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와 조직의 경제사 (양장) - 최신이론, 새로운 개념, 개정판
오카자키 데쓰지 지음, 이창민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7년 2월
평점 :
품절


  읽는 내내 신이 나서 흥분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교과서로 쓰이는 책답게, 경제사의 주요한 연구 흐름들을 알맞은 분량에 두루 잘 담았다. 길지 않은 분량에서도 일본인 특유의 꼼꼼한 천착(穿鑿)이 느껴진다. 일본에서는 2005년 초판 발행 이래, 많은 대학에서 수업교재로 채택되었고, 일반 독자들에게도 많이 읽혔다고 한다.


  지은이 오카자키 데쓰지(岡崎哲二) 교수는 도쿄대에서 일본경제사, 비교경제사를 연구하시는 분이다. 더 정확히는 비교산업론적 관점에서 시장과 조직의 보완적 역할을 통시적으로 분석하여 일본의 경제발달사를 탐구한다. 주된 방법론은 미시데이터, 고문헌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이고, 금융, 고용, 기업, 산업정책의 역사에 주목한다. 최근에는 경제사의 지정학적 측면에 관심을 두시는 듯하다. 근세 일본에서 국가를 대신하여 '계약집행' 역할을 담당하였던 사적 조직인 '가부나카마'[株仲間(かぶなかま). 공권력에 의해 특정 지역의 특정 사업에 관한 영업 특권을 인정받은 상인 내지 수공업자의 집단. 일종의 상인 길드(Merchant Guild)로서, '요리아이(﨑合, よりあい)'라는 의사결정기관과 '교지(行司, ぎょうじ)'라는 집행기관을 두고 있었다]의 '다각적 징벌전략(MPS: Multilateral Punishment Strategy)'을 '비교역사제도분석'한 "The Role of the Merchant Coalition in Pre-modern Japanese Economic Development: An Historical Institutional Analysis", Explorations in Economic History, Vol. 42, No. 2 (2005),184-201(이 책 제5장 131쪽 이하에도 인용되었다)를 비롯하여 흥미로운 연구성과를 많이 내셨다(도쿄대 대학원 경제연구과 교수소개 페이지개인 홈페이지 참조).


  번역은 오카자키 데쓰지 교수의 제자로, 한국외국어대학교 융합일본지역학부 및 국제지역대학원 일본학과 교수로 근무하고 계시는 이창민 교수께서 하셨다(책을 구입하기 전에는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이창민 교수로 착각하였다). 도쿄대 출판사에서 2015년 발간된 이창민 교수의 다음 책은 일본 학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한국외대 홈페이지들에는 저서 소개가 간략하게만 나와있고, 구글 페이지에 연구물이 잘 정리되어 있다. 일본 학술지에도 논문을 많이 내셨다. 그런데 목록에는 동북아역사재단에서 2013년에 나온 박정현 외, 『통계로 이해하는 근대 동아시아 경제사』가 포함되어 있으나, 알라딘에서는 물론이고 「2016 동북아역사재단 도서목록」에서도 위 책을 찾을 수 없다. 국립외교원에서 곧 이원덕 외, 「(가칭) 2016 한일관계」라는 보고서가 나올 모양이다. 여하간 적임자가 번역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미주에 나오는 지은이의 참고문헌 인용을 일본 서적 그대로만 표기한 점이다. 예컨대, 마르크스, 『자본론』 같은 것이 'カール・マルクス, 『資本論』, 向坂逸郎 譯, 岩波文庫, 1969年' 식으로만 표시되어 있다. 한국 독자들이 일본어 번역본을 굳이 찾아 볼 일은 많지 않을 것이므로, 국역본 서지정보나 최소한 영어나 원어 서지정보를 병기해주셨더라면 훨씬 편리하고 유용했을 것 같다(카타카나를 간신히 읽어내더라도, 그렇게 읽어낸 발음이 누구를 지칭하는지를 알아내는 데 또 고민이 필요하다. 물론 필자의 능력 부족 탓이기도 하지만, 예를 들어 ロバート・フォーゲル이 Robert William Fogel임을 알아채는 것이 쉽지 않다). 그리고 지은이의 주석과 역자의 주석을, 전자는 미주로 몰고, 후자는 각 해당 페이지에 달아 대개는 구별하신 것 같은데, 예컨대 제3장의 미주 6) "도구변수와 2SLS에 대해서는, 예를 들어 한치록, 『계량경제학 강의』, 박영사, 2016년의 제15장을 참조"와 같은 것은 지은이가 단 주석으로 보이지는 않아 다소 혼란스럽기도 하다. 각 장 말미에 붙어있는 '이해와 사고를 돕기 위한 문제'를 한국 독자들에게 맞는 문제들로 바꾸셨고, 이것들이 심화학습에 대단히 큰 도움이 되기도 하는데(한국 대학의 수업에서 쓰기도 참 좋을 것 같다), 무엇이 지은이 본인의 것이고, 무엇이 역자가 창안한 문제인지rk 구별되지 않는다(혹시 개정쇄를 낼 때 이상과 같은 부분을 수정하실 용의가 있으시다면, 출판사나 역자께서 따로 연락주시면 독자의 팬심으로 도와드리고픈 의사가 있다).


  그러나 저러나 아름다운 책이고, 감사한 번역이다. 이 책이 인생을 바꿔놓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래서 별 열 개를 주더라도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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