기 자체를 보람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비영리단체가 만약 조직의 관리와 경영에 합당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활동가들이 과로로 인한 Burn-out 상태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사명감이 아무리 투철한 사람이라도 이를 영원히 감내할 수는 없다. 비영리단체의 경영방법을 가다듬는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활동의 지속가능하고 견고한 기반을 고민하고 탐색하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할 때 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본래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데 직접적으로 투자할 수 있다.
3) 뭐, 그리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피터 드러커의 책(혹은 경영학 서적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을 읽다보면 이런 내용에 학문이라는 이름까지 붙일 수 있는 것인지 의문스러울 때가 많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그저 말잔치라고 여길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별 내용 아닌 것 같은데도 예상보다 포스트잍 flag를 많이 쓰게 하는 힘이 피터 드러커에게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수양록 같기도 한 이 책을 읽으면서 이따금 얼굴이 화끈거렸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미국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총연맹(The American Federation of Teachers AFL-CIO)의 위원장, Albert Shanker 씨의 인터뷰가 실린 장이었다.
4) ‘시민’이란 바로 지금 이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자, 이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슴 뜨겁게, 신나게 비영리단체를 꾸려 경영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